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담의 세계 ‘어엿한 그대’] ④ 칭찬받으려 하는 그대들에게
[불교상담의 세계 ‘어엿한 그대’] ④ 칭찬받으려 하는 그대들에게
  • 임인구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상담학 초빙교수
  • 승인 2020.06.04 14:09
  • 호수 35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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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담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다. 임인구의 새 연재물 ‘어엿한 그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마음이, 또 그 마음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이미 어엿하게 서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연기법에 근간하여 역설과 상호관계성의 원리로 안내한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마음 자체를 친구처럼 또는 연인처럼 대하는 직접화법으로 구성된다.

TV 속에서도, 택시에서 들리는 라디오 사연에서도, 도서관의 볼펜 소리에서도,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쌓여가는 카톡 대화창의 숫자에서도, 어디에서나 그대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그대는 연예인이 되려 했었고, 성공한 사회인이 되려 했었고, 유명강사가 되려 했었고, 사람들의 스승이 되려 했었고, 아름다운 연인이 되려 했었다.
그대는 똑똑하다는 칭찬이 듣고 싶었고, 그대는 예쁘다는 칭찬이 듣고 싶었고, 그대는 멋지다는 칭찬이 듣고 싶었고, 그대는 강하다는 칭찬이 듣고 싶었고, 그대는 사랑스럽다는 칭찬이 듣고 싶었다.
그대는 사실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대는 오직 칭찬받기 위해서만 그 모든 것을 해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그대는 가장 멋진 모습으로 학예회 무대에서 빛나는 재간둥이가 되고 싶었다. 그대의 성실과 열정이 이끌어낸 진실된 퍼포먼스로 엄마아빠의 칭찬을 독차지하는 귀염둥이가 되고 싶었다. 엄마아빠의 ‘the 아이’가 되고자 하는 그대의 노력은 눈부셨다.
너무나 눈부셔서 눈이 멀었다. 노력이 눈부신만큼 그대는 더욱 눈이 멀어갔다.
장님이 되어 길을 볼 수 없게 된 그대는 맹목적으로 칭찬이 들려올 곳만을 찾아 헤맸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아 헤매듯, 방황은 계속되고, 갈증 또한 계속되었다.
기나긴 길 위에서 그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리고는 그대의 갈증을 채워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대는 그대가 가장 받고 싶은 것을 그에게 주었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참 예쁘시네요.”
“정말 똑똑하세요.”
“이런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스승분은 처음이에요.”
그렇게 그대가 주면, 그 또한 그대가 받고 싶은 그것을 그대에게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까닭이다. 칭찬하면 칭찬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까닭이다. 그대가 착한 아이로 행위하면, 착한 아이처럼 칭찬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대가 준 것만을 받고 매정히 그대를 지나쳐 갔다.
그대는 그대가 스스로 진리의 공식처럼 세운 ‘칭찬하면 칭찬을 돌려받아야 한다’라는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거듭 경험하면서, 그대가 세운 공식을 의심하기보다는 세상과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 공식의 기계적인 차가움만큼이나 그대의 가슴도 차가워져갔다.
그러던 중, 기적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그대에게 “예쁘다”라고 칭찬을 들려준 것이다. 누군가가 그대에게 “똑똑하다”라고 칭찬을 들려준 것이다. 누군가가 그대에게 “멋지다”라고 칭찬을 들려준 것이다.
그대가 먼저 칭찬을 해준 것도 아닌데, 그 누군가는 그대를 먼저 알아보고, 그대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칭찬을 들려주었다.
그 기적 속에서 그대는 너무나 황홀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그대를 춤추게 하지 못할리가 없다.
꿈만 같았다. 그대는 춤추고, 춤추고, 또 춤추었다.
그대에게 칭찬을 들려준 그 누군가를 위해.
그대는 그대에게 칭찬을 들려준 그 누군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춤추었다.
그렇게, 그대는 그대에게 칭찬을 들려준 그 누군가의 노예가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노예가 되게 하는데, 그대라고 노예가 되지 못할리가 없다.
칭찬은 그대를 노예로 만들었다.
칭찬받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고 다닌 그대는, 자신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고 다닌 것이었다.
그대는 몰랐던 것이다.
칭찬도 평가라는 사실을. 평가는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는 사실을.
좋은 평가와 나쁜 평가를 구별하고자 하는 말은, 일진에는 좋은 일진과 나쁜 일진이 있다는 말만큼이나 형편없는 말이다.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똑같은 평가다. 평가는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나쁜 평가를 받지 않으려는 발버둥만큼이나,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발버둥 또한 고되다. 고된 노예의 발버둥이다.
그대는 정말로 몰랐던 것이다.
그대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지를.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그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알았다.
그대는 평가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그대는 그저 숨 좀 쉴 수 있기만을 바랐다. 숨막히는 평가 속에서 자유롭기만을 바랐다. 칭찬도, 비난도 없는, 그저 그대가 그대 자신이어도 아무 문제없는 현실만을 바랐다.
그대의 진실된 소망은,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칭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평가의 노예에서 벗어나,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있고 싶을 뿐이었다.
그대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그대를 정당하게 평가해서 학예회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자상한 부모 같은 존재가 아니라, 또한 그대를 엄격하게 평가해서 좋은 길로 인도해줄 위대한 스승 같은 존재가 아니라, 단지 평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시선일 뿐이었다.
그대여, 그대가 그 시선의 주인이다.
그대가 평가없는 현실을 열어갈 단 하나의 주인공이다.
평가하지 말라.
지금껏 피드백을 요청받을 때 그대는 평론가가 되어 왔다. 아부와 비난의 양극을 내달리는 평가의 제왕이 되어 왔다.
평가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피드백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평양냉면처럼 시원하고 담백하게 그대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 그대 자신을 변호하고 칭찬할 좋은 평가의 의도도, 그대 자신을 공격하고 비난할 나쁜 평가의 의도도 모두 잊고, 그저 참크래커 같은 그대의 이야기를 들리게 하라.
아삭아삭 자분거리는 그대의 이야기는 귀에 좋다.
귀에 좋아서, 어디에서나 듣고 싶은 그대의 목소리다.
평가하지 않는 그대의 시선이, 이토록 그대를 사랑스럽게 한다.
좋다. 그대가 있어서 좋다. 
있는 그대는 좋다. 있는 그대로 좋다.
그대로 있어서 좋다.

[불교신문3587호/2020년6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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