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이 모든 삶이 낳은 단 하나의 보물입니다”

불교상담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다. 임인구의 새 연재물 ‘어엿한 그대’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마음이, 또 그 마음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이미 어엿하게 서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연기법에 근간하여 역설과 상호관계성의 원리로 안내한다.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마음 자체를 친구처럼 또는 연인처럼 대하는 직접화법으로 구성된다.

임인구
임인구

그대여, 나도 알고 그대도 아는 이야기를 해보자. 그동안 상처받을까봐 외면해왔던 그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여기 함께 듣고 있다. 어쩌면 그대는 이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것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대는 그대가 기대했던 누군가로부터 단지 사과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간절히 모든 것을 다 걸었던 그대였지만 그러한 그대의 인생을 구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과를 들려줘야 하는 것은 그 누군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대가 사과받고 싶었던 것은 세상이었다. 순수한 그대를 배신한 바로 그 세상이었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는 결코 슬프거나 노하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불친절한 세상 앞에서 그래도 웃으며 가슴을 열고 손을 내밀어 온 착한 그대였다. 그로 인해 그대의 가슴은 상처투성이가 되어왔고, 그대의 두 손은 세상의 오물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 되어왔다. 

그대여, 이제는 방도가 없는 것 같다. 우리 정말 이 이야기를 해보자.

인생이 망한 그대다. 부정할 수 없이 망했다. 부정할 수 없다.

그대가 일찌감치 눈치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붙잡아내기 위해 끝없이 사념들과 씨름했던 그 무수한 불면의 밤들을 나는 안다. 흐려진 눈으로 꿈꾸어내던 그 모든 가련한 망상들을 나는 안다. 매일같이 그대가 그대의 가슴에 찔러댔던 수많은 칼들을 나는 안다.

칼날의 차가움만큼이나, 그대의 편이 아닌 것 같은 아주 작은 몸짓에도 무섭게 노려보던 그대의 눈빛은 섬찟했다.

그대는 차갑다.

그대는 춥다.

그대가 얼마나 추운지를 나는 안다.

더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며, 닫아건 돌벽의 차가움을 나는 안다.

상처받기 싫어서 그대는 마음을 닫았다. 닫힌 마음 안에서 그대는 신음한다.

“누가 날 좀 안아줬으면, 누가 날 좀 따듯하게 해줬으면.”

그러나 아무도 그대를 찾지 않는다. 그대는 춥고, 그대는 혼자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아무도 그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현실 앞에 그대는 화가 난다. 화가 나서 더욱 추워진다. 세상은 더욱 차갑다. 그대는 그 추위 속에 더욱 혼자다.

그대는, 이렇게 그대를 홀로 남겨둔 이들에게, 그대를 버리고 떠난 이들에게 너무나 화가 난다. 그대의 추위를 알아주지 않는 둔하고 모진 이들에게 너무나 화가 난다.

그대는 이 모든 것이 다 싫은 것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더 무언가를 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이 모든 것을 다 끝내고만 싶다. 다 싫고, 다 싫다.

그대의 소망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나는 정말로 안다.

그대는 죽고 싶은 것이다. 그대는 그냥 죽고 싶다.

“죽고 싶어. 죽어야겠다.”

그대가 소망하던 것이 오직 죽음뿐이었다는 걸 알게 된 이 순간,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허용된 이 순간, 그대도 알고, 나도 알았다.

바람이 불어온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틈새로 바람이 불어온다. 동산 위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아주 오래되고 착한 바람이 그대에게로 고요히 불어온다.

죽음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그대는 안다. 바람이 속삭이는 상냥한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이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돼. 이제 그만 쉬어도 돼.”

이제서야.

이제서야 그대는 쉴 수 있다. 이제 드디어 그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를 쫓는 것은 이제 없다. 그대가 쫓아야 할 것은 이제 없다. 그대는 이제, 그대는 이제, 아무도 아닌 그대여도 된다.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그대일 뿐이다. 그대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그대인 것으로 충분하다.

그대가 아무 것도 아닌 그대인 것으로 충분할 때, 그대는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다.

그리고, 그 빈 공간으로 얼굴들이 떠오른다.

보고싶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한 번만 더 보고싶다, 한 번만 더 보고싶다.

살고 싶다.

한 번만 더 살고 싶다.

다시 또 살고 싶다.

지금 그대는 알았다. 

산다는 것은, 보고 싶다는 것이다. 또 보고 싶다는 것이다. 또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움이 일렁인다.

그대의 몸은 사라진다. 녹아 없어진다. 위아래로 일렁일 뿐이다. 물결이 출렁인다. 그대는 떠오른다.

바다다. 바다가 그대를 떠올려준다. 그대가 사는 것이 아니다. 바다가 그대를 살게 하는 것이다. 보고 싶은 그리움으로 일렁이는 그대는 바다다. 그대는 그리움의 바다다. 이것이 삶이다.

삶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그대를 살게 했듯, 삶이 그대를 그리워했다.

그대의 인생이 그대를 그리워했다. 그대의 인생이 그대를 보고 싶어 했다. 그대의 인생이 그대를 소망했다.

나는 안다.

인생이 망(望: 바랄 망)한 그대다.

부정할 수 없이 그대의 인생이 바란 그대다. 부정할 수 없이 그대의 인생이 간절히 꿈꾸며 그리워한 그대다. 부정할 수 없다.

그대는 이 모든 삶이 바란 전부다. 이 모든 삶의 유일한 소망이다. 이 모든 삶이 낳은 단 하나의 보물이다. 그렇게 이 모든 삶은 그대를 보물로서 꿈꾸었다.

그대가 보물이라는 것을, 그대의 인생은 보고싶어 했다. 그대가 보물이라는 것을, 그대의 인생은 보고 있었다, 영원 속에서.

그대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다. 영원한 이야기다.

[불교신문3581호/2020년5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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