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 담은 책 보급되지 않던 시절…
가뭄 단비처럼 불자들 마음 적셔준 불교신문”
“부처님 가르침 담은 책 보급되지 않던 시절…
가뭄 단비처럼 불자들 마음 적셔준 불교신문”
  •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09.26 11:27
  • 호수 3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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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불교신문은 나의 도반 - 신규탁 불교신문 前 논설위원


불교신문 60년 세월, 글로 적어
종이에 찍어 세상에 펼쳐내…
‘소원 빌러’ 절에 온 불자들을
‘제대로’ 살도록 향상시켜 왔다
27년째 불교신문 벗하며 살지만
앞으로도 계속 보아야 할 인연

매주 일요일이면 나는 아침 일찍 절에 간다. 이렇게 일요일마다 절에 간지 꼬박 21년째가 된다. 절에 가서 내가 하는 일은 그 절에 오신 재가 불자님들에게 불경을 읽어드리고 간단하게 풀어 이야기하는 일이다. 

직업은 대학교수이지만 전공이 불교철학이다 보니, 절에서 강의 초청을 받는 일이 더러 있다. 그 때마다 나는 그럴 주제가 못된다고 사양한다. 그들을 재미있게 하는 언변이나 이야기꺼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말로 그렇게 해본들 휘발유 날아가듯이 남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고정 출연’하는 절이 있다고 핑계를 대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두 번의 ‘게스트 출연’으로 불교 이야기를 해본들 그 역시 날아가기 일쑤이다.

그런데도 21년째 같은 절을 한결같이 다니게 된 배경에는, 그 절에서 나를 ‘고정 출연’으로 전속했기 때문이다. 수지독송해야 할 경전을 반드시 지참하게 했고, 그것을 읽어드렸다. 경전은 절에 오시는 분들이 직접 읽고, 나는 그저 그분들의 ‘읽기 도움이’ 역할만 하려 했다. 경전 속의 글자는 두고두고 다시 볼 수 있어 날아갈 염려가 없으니, 나는 그 쪽을 선호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맺은 절 인연은, ‘경전의 문자’를 가운데 놓고 회전문처럼 배우러 들어가 ‘읽기’도 하고, 전하러 나와 ‘읽어주기’도 했다. 
 

신규탁 교수는 21년째 일요일마다 다닌 사찰에서 불자들 대상으로 경전을 풀어준다.
신규탁 교수는 21년째 일요일마다 다닌 사찰에서 불자들 대상으로 경전을 풀어준다.

➲ 경전의 문자, 읽기도 읽어주기도…

사람마다 절을 찾는 계기는 다르겠지만, 대개는 ‘소원 빌러’ 간다. 만약 내가 남양주 봉선사 월운스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빌러 다니는 쪽으로 마냥 기울었을 것이다. 항상 은혜롭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절에 빌러 오신 분들에게 경전 속의 ‘말씀’ 전하려고 노력한다.

‘나쁜 일 줄고, 좋은 일 늘도록’ 비는 것은 삶의 현장이다. 그러다 보니 ‘좋음’이란 무엇이고 ‘나쁨’이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고, 또 그것들이 늘고 주는 이치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했다. 또 설령 그것들을 죄다 알았더라도, 막상 해보면 안 되니 그 안 되게 하는 장애를 다스려야 했다.

가고 싶은 학교 가고, 원하는 직장 잡고, 좋은 짝 만나고, 돈 많이 벌고, 안 아프고, 오래 살고, 남들 사랑 받고, 출세하여 높이 올라가고, 올라가면 오래 자리하고, 속상하는 일 없고, 꿈자리 좋고, 금슬 좋고, 형제자매질손 화목하고, 죽어서 극락 보장되면, 이보다 좋은 게 무엇일까! 사실, 이것을 떠나 인생살이 무엇이 더 있을까? “중생으로 인해서 깨달음도 있고, 또 깨달으신 부처님도 계신다”는, 저 ‘보현행원품’ 의 사연도 이런 맥락을 짚은 게 아닌가?

그렇다. 이런 중생들의 울고 웃는 인생을 떠나 무슨 ‘도’가 따로 있겠는가! 이런 소원을 가진 중생들에게 ‘제대로’ 그 소원을 이루게 해주려는 것이, 부처님의 일생사업이었다. ‘제대로’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휘발성이 없는 문서에 꽂혔다.

