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스님이 들려주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60> 에필로그①
[보일스님이 들려주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60> 에필로그①
  • 보일스님 해인총림 해인사승가대학 학장 대행
  • 승인 2020.12.22 09:55
  • 호수 3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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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수술에 ‘인간 의사’와 인공지능 중 누구 선택?”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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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고각하(照顧脚下)

옛날 송나라 때,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 스님은 세 명의 제자와 함께 밤에 산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가랑잎이 솟구치면서 등불이 꺼져 버린다. 주위는 온통 칠흑 같았고, 발밑은 천 길 낭떠러지였으며, 언제 짐승이 달려들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법연스님은 절체절명의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제자들의 공부를 점검한다.

“자,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제자 혜근(慧懃)스님이 대답했다. “광란(狂亂)하듯 채색(彩色) 바람이 춤을 추니 앞이 온통 붉사옵니다.(彩風舞丹宵)” 다음은 청원(淸遠)스님이 대답했다. “쇠 뱀이 옛길을 가로질러 가는 듯 하옵니다.(鐵蛇橫古路)” 선문답이었다. 마지막으로 원오(圜悟)스님이 입을 열었다. “우선은 불을 비추어 발밑을 봐야 할 것입니다.(照顧脚下)” 

연재를 시작한 지 거의 두 해가 다 되어 간다. 오래전 해인사승가대학 학인 시절, ‘인공지능 로봇에도 불성이 있을까?’라는 엉뚱한 질문 하나로 인공지능과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그 기연(機緣)은 수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요즘은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라는 두 개의 거대한 폭풍 속에서 인공지능의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겨울로 접어들면서 3차 대유행에 직면해 있고, 급기야 확진자수가 12월14일 현재 1000명을 넘어섰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팬데믹이 서로 뒤질세라 키재기를 하며 뒤엉킨 바다 한가운데서, 여전히 파도는 높고 항구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애초에 격랑 속 사바세계의 모습을 산승의 시선에 담아내려는 시도 자체가 욕심이자 미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간 60여회가 연재되었고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30개의 주제를 다뤘다. 부끄럽게도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산속에 머무르면서, 매주 연재를 준비하면서 덕분에 나름의 자료수집과 공부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설레는 시간이었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공부하면서 때로는 놀라기도 했고, 심지어 다가오는 미래가 두려운 생각마저 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부지런히 변화를 포착하려 해도, 변화의 속도는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몇 개월 전 미리 준비해둔 자료들이 이미 구식 또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빛은 보이지 않아 캄캄하고, 서 있는 곳은 위태로우며, 당장이라도 풍랑이 우리를 태운 조각배를 집어삼킬 기세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지금까지 다뤘던 이야기들을 원오스님처럼 ‘조고각하(照顧脚下)’하는 마음으로 돌이켜보고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는 긴 여정의 기록이었다. 다가오는 미래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위험하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결국 우리가 선택하는 문제라는 믿음은 강조해 두고 싶다. 이쯤에서 일단 가던 길을 멈추고, 그간의 항해 과정에서 그려진 항로의 궤적을 복기해 보면서, 연재를 마무리할까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보다 깊은 종교, 철학, 예술 이야기는 후일을 기약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로 유명한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재형이고, 전 세계가 뜻하지 않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직면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혁신가로 유명한 닐 거센필드(Neil Gershenfeld)에 따르면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세계, 즉 아톰(ATOM)으로 이루어진 현실세계를 구성하는 정보의 총량과 인터넷 세계, 즉 비트(BIT)로 이루어진 가상세계를 구성하는 정보의 총량이 대등한 수준 또는 일치하는 세상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 4차 산업 시대”라고 정의한다. 이것을 가상과 현실 세계의 융합 또는 ‘O2O(Online to Offline) 융합’이라고도 하며 현실세계에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것과 온라인 공간의 데이터 및 소프트웨어를 실시간으로 통합하는 시스템을 총칭한다. 

지금까지 이 4차 산업혁명 속 핵심 기술들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다양한 철학, 종교, 사회적 의미들을 고민해 보았다. 인공지능에 대한 불성 논의부터 시작해서 트랜스 휴머니즘, 딥러닝, 의료 인공지능, 드론, 인공지능의 윤리와 규범, 자율주행 자동차, 가상현실, 유전자 가위기술,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인공지능 킬러로봇, 3D프린터, 빅데이터, 스마트시티, 인공감정과 반려로봇, 화성 이주계획, 교육과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과 예술, 5G 기술, 코로나 팬데믹과 인공지능, 기본소득 문제, 생체이식 칩, 나노기술, 양자컴퓨터, 하이퍼루프, 그리고 가장 최근의 코로나 재유행과 데이터까지 다루었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연재 중, 주목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의 모습들을 간단히 하나씩 되짚어 본다. 

