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개 별이 다시 무수한 별 되어 찬란하게 빛나길”
“60개 별이 다시 무수한 별 되어 찬란하게 빛나길”
  • 성전스님
  • 승인 2020.07.05 11:57
  • 호수 359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교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불교신문은 나의 도반 - 남해 염불암 성전스님


60여년 기자들 고뇌와
수많은 불자들 발원ㆍ감동이
별처럼 빛나고 있는 불교신문

안 좋은 뉴스 홍수 속에서
손에 잡으면 마음 정화되는
그 신문이 바로 불교신문

내 모든 궤적들 들어있는
오랜 벗…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문 되길’ 서원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해인사 같으면 예불을 모실 시간이지만 내가 거처하고 있는 작은 암자는 4시나 되어야 예불을 모신다. 

도량에 나가 하늘을 보았다. 비가 오고 난 뒤라 그런가,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나는 별. 그러나 별들의 빛은 언제나 화려하지 않고 다정하다. 그 다정함으로 나는 언제나 별을 떠올리고 별 하나의 꿈과 별 하나의 사랑을 노래한다. 만약 별이 달빛처럼 넘치는 빛을 가지고 있다면 별들의 그 아기자기한 빛의 다정함은 그려지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별을 보면 오래된 얼굴들이 떠오르고 오래된 시간과 저 먼 곳의 소식들이 그려지고는 한다.

가끔은 먼 곳과 먼 시간이 그리워지고는 한다. 그것은 지금이 불만이라서가 아니라 먼 곳을 그리면 삶이 좀 더 아름다워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충족이 아니라 아름다움만으로도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과 사간대가 있다는 것은 썩 괜찮은 일이기도 하다. 예불을 앞둔 시간에 새벽 별을 바라보는 것도 그 아름다운 또 다른 시간 하나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흘러 좀 더 먼 훗날 나는 이 시간을 멀어진 따뜻한 시간으로 호명하게 될 테니까. 
 

성전스님
성전스님

불교계 최고 신문에 글을 쓰다 

<불교신문> 창간 60주년을 맞아 원고 청탁을 받고 나는 ‘불교신문이란 내게 무엇일까’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불교신문에 첫 글을 쓰던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불교신문에 글을 처음 쓴 것도 참 오래 전 일이다. 나는 그 날의 설렘을 기억하고 있다. 언제인지 정확한 시간의 기억은 없지만 원고 청탁을 받고 글을 쓰던 그 시간의 설렘은 아직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불교계 최고의 신문에 글을 쓰다니. 그것은 마치 작은 꿈 하나가 이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중이 되어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최초의 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 여기저기 많은 글을 쓰게 되었지만 그 시작은 불교신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불교신문과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예전에 썼던 글이 생각이 난다. 내가 곡성 태안사에서 갓 계를 받고 중노릇을 할 때이다. 머리를 짧게 깎은 청년 하나가 찾아왔다. 인상이 좋았던 청년은 출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청년에게 그럼 일단 같이 생활을 해보자고 했다. 

청년은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긴장된 자세로 여러 지시사항들을 잘 따라 주었다. 하지만 청년은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마치 수증기가 증발하듯.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름은 무엇이고 사회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물어나 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미 떠나버린 자에게 아쉬움을 가진다는 것도 사실은 부질없는 짓이기도 했다. 나는 이내 그 청년을 잊었다. 그 당시 풋중의 꽉 찬 일과를 묵묵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상사 계급장을 단 군인 한 분이 찾아왔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분을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 행자였다. 그는 현역 군인이었던 것이다.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그가 휴가가 끝났어도 귀대를 하지 않아 이렇게 찾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얼마나 출가가 하고 싶었기에 이런 모험을 단행했을까. 출가를 꿈꾸는 그의 모습을 나는 불교신문에 썼었다. 

그 후 나는 그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어떻게 됐을까. 출가를 했을까, 아니면 계속 군인으로 살아갔을까. 한 사람의 다음 시간에 대한 궁금증을 그는 내게 가장 크게 남긴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 나는 다시 그의 삶에 대한 호기심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돌아보면 불교신문은 내게 시간의 증거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풋중 시절부터 최근의 시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궤적들이 불교신문에 다 있는 것만 같다. 그만큼 불교신문에 많은 글을 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긴 어떤 스님은 조계종에 글 쓰는 스님이 성전이 밖에 없느냐고 기자들에게 항의할 정도였다고 하니. 

