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담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다. 임인구의 새 연재물 ‘어엿한 그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마음이, 또 그 마음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이미 어엿하게 서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연기법에 근간하여 역설과 상호관계성의 원리로 안내한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마음 자체를 친구처럼 또는 연인처럼 대하는 직접화법의 구성된다.

임인구
임인구

그대가 두려워한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대는 평생동안 두려워하며 살았다고 바람이 말을 전했다. 바람은 그대를 스치는 작은 몸짓에도 행여나 그대를 소스라치게 하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워했다. 그 조심함이 낳은 꽉 막힌 공기 속에서 나는 알았다. 몸을 가득 메우는 긴장 속에서 나는 알았다.
그대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대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두렵다는 말뿐이었다.
그대는 그 말을 하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두렵다는 말을 하면 두려운 현실이 정말로 자신에게 닥쳐와 공고한 사실이라도 될 것처럼, 그대는 두려움과 관련된 모든 낱말들을 최대한 그대의 입에서 멀리 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안다. 두려움의 낱말들을 멀리 하는 만큼, 그대는 두려움으로 인해 멀리 되는 게 싫었다는 것을. 그대여, 그대는 홀로만 멀리 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대는 버려지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그대가 두렵다고 말하는 순간, 그대는 이미 혼자인 자신을 경험한다. 이미 버려진 것 같은 자신을 눈치챈다. 그래서 그대는 자신이 두렵다고 말하는 행위로, 이미 버려진 자신의 입장을 확인사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말만 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버림받지 않은 것처럼 가장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는 두려움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그대가 느끼는 두려움의 스케일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
그대가 두렵다는 말을 하기 전에도 이미 버려진 것만 같았다면, 버려짐이 정말로 그대의 두려움의 이유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그대가 산소라고 말하고 나면 더 시원하게 숨쉴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또한 그대가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두려움은, 그대가 이미 버려졌다는 것을 다소간에 실감하고 있는 입장에 비해 그 강도가 지나치게 세다고 느껴지지 않던가?
그대는 다시 기억해야 한다.
그대는 고작 그대가 버려지는 일 때문에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들이다.
테이블 위에 살포시 놀러온 민들레홀씨와 자스민차의 향기. 
비 그친 밤산책길의 아스팔트 냄새.
붉은 빛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강둑길과 하얀 자전거.
비틀비틀 술에 취해 홀로 집으로 향하는 그대의 발목을 감아돌던 새끼고양이의 온기.
초여름의 키스.
하얀 입김과 빨간 목도리.
공원의 오리떼와 커피우유. 
눈치볼 필요 없이 흐르던 눈물과 함께, 
들어가기 전과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나왔던 조조영화관.
9시 이후 KFC 오리지널 치킨 1+1.
크리스마스 캐롤과 캔맥주, 그리고 끝내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한 카톡.
새벽 한강의 편의점에서 나누어먹던 라면.
훑으며 미소짓던 강아지풀의 촉감.
엄마.
조심스레 품에 안은 삐약 소리가 전해주던 작은 체온.
옛 동네의 노란 가로등과 전선에 맺힌 물방울들의 빛깔.
능소화 가득히 핀 자취방 앞 골목.
담배연기를 늘어뜨리며 한정없이 걷던 길, 길.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그리고 그리운 그 사람.
그대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들이다.
그대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은 이것들이다.
이 모든 세계를 잃을까봐 그대는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세계가 이렇게도 무척이나 좋다는 것을 아는 그대는 그대가 사랑하는 이 세계를 잃을까봐 가슴아파한다. 
두려움을 통해 그대는 그대가 얼마나 이 세계를 사랑했는지를 다시 기억한다.
그대가 두려움의 크기라고 말하던 것은, 그대가 세계를 사랑하던 크기다.
세계를 사랑하던 그대 가슴의 깊이며, 그대 사랑의 스케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대는 안다. 그대가 진실로,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대는 그대가 사랑하던 이 모든 세계에게, 너무나 사랑한다고, 정말로 즐거웠다고, 다시 또 보고 싶다고, 고백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님에게 끝내 고백 한 번 못해보고 죽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대 사랑의 스케일로 그대가 사랑하는 세계의 가슴너비를 재어볼 기회를 행여라도 놓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대다.
두려움의 스케일은 그대 사랑의 스케일이다. 두려움만큼 사랑했던 그대다.
그렇다면 그대여, 망설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대여, 그대는 턱없이 사랑해도 좋다.
그대가 가진 우주적 스케일로 우주를 재러나가도 좋다. 이 거대한 우주에 사랑이 얼마만큼 있는지 알릴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대임에 틀림없다. 광활하게 텅빈 공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대 외에 다른 누구도 아닐 것임이 자명하다.
그대가 사랑하기에, 그대는 두렵다.
잃어지면 슬픈 가장 귀한 것들로 이 세상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대다. 잃어지면 슬픈 가장 귀한 그대다. 그대라는 사랑의 스케일로 이 세상은 가득찬다. 그대가 자기 것으로 느끼며 알고 있는 두려움은, 그대가 바로 이러한 스케일의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는 전령이다.
그대가 두려워한다는 말을 나는 듣지 못했다.
바람의 전령은 나에게, 그대가 사랑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을 전했다.
모든 것이 두려운 그대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을 열고 나아가라. 그대는 지금 우주를 가득 채울 꽃 한 송이 피우고 있는 중이다.

[불교신문3585호/2020년5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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