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마다 사람들 속에 보물이 있었네”

10월17일 새벽5시 표충사를 출발한 순례단이 일출 직전에 재약산 사자평에 다다랐다. 추위에 떨며 아침 공양을 하던 중 표충사 주지 진각스님이 지게를 지고 따뜻환 찐빵을 가지고 오자 회주 자승스님과 1조 스님들이 진빵을 먹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밀양=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10월17일 새벽5시 표충사를 출발한 순례단이 일출 직전에 재약산 사자평에 다다랐다. 추위에 떨며 아침 공양을 하던 중 표충사 주지 진각스님이 지게를 지고 따뜻환 찐빵을 가지고 오자 회주 자승스님과 1조 스님들이 진빵을 먹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밀양=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해인사에서 법보를 찾고 다시 길을 나선다. 11일차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음날도 온다고 했다. 그림(사진)이 잘나와 기자들은 좋다고 하는데 정작 걷는 순례자들은 고행길이다. 그동안 맑았던 날씨가 무색하게 보란 듯이 비를 쏟아 붓는다.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오전에 고령을 출발할 때는 그래도 날이 좋아 잘 넘기나 싶었는데, 아침10시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준비해간 우의를 꺼내 입었다. 그러나 내 것는 작년 동화사에서 봉은사까지 순례길에 썼던 우의라 방수가 안 된다. 비닐이 삭아 잔여물이 가사와 옷에 묻어났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잘 갈고 닦지 않으면 이렇게 낡고 삭아 다른 곳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하물면 수행하는 사람이야 어떻겠는가! 이렇게 작은 일에도 깨달음을 얻으며 오늘도 천리길 수행은 시작된다.

온몸이 젖어드는 비를 받아들인다. 신발에도 물이 흠뻑 스며들지만 그래도 꾸준히 걷다보니 숙영지에 도착했다. 이 날은 동화사 회주 의현스님과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과 소임자들이 격려차 방문하였다.

점심에 공양은 우동이다. 따뜻한 국물이 비에 떨었던 몸을 녹여 준다. 이 날은 원래 텐트에서 자는 일정이지만 퍼붓는 비로 야외에서는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을 분들의 배려로 마을회관과 학교, 노인정 등 여러 곳을 협조 받아 비를 피해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회주 자승스님과 함께한 선두그룹인 1조는 마을의 제사를 지내는 제실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날을 밖에서 보내면 많은 변수들이 생긴다.

이 변수 또한 인생이지 않을까? 삶이 언제나 좋은 날만 있을 수 없기 마련이다. 다만 그 고비를 잘 넘기고 대처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거기서 또 다른 기쁨과 희망의 싹이 틀 것이다. 현재 코로나19 팬더믹으로 국민들의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언젠가는 비처럼 그치기 마련이다. 비가 온 다음날은 더욱 맑은 하늘이 우리를 반겨 주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이날 잠자리에 들면서 ‘제실 모인 영가들은 큰스님들이 여럿이 와서 놀라지 않았을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평소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다 오늘은 잠시 자신들의 숙소를 내준 영가들을 위해 지장보살과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잠이 든다.

고령에서 창녕까지 27km를 12일차에 접어들어 걸었다. 지역의 경계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걸어서 창녕에 들어오니 감회가 새롭다. 마치 내 본 찰인 통도사 들어오는 것같이 마음이 편해진다. 창녕은 지역상으로 말사와 복지관과 어린이집, 요양시설 등 통도사에서 포교와 불사한 시설이 많은 곳이다. 여기 저기 통도사 말사와 시설에서 내건 현수막이 순례단을 반긴다. 비에 젖어 무직했던 발걸음에 힘이 생긴다. 우천으로 인해 안전상 문제가 생겨 보통 새벽3시30분 쯤 출발하는 시간을 새벽5시40분으로 늦추어 졌다.

전날보다는 빗줄기가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비는 조금씩 부슬부슬 내린다. 이렇게 비를 맞으며 묵묵히 걷는 것도, 온몸이 무거워 육체의 고통을 느끼는 것도 내 몫이다. 160여명이 함께 걷고 있지만 걷고 있는 이 시간만은 나만의 시간요, 공간이다. 대중 속에서 홀로 오롯이 수행에 정진하는 순간이다.

