‘부처’란 이름이며 글귀일 뿐

“웬일로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은가”
“일이 없게 된 사람은 본래 이렇습니다.” 

경허스님은 자기 스스로 “무사지인”이라 했다. 

임제 선사 어록 시중(示衆)에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시여 참으로 중요한 것은 참되고 바른 견해 구해서 천하를 마음대로 다니면서 도깨비 귀신에게 홀리지 않는 것이다. 

“일이 없는 사람이 참으로 귀한 사람이다.” “다만 억지로 조작하지 말라 오직 평소 생활 그대로 하라 그대들이 밖으로 향하고 옆집을 찾아 헤매면서 방법을 찾아봐야 그르칠 뿐이다. 단지 부처를 구하려하나 부처란 이름이며 글귀일 뿐이다.”

참으로 귀하고 천금 만 냥에 이르며 한 칼에 천만 명을 죽이는 대 참극이며 인간의 자존감의 혁명이다. 일이 없다는 한 말씀 내가 사는 시골에서는 늘 그런 완전한 도인들을 매일 뵙고 살고 있다. 삽자루 들고 논둑길을 걸으면서 논바닥의 물을 살피는 성실 근면을 온 몸으로 사시는 시골 농부의 그 선한 모습은 속세에서도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존귀한 참사람이다. 비가 올려나 그저 하늘 올려보는 모습에 온 산도 숙연하다. 본래심 그대로 사는 것이며 평범한 일상을 넘어 무심으로 살아가는 내면의 근육이 꽉찬 건전한 아름다움이다. 

가끔 만나서 한담하는 도반 중에 시골 황토방에 다실과 명상터를 만들어놓고 어울리는 작품을 원하기에 성품과 공부의 안목에 비추어 ‘무사인(無事人)’이라는 소품족자를 휘호했다. 쉽게 쓰인 것 같지만 전생 인연 탓인지 제법 글씨 맛이 맵다 가끔 나를 끌어올려주는 작품도 있다. 걸어놓고 크게 웃었으며 몇 잔의 차와 몇 잔의 술 대접도 신나게 맛있었다. 

작품은 늘 주인이 따로 있다. 적재적소에 딱 들어맞는 글감을 찾아내고 맛깔나게 휘호까지 완성이 되면 작품은 매일 볼 수 없어도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또한 누구나 느낄 수 없는 복중에 복이며 나의 공부가 주는 맛깔 나는 일이며 예술작품이 창출하는 복된 희열이며 묵희선열이다. 

‘무사, 무사인, 무사시귀인, 평상무사, 수처무사’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귀한 말씀이다. 무엇을 작품하며 매일보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당신은 한세상 건너가고 싶은가 너무 귀하고 무거워 들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지극함에 마음만 무겁다. 좋은 글귀 만나면 작품이 쓰고 싶어 안절부절 한다. 가슴치는 선어록의 말씀을 만날 때면 작품이 마음속에 형상 된다. 작품은 끌어안고 고민하고 수행한 만큼 쓰여 지는 살아있는 위대한 창작물이며 한 끝도 속일 수 없는 극명한 사실이다. 

세간살이 단지 마음에는 일없고 걸림 없이 주어지는 상황에 무심하게 할 수만 있다면 세상살이가 텅 빈 가운데 묘한 작용이 활짝 열려 꽃피고 물 흐르며 새소리 맑아 사는 일이 즐거울 텐데, 아직 나이 값도 이름값도 못하는 탐진치로 덥힌 이 몸 참으로 송구하다. 

“일없다”라는 생각마저 없다면 그 맛이 어떠할지 눈을 감고 더듬어본다.

귀하고 귀한 일없음에 먼 산을 멍히 보는 일마저도 일이 되어 버리는 그 적요함에 들 수만 있다면 참 좋으련만 하지만 자고 나면 사회라는 모순의 굴레 속에 몸을 섞어야 하는 현실에 가슴 멍하다. 내가 사는 시골 한 공간에 ‘무사선방(無事禪房)’이라 이름 붙여놓고 들고 나면서 경책한다. 나는 눈먼 어리석은 납자이다. 

올연히 앉아 눈먼 새가 일러주는 일없는 일의 그 두터운 말씀 두껍게 안아 들인다. 3조당 선방에 걸린 ‘무사인’이라는 작품이 궁금하다. 

[불교신문3606호/2020년8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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