➲ 중생으로 인해 깨달으신 부처님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될 때에, 당시 사람들은 부처님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사시는’ 분이고, 또 ‘제대로 사는 길을 일러주시는’ 분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제대로’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인생의 주인공도 나 자신이고, 나아가 나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부처님 ‘말씀’이다. 또 세상은 얽히고설킨 원인과 결과들로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고 일러주신 ‘말씀’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살라고 하셨다. 이렇게 하신 그분의 인품과 말씀을 따르는 이들이 모여들어 스님들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마침내 그런 ‘말씀’들을 스님들이 글자로 적어 책으로 묶었고, 그런 말씀들을 따르던 스님들이 책을 짊어지고 온 사방으로 퍼졌다. 산 넘고 강을 건너고, 이 나라 글로 기록하고 저 동네 말로 옮기고, 인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이어 가고 또 이어 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 스님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절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렇게 첫 발을 떼었지만, 위와 같이 만들어진 절을 찾는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먹었고, 먹은 마음을 이루려고 몸소 행동으로 옮겨 절을 찾았기 때문이다.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는 절에 사는 스님들의 몫이다. 잘 살아보겠다고 절을 찾은 저네들을 잘 살도록 해주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답해보자.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 부처님 하시던 대로 해주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부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고 싶다고요? 그럼 부처님 말씀을 ‘글’로 적은 경전을 보세요. 또 말씀대로 사시는 ‘스님들’을 보세요. 나는 그렇게 말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몸소 경전도 읽고 마음도 닦아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빌러온 재가 불자들을 제대로 살도록 향상시키고 개발시켜오고 있다. 이렇게 해서 불교신도를 1000만 명 안팎으로 늘렸다.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기적’인데, 이런 ‘기적’ 만들기에 ‘글’은 큰 힘을 보탰다. ‘글’을 실은 책이 마땅히 보급되지 않던 그 시절, 불교신문은 가뭄의 단비처럼 불자들의 마음을 적셨다. 불심에 물꼬를 대서 깨달음의 종자를 움 틔웠다.
 

2020년 백중 기간 동안 파주 보광사 만세루에서 진행한 필자의 보현행원품 특강. 코로나19로 참석인원을 20명 한정하고 동영상 SNS로 방송했다.
2020년 백중 기간 동안 파주 보광사 만세루에서 진행한 필자의 보현행원품 특강. 코로나19로 참석인원을 20명 한정하고 동영상 SNS로 방송했다.

➲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스님들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은 ‘음성’이 먼저이다. 그 뒤에 ‘음성’을 ‘문자’로 엮었다. 그런데 ‘음성’이 있으려면 먼저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부처님 살아계시던 당시에서 보면, ‘마음’에서 ‘음성’으로, 다시 ‘음성’에서 ‘문자’로 흘러 내려간다. 반면 부처님 돌아가신 지금에서 보면, ‘문자’를 통해 ‘음성’을 목전에서 듣는 듯이 복원하고, 그렇게 복원된 ‘음성’을 잘 들어 ‘마음’ 헤아리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 발심한 스님들은 이 길에 지금도 매진하고 있다. 더 근원적인 기준으로 말하자면 부처님의 ‘마음’과 ‘음성’이 으뜸이다. 그런데 ‘마음’이나 ‘음성’은 휘발성이 강하다. 영상촬영이나 음성녹음도 없던 시절이다. 그나마 총기 있는 제자들이 통째로 외워서 전하고 전해왔다. 지금도 남방의 스님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다. 결국 ‘문자’ 기록이 필요했다. ‘팔리어’로 기록하고, ‘산스크리트어’로 기록했다. 그것들을 다시 ‘티베트어’로 ‘한문’으로 ‘한글’로 옮겨 기록했다.

기록에 쓰는 재료는 시대와 장소마다 달랐다. 커다란 나뭇잎을 찌고 말려 단단하게 만든 패엽도 있고, 돌도 있고, 쇠붙이도 있고, 대나무 껍질도 있고, 나무판도 있고, 비단도 있고, 종이도 있다. 조선 사람들은 쇠붙이로 된 수많은 ‘활자(活字)’를 만들어, 문장에 필요한 글자를 하나하나 가려 뽑아 판에 짜 맞추어, 종이에 찍었다. 글자 뽑는 전문가를 문선공(文選工)이라 부르고, 그렇게 짜는 것을 조판(組版)이라 한다. 근대화되면서 이런 작업이 서울 을지로를 중심으로 퍼졌다. 

➲ 불교신문, 불심의 물꼬 깨달음으로

을지로를 밤늦도록 오고가는 무수한 불교신문 기자들은 크게 두 측이다. 한 측은 취재하고 글 쓰는 이들이고, 한 측은 그렇게 써온 글을 판에 앉히는 이들이다. 당연, 신문 만들기와 잡지 만들기의 지휘봉은 판 짜는 이가 쥔다. 판에 넘치면 글 양을 줄이라 하고, 모자라면 늘리라 한다. 양 측의 긴장을 조절하고 기획하고 총괄하는 이가 바로 편집장이다. 이 동네말로 ‘데스크’라고도 부른다. 중국 고전 <시경>에 ‘천생증민(天生蒸民)’이라는 말마따나 편집장은 하늘이 내 백성 만들 듯이, ‘하늘’ 같은 존재이고, 신문은 ‘내 백성’이다. 

불교신문 60년 세월은 부처님 말씀을 ‘글’로 적어 종이에 찍어 세상에 펼쳤다. 그리하여 빌러 절에 온 사람들을 ‘제대로’ 살도록 향상시켜왔다. 세월 속에서 말씀을 전하는 매체도 확장되었다. 라디오로 전하더니 텔레비전으로도 전했고,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전하고 있다. 이렇게 매체는 변해왔고 또 변해가겠지만 ‘글쓰기’와 ‘판짜기’는 여전할 것이다.

불교신문은 이미 종이 매체는 물론 전파로까지 넓혀가고 있다. 게다가 이미 지났거나 현재하는 것에 국한한 ‘판짜기’를 넘어, 앞으로 마땅히 있어야 할 열린 미래 ‘판짜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불교신문을 1994년 초부터 아주 가까이 접해 27년째를 넘기는데, 향후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계속 보아갈 것이다. 

[불교신문3617호/2020년9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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