내 도반들과의 시간들 그리고 스님들과 성지순례를 갔던 시간들 그리고 다시 산 중에서의 내 삶의 시간들도 모두 이야기가 되어 불교신문에 무슨 이정표처럼 박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이야기들의 이정표가 지향해 가는 곳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으나 별처럼 다정하고 아름다운 곳을 향한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나는 불교신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불교 정도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불교적인 문화와 소재들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해 나간다면 그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 되겠는가. 안 좋은 뉴스기 넘치는 세상에서 불교신문만은 그 뉴스들과 상관없이 언제나 맑고 향기로운 이야기들만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실 우리는 안 좋은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일종의 스트레스처럼 다가오는 세상의 뉴스들 속에서 그래도 손에 잡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신문이 불교신문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고산 큰스님을 모시고 총무원장 사서를 살던 시절, 스님은 일간지 기자들을 만나면 늘 말씀하시고는 하셨다. 사실을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뉴스를 많이 찾아내서 국민들에게 알려주라고. 그때 나는 그 말씀의 실현성에 대해서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너무 많은 악이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물론 그때보다 세상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뉴스를 발굴하고 찾는 일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교신문은 신문 구분상 특수 주간지에 속한다.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 특수 주간지로서 종단 뉴스를 담아내기에는 불교신문은 한계가 있다. 물론 인터넷판으로서의 불교신문을 예외로 한다면 종이신문으로서의 불교신문은 좀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신문 1면에 스님들의 향기로운 글을 싣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불교신문 1면은 언제나 맑고 향기로워야 한다는 바람이 내게는 있다.

사진 역시 불교신문이 큰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장의 사진이 가지는 의미는 원고지 열 장의 가치보다 선명하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불교신문은 교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우수한 사진기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들이 펼쳐 보이는 스님들의 모습과 산사의 모습들은 우리 불자들이 어쩌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내게 물어 본다. 불교신문의 독자인 당신은 불교신문에서 무엇을 가장 만나고 싶은가. 나는 서슴지 않고 답할 수 있다. 가슴을 물들이는 한 장의 사진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찰나의 화두’는 썩 좋은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문의 판형에 비해 너무 작은 부분이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추가한다면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해인>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꼭지가 바로 표지의 사진과 그 밑에 달린 캡션이었다. 아름다운 한 장의 사진과 그 사진의 감상을 담은 짧은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해인지를 대표하는 꼭지가 바로 그 한 장의 사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답게 다가오는 그 이름 

‘불교신문’이라는 이름은 내게 정답게 다가온다. 그 이름은 내가 출가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이름이고 내가 세상을 떠나도 여전히 남을 이름이다. 그 유구한 세월 동안 불교신문을 읽었던 독자들과 앞으로 또 불교신문을 보고 읽을 수많은 미래의 독자들을 생각해 보라. 블교신문을 만드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그 지중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불교신문의 기자들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든 시간의 고비마다 불교신문의 나아갈 길을 고뇌하던 그들의 모습을 나는 곁에서 지켜 본 시간도 있다. 그들의 그 고뇌가 있어 불교신문은 더욱 정답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오래된 이름, 불교신문. 

그 속에는 기자들의 고뇌와 수많은 불자들의 발원과 감동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창간 60주년. 60개의 별이 다시 무수한 별이 되어 빛나기를 바란다.
 

◼ 성전스님은…
월간 <해인> 편집장과 불교신문 주간을 역임한 불교계 대표적 문장가이자 BBS 불교방송 라디오의 인기 진행자이다. 현재 남해 염불암 주지 소임을 보며 BBS 불교방송 ‘좋은 아침 성전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본지에 인기리에 연재했던 ‘성전스님의 행복해지고 싶을 때’를 비롯한 향기있는 글을 <행복하게 미소 짓는 법> <지금 후회없이 사랑하라> <삼천 년의 생을 지나 당신과 내가 만났습니다> <행복한 미소> <그래,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등의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불교신문3595호/2020년7월4일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