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나눔의집, 더 이상 왜곡 말아야
[현장에서] 나눔의집, 더 이상 왜곡 말아야
  • 이경민 기자
  • 승인 2020.06.13 15:08
  • 호수 35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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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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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나눔의집’이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내부 고발 직원 7명의 폭로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후원금 유용, 학대 의혹 등 자극적 보도가 쏟아져 나온 까닭이다.

“할머니들이 먹고 싶은 것 하나 사주지 않았다” “병원 치료비 모두 개인 돈으로 부담하게 했다” “국민을 기만했다” 등 자극적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모두 내부 고발자 증언에 근거한 것이다. 아직까지 운영 부실 외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답은 조사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지금의 위안부 문제가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을 때까지 나눔의집 30년 세월이 있었음을 부정해선 안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집’은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던 1990년대 초 불교계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시작됐다.

생계조차 어려웠던 피해자들을 위해 당시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이던 월주스님이 주축이 돼 흩어져 있던 할머니들을 모았고, 불자들을 포함한 국민들이 성금을 보태며 전셋집이나마나 한 칸 겨우 마련할 수 있게 됐다. 

1992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서교동에서 명륜동으로, 명륜동에서 혜화동을 전전하다 1995년 독지가의 기증으로 지금의 경기도 광주 퇴촌면에 자리를 잡았다. 초창기만 해도 진입로 하나 없던 곳이었지만 그림 전시, 증언 활동 등을 통해 곳곳에 피해 사실을 알리며 간간히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유지했다.

1996년 경기도로부터 사회복지법인 인가를 받기 전까지 국가지원 없이 십시일반 불교계가 운영을 부담해온 곳이다. 할머니들은 더 이상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으로 차마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게 지지대가 됐다. 

잘못한 점이 있다면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비판이 행정 미숙 등 명백히 밝혀진 것에 우선돼야지 나눔의집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맹목적 비난이 되어선 곤란하다.

나눔의집 설립 당시인 1992년 들어와 2004년까지 12년을 거주한 고(故) 김순덕 할머니의 아들은 “어느 누구 하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금전적으로도 도와주지도 않았을 때 가장 먼저 나서준 게 나눔의집”이라고 했다. 왜곡된 비난이 결국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 의사를 저버리고 위안부 피해를 알리고자 했던 불교계 30년 헌신을 가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불교신문3589호/2020년6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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