비가 온다고 해서 신발을 준비해 간 조깅화로 바꿔 신고 걸었다. 그러다보니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환경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적응이 필요한 것 같다. 세상이 변해 부처님의 진리로 가는 수단은 다를 수 있지만 올곧은 정진과 수행 그리고 신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부처님 진리라는 보물을 찾아 우리가 이렇게 걷는 것도 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이라는 원력이 바탕이 되어 함께 하는 것이다.

비를 맞으며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숙영지에 도착하자 갑자기 번개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순례단들과 함께 웃고 응원하며 창녕에서의 밤도 깊어 갔다.

창녕에서 부곡에 들어 13일차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 부곡에서 그동안 비로 얼었던 몸도 녹이고 잠시 쉬어 갈 수 있었다. 목적지인 불보종찰 통도사 회향을 5일 남겨 두고 잠시 몸을 추스리고 점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포교의 미래’에 대해 현장 사례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눴다. 삼보사찰 천리순례는 내가 평소 가지고 있는 지금의 불교중흥을 위해서는 대중과 함께하는 생산불교, 실천불교, 생활불교의 불교문화의 활용한 포교의 큰 방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양에 들어선 15일차다. 그 동안 걷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귀한 가르침을 얻었다. 신심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불심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골길 논두렁에서 잠시 쉴 있을 때 “마을이 생긴 이래로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처음”이라며 만세를 부르며 주름진 얼굴을 활짝 피며 웃어 준 노보살님을 보았을 때, 공장을 지날 때 불자라고 자랑스럽게 사장님과 직원들이 나와서 박수를 치며 응원해 주고, 자전거 라운딩을 하는 단체들이 모두 자전거를 한 켠에 세워두고 합장을 하며 예를 갖추고, 사물놀이단이 흥겨운 가락으로 순례단의 피로를 풀어주기도 했다.

그동안 보름 여 동안 우리는 길 위에서 신심어린 불심을 보았다. 그들은 우리게 고맙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힘이고 불교의 미래이며 불교중흥의 초석인 보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침 빗소리에 16일차 아침을 깨운다. 후두둑 텐트를 때리는 빗소리에 바짝 김장감이 든다. 서둘러 우의와 발목 보호대까지 챙기고 나중에 다 젖겠지만 임시방편이라도 비닐로 야무지게 신발을 동여맨다. 출발과 함께 심호흡을 길게 하고 화두를 다시한번 점검해 본다. 이 날은 화두가 잡히지 않는다. 무념무상으로 걸어 본다. 그렇게 내게 들어온 번뇌망상을 모두 받아들인다. 외부 사물의 현상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본다.

용궁사 주지 정무스님에게 받은 고무줄로 가사까지 올려 매고 야무지게 걷는다. 증간중간 잠시 쉬는 것도, 발의 물집도, 다리의 통증도 이제는 익숙하다. 동대부속 홍제중학교에서 아침공양을 하고 표충사로 향한다. 표충사 입구에서 신도들과 외국인들이 합장하며 환영해준다. 그 고마움에 울컥했다. 오후에 음악회와 자자로 오늘 하루도 마무리된다. 무언가 목구멍이 또 울컥거린다.

늦은 가을비는 쌀쌀한 추위도 함께 데리고 온듯하다. 이날 17일째 400km로 불지종찰 통도사 도착 하루 전이다. 이미 천리길을 걸었다. 표충사에서 울주군 상북면까지 거리 25km이다.

눈물이 자꾸 났다.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다리가 아파서도 아니다. 그냥 눈물이 났다. 그동안 깍지 않은 수염이 허옇게 나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쉽지만은 않은 거리였다. 그만큼 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의 발원이 간절하였기에 우리는 기꺼이 길에서 십 수일을 보냈다.

표충사에서는 200여명의 신도와 승가대의 학승들도 40여명의 일일순례자들이 우리와 함께 천리길 순례에 동참하였다. 점심시간 때쯤 일일순례자들과의 거리가 30분 이상이 났다. 걷는 것도 습관이 되어 처음 참가한 사람보다 속도가 빨리진듯하다.

