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연에 고개 숙여

정갈하게 좌복을 만지고 하루가 시작되는 위대한 현실에 한없이 고마워 절을 올린다. 대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나를 만나는 첫 번째 행하는 일대사(一大事) 행위가 된지 오래 전 일이다. 

사찰에 찾아들면 그곳에 계시는 그분이 고마워 절을 올린다. 한 번의 절에도 무량한 공덕과 가피가 따르고 자신의 아만, 고집, 업장을 녹여낸다. 겸손으로 받아들이는 순전한 나를 만나는 일이며 지독한 무명 업식의 삼독이 사라지고 차분히 쉬어가는 적정의 경지에 든다. 절은 집착과 망상 헛된 걱정마저 내려놓고 업력의 덩어리를 녹인다. 

절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놓고 수용과 긍정의 자세로 수행하게 하는 첫 번째 큰 일 이기에 가장 높은 머리를 내려놓는다. 한동안 108배 발원문을 만들어 소리 높여 참회하며 이른 새벽 절을 하던 기억이 새롭다. 

객지에 사는 아들이 집에 오면 절을 받는다. 그것도 3배(三拜)이다. 부모는 자식이 만나는 첫 번째 부처님이시다. 오래된 가풍으로 이제 당연히 절 받으십시오 하고 자리를 권한다. 오랜만에 같이 한마음 공손해지는 법을 실천하는 일이며 예의만큼 최상의 지혜는 없다고 가르치고 지켜오고 있는 가풍이다.

작품은 느닷없이 필연적으로 닥쳐드는 느낌이 있다. 갈필(渴筆)과 담묵(淡墨)의 조화와, 어느 모습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무작위의 기교가 한 호흡으로 경계가 세워졌다. 붓은 고개 들고 쓸 수 없으며, 작품을 하는 동안 한없는 고개 숙임을 배우며, 향 피우고 손을 씻는 일은 오랜 예의이다.

이 작품은 오랜 절 수행이 만들어준 무위(無爲)의 산물이다. 작년 전시회에 출품된 대작(大作)의 한 부분을 재구성한 것이며 신창조조형을 열어가는 나만의 문자추상(文字抽象)이다. 허리를 굽히면 굽힐수록 더 높아지는 이 묘한 깨우침을 작품을 통해 얻어 갈 수만 있다면 무량대복 일 것이며 삶은 환희심으로 가득할 것이다.

절하는 당신의 모습은 어디 있습니까? 

작품에 어떤 제목을 붙여 주시겠습니까? 

근래에 당신께서는 누구에게 언제 진지하게 절을 하셨습니까? 새소리가 목탁소리인양 나를 절하게 하는 시골 여름밤, 사는 일이 고맙고 인연이 아름다워 그저 고개가 숙여진다. 

[불교신문3608호/2020년8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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