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담의 세계 ‘어엿한 그대’] ⑤ 매사에 무기력한 그대에게
[불교상담의 세계 ‘어엿한 그대’] ⑤ 매사에 무기력한 그대에게
  • 임인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상담학 초빙교수
  • 승인 2020.06.10 10:54
  • 호수 35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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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담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다. 임인구의 새 연재물 ‘어엿한 그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마음이, 또 그 마음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이미 어엿하게 서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연기법에 근간하여 역설과 상호관계성의 원리로 안내한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마음 자체를 친구처럼 또는 연인처럼 대하는 직접화법으로 구성된다.
임인구
임인구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관심 가는 일이 없다.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다. 
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매사가 귀찮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그대만의 작은 방에서 축 늘어져만 있는 그대여. 
이것이 바로 소확행이라며, 
자신만의 평화로운 이완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그대여.
그러나 그대가 결코 속일 수 없는 것은 그대 자신이다.
그대는 지금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것일 뿐이다.
그대는 매사에 무기력하다. 힘이 나지 않는다.
그대를 힘차게 만들어줄 동력이 없는 까닭이다.
관심은 삶의 동력이다. 그대에게는 지금 관심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그대는 정말로 이해해야 한다.

그대가 아무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이유는, 그대가 감수성이 메말랐기 때문이거나, 선천적인 장애가 있다거나,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대에게 관심이 결여된 이유는 오직 그대가 지금 쫄아있기 때문이다. 무진장 쫄아있는데, 쫄지 않은 척 하느라 모든 안간힘을 다하고 있어서, 그대에게는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대가 좋아하는 일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이 여력은 안전감에 의해 생긴다. 안전감이란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신뢰감이다.
그대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고 느낄 때, 그대는 무기력에 빠지고 우울해진다. 시야는 좁아지고, 그만큼 판단력은 둔해진다. 때문에 갈수록 세상은 더욱 어렵게만 느껴지고, 그대 자신은 한없이 초라한 존재처럼 경험된다.
그래서 그대는 정말로 다시 한 번 이해해야 한다. 그대여, 안전감은 그대의 몸의 문제다. 그대의 몸이 더 강해야 한다거나, 더 아름다워야 한다거나, 더 효율적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그대의 몸을 보완해주는 소재인 것만 같은, 돈, 직업, 지위, 지식, 권력, 가족, 친구, 동반자 등과 같은 것들을 충분히 얻어야 한다는 의미 또한 아니다. 그 어떤 조건들과도 관계없이, 지금 그대가 그대의 몸 자체로서 안전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그대는 반드시 안전감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여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대여, 그저 단순하게 그대의 작은 방 안에서 그대의 몸을 공벌레처럼 동그랗게 말아보라. 그대의 몸을 지긋이 감싸 안아보라. 그 순간, 그대가 느끼게 될 그것이 바로 안전감이다. 그 어떤 조건과도 관계없이, 그대를 반드시 찾아오게 될 그 안전감이다.
안전감과 함께 그대는 알 수 없는 여유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대가 느끼는 여유는 그대에게 잉여의 에너지, 즉 여력이 생겼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그대는 그 여력을 바탕으로 그대 주변의 것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쫄아있던 그대는 그대 자신의 힘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이야기다.
그대가 쫄게 되었던 것은 그동안 많이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쫄지마, 시바!” 같은 말에 속아, 이미 얻어 맞아 아픈 가슴을 억지로 활짝 편 채 버티고 있느라, 한참 더 많이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원하는 용사인 척 하려고, 스스로 적을 찾아다니며 신나게 쥐어 터졌기 때문이다. 맞는 것도 관심의 표현이라며, 다른 이의 관심을 구걸하기 위해 맞을 짓을 골라 하며 열심히 매를 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의 몸은 많이 아팠다.
자신의 몸이 아프고, 불쌍하고, 안쓰럽다고 느낄 때, 우리는 자연스레 몸의 형상을 공벌레처럼 둥글게 만들게 된다. 우리의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되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 몸이 이루는 자가회복을 위한 몸짓으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 안전감을 확보하게 되며, 그로 인해 여력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대의 몸은 이미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
다시 기억하자.
그대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
작은 공벌레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이 사실을 신뢰하며, 몸을 둥글게 만다. 
하물며 인간인 그대다.
그대는 안전하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대가 얼마나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지킬 수 있는지, 그대가 가진 힘을 지금 바로 확인해보자. 그대는 감동스러워질 것이고, 그 감동은 그대의 밖으로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흘러넘친 그 감동을 우리는 바로 관심이라고 부른다.
그대는 이제 준비가 된 것이다.
오랜 무기력의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마치 그대의 것이 아닌 긴 꿈을 꾸었던 것처럼, 그대는 새롭게 다시 문을 열고 나가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대가 결코 속일 수 없는 그대 자신의 모습이다.

[불교신문3588호/2020년6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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