사자평을 넘을 때는 잠시 어릴 적 감성이 떠올라 묘했다. 이 곳은 통도사에서 자랄 때 보광전선원 스님들과 안거철마다 따라 왔던 곳이다. 그때는 억새풀이 커서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훌쩍 커버린 키는 억새풀 넘어 저 멀리까지 보인다. 한 30년 만에 두 발로 걸어 이곳에 왔다. 이렇게 가을에 때 맞추어 오니 가을 은빛억새가 아름답게 출렁인다.

억새풀을 배경으로 가수 장사익 씨의 깜짝공연이 펼쳐졌다. 그 멋진 노래에 억새풀이 넘실넘실 춤을 춘다.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이 방문해 회향 준비로 분주한 통도사의 분위기를 전했다. 마지막 밤 숙영지 안 개울소리는 내 마음의 회향을 알리듯 웅장하게 들린다. 상월선원 만행결사 삼보사찰 천리순례 18일차 마지막 날이다. 우리는 마지막 보물인 불보종찰 통도사에 왔고 거기서 귀중한 보배를 얻었다. 우리는 그렇게 걸었을 뿐이다.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키고 코로나19 펜더믹에 지쳐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삼보사찰 천리순례’는 지난 10월 1일 승보종찰 송광사 입재로 상월선원 만행결사 회주 자승스님을 필두로 94명(비구 48명, 비구니 6명, 우바이 26명, 우바새 14명)과 실무자와 봉사자 모두 160여 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은 10월18일까지 423km, 1077리 64만보를 걷는 18일 간의 대장정으로, 행선정진하며 불보종찰 통도사에서 회향을 맞이했다.

열 여드레 동안 함께 걷고 순례를 편하게 하기 위해 도움을 줬던 실무자 그리고 봉사자, 일일순례자 등 많은 분들이 이번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함께했다. 매일 노숙하며 새벽3시에 일어나 예불과 발원문을 봉독하고 준비운동 후 4만보의 거리를 걷는 여정이었다. 그 여정 속에서 화두잡고 수행하고 그 속에서 번뇌도 맞이했다. 초가을에 시작된 천리길 순례는 반팔 옷을 입고 출발했는데, 회향 날에는 초겨울날씨의 쌀쌀한 날씨를 맞이하게 되었다. 더운 날, 추운 날, 건조한 날, 축축한 날, 맑은 날, 비오는 날 안개 낀 날 등 다양한 환경도 맞이하였고,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모두 밝은 웃음으로 순례단을 격려해 주었다.

불법승 뿐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연과 신심, 선행도 큰 보물이었다. 그 보물의 귀중함을 확인하고 국난극복과 불교중흥이라는 발원으로 모으는 것이 이번 세 가지 보물을 찾는 큰 과제였다. 우리는 불법승 세 가지 보물을 찾으려고 길을 떠났지만, 보물은 길마다에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속에 불심으로 녹아 있었다. 이 여정은 우리의 발원을 한곳으로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고, 그 보물들을 확인하고 모으는 구법의 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말없이 걸었던 삼보의 순례여
눈물을 흘리며 걸었던 천리의 순례여

너는 왜 내 앞에서 그리 울었던가!
나는 왜 내 앞에서 그리 힘들었던가!

그것은 고통이 아니었네.
그것을 힘듦이 아니었네.

우리는 한 몸으로 걸었고
우리는 한 마음으로 걸었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가라하지도 않았네

그것은 발심이었고
그것은 발원이었네

물집이 잡히고 발목이 아프고
무릎이 깨지고 어깨가 아파도

우리는 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이라는
대원으로 걸었네.

어려운 것을 행하면 
부처님과 같다는 칭송도 감사하고

대중의 응원도 노보살님의 작은 합장도
우리는 불교중흥의 작은 씨앗임을 알았네

우리는 그렇게 걸었을 뿐이라네.

불교신문 주간 ohsim@ibulgyo.com

[불교신문3688호/2021년10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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