➲ 모든 것은 변화한다 

4차 산업시대에 들어서면서 생체과학 기술과 인공지능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인간종의 탄생까지 논의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어느 수준까지 첨단과학 기술을 수용해서 생명을 유지, 존속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유전자 복제, 변형, 조작 기술을 어느 선까지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허용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나. 이 새로운 기준과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이 기준의 이면에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이자 불교의 고통에 대한 이해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4차 산업시대의 변화는 자칫 인간다움에 대한 전통적 신뢰와 가치 기준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이 종전에는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인류를 위해 봉사했다면, 현재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고 심지어 재료로 활용하고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인 ‘트랜스 휴머니즘(Trans Humanism)’은 나노기술, 생명공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등을 이용해 인간의 능력을 증강 또는 개량하려는 일련의 흐름이다.

상당수의 미래학자는 현재의 인류가 이 트랜스 휴머니즘 시기를 지나면 종국에는 현재의 순수한 생물학적 인류가 사라지고 모든 인간이 첨단 과학기술과 결합한 ‘포스트 휴머니즘(Post Humanism)’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는 긴 여정의 기록이었다. 다가오는 미래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위험하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결국 우리가 선택하는 문제라는 믿음은 강조해 두고 싶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는 긴 여정의 기록이었다. 다가오는 미래의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고, 위험하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가오는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결국 우리가 선택하는 문제라는 믿음은 강조해 두고 싶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딥러닝, 세상을 바꾸다 

4차 산업혁명을 논하면서 가장 핵심기술은 뭐니 뭐니 해도 인공지능이다. 그중에서도 딥러닝은 거대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기술이다. 일론 머스크조차도 “현존하는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은 아마도 인공지능일 것이다”라고 했듯이 그 파괴력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딥러닝’은 인공지능 기술의 첨단을 자랑하지만, 그 작동과정의 흐름을 정밀하게 추적하기가 어렵다. 인공지능의 정보처리 과정에서 소위 “블랙박스화” 돼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딥러닝’은 인간이 창조했지만, 데이터 입력이 완료되고 실행키를 누르는 순간 인간의 손을 떠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딥러닝’에 대해서 느끼는 놀라움 뒤에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유이다. 현재에도 ‘딥러닝’은 추상화된 판단을 통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 그 과정은 알 수가 없다. 어느 수준으로 이 ‘딥러닝’이 진화를 거듭할지 현재로선 예측할 뿐이지만, 분명한 건 인간의 개입 여지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알파고’의 하루를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환산한다면, 35. 7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알파고’가 바둑 연습을 한다면 하루에 백만 번의 대국이 가능하다. 이세돌이 아무리 연습벌레라고 해도 그 정도의 노력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인공지능을 인간이 이기려는 시도가 과연 합리적일까. 

인간 대 기계라는 경쟁 구도 또는 이분법적 구도에서는 인간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일 뿐이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경쟁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이다. 아직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 인간의사 & 의료 인공지능

알파고를 통해 세상에 등장한 딥러닝 기술은 이제 산업 전반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왓슨’을 비롯한 의료 인공지능의 혁신은 단순히 의술의 발전과 질병 치료 방법의 개선 정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딥러닝 기술은 4차산업 시대의 의료 패러다임을 데이터 기반으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빅데이터(Big Data) 의학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3년 뒤에는 기존 의학지식 총량이 두 배가 된다고 전망한다. 그리고 2025년이 되면 3일에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제 신묘한 의술을 자랑하는 명의(名醫)를 찾아 나서던 시대에서 치료의 열쇠를 쥔 데이터가 우리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의료 현장의 모든 것은 인공지능이 통제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것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이터가 돈이고 권력이 되는 시대이다. 이 자원은 재생이 가능하고 고갈될 염려가 없다. 또한 기존 데이터가 가공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증폭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명의 환자가 발병에서부터 완치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양의 데이터가 생산된다. 그것은 임상데이터로 저장되고 새로운 환자의 데이터와 상호비교 분류된다. 그리고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데이터로 확장된다. 새로운 자원이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데이터의 홍수는 의료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 시스템과 의학의 융합은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미 현실 문제로서 진행되고 있으며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만약 당신이라면, 인간 의사와 의료 인공지능 둘 중에 어느 쪽을 더 신뢰하십니까?

[불교신문3639호/2020년12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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