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참선만이 견성오도 첩경이다”
“오직 참선만이 견성오도 첩경이다”
  • 어현경 기자
  • 승인 2020.06.30 13:16
  • 호수 35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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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흥당 백운대강백 추모 특집’
지흥당 백운대강백 발자취


석산스님 은사로 백양사 출가
1952년 동산스님 문하 입실
범어사 통도사 강원 졸업 후
지관스님과 마산대학서 수학

남다른 필력으로 집필 매진
선어록과 선사일대기 남기고
6월19일 담양 용흥사서 원적

출가해 평생 교학을 연찬하고 참선 수행하며 정진해온 지흥당(知興堂) 백운(白雲)대강백이 6월19일 오후6시40분 담양 용흥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납 77년, 세수 87세. 

백운스님의 속명은 송백운이고 법호는 지흥, 법명은 백운이다. 스님은 1934년 전남 장성군 북이면에서 태어났다. 만암대종사 조카이고 인곡대선사의 사촌형이기도 한 부친 송종수 거사와 모친 전재임 보살 슬하에서 자라다가 5세 때 강진 화방사로 갔다.

스님이 1976년 본지에 기고한 ‘출가기’에 따르면, 사주에 명운이 짧은데 절에 가면 명을 이을 수 있다고 해 부모님이 화방사로 보냈다고 한다. 워낙 어린 나이라 밤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울기를 몇 달, 저녁예불 끝나면 절을 하라는 화방사 스님의 말씀을 따라 늦은 밤까지 부처님 전에서 절을 올렸다고 한다.

스님은 “열심히 절하면서 두가지 이득을 얻었다”며 “몇 시간씩 절을 하고 나서는 밤중에 깨 어머니를 찾지 않으니 어른들이 편안해졌고, 또 예불 공덕으로 명을 이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9세 때까지 화방사에서 유년을 보내다가 스님은 1944년 만암대종사의 맏상좌인 석산스님을 은사로 백양사에서 출가했다. 그 후 1947년 광주서중과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며 위험에 처해지길 여러 차례, 그 때마다 스님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며 구원해주면 수행자로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서원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동란으로 모두가 힘들었던 1952년 스님은 부산 범어사로 와 동산대종사 상좌로 입실했다. 이는 만암대종사와 용성대종사의 친선약조에 따른 것으로, 만암대종사는 범어사 강사로 있던 석산스님을 백양사로 돌아오게 하고, 대신 백운스님을 동산스님 문하로 보냈다. 

스님은 범어사에서 3년 여간 동산대종사를 시봉했다. 범어사 강원에서 수학하다가, 1955년 영축총림 통도사 강원으로 가 공부를 마쳤다. 이어 스님은 1958년 해인사 강원의 전신인 마산대학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대종사 등 여러 스님과 동문수학하고 1962년 졸업했다.

그 후 1971년부터 1977년까지 도광스님의 요청으로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강주 소임을 맡았다. 또 1977년부터 1979년까지 범어사에서 강주를 맡아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어 1980년에는 조계총림 송광사 구산스님의 부탁을 받아 강원을 개설하기도 했다. 다시 범어사로 돌아온 스님은 1982년부터 1988년까지 강원 강주를 역임하시며 후학을 양성했다.

또한 스님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화두를 참구했다. 조사들이 남긴 선어록을 읽으며 선(禪)을 이해하게 되자 스님은 “참선하는 길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하는 첩경”이라며 진정한 출가자라면 선수행에 신념을 다 바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백운스님은 다성(茶聖)으로 추앙되는 초의선사의 정통 다맥을 이었다. 초의선사의 다법과 유품을 전수받은 범해각안, 원응계정, 응송영희, 지흥백운스님으로 초의선사의 다맥이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님은 필력도 남달랐다. <불교신문>이 주최한 고승일화 공모전에서 두 차례나 당선될 정도로 글쓰기가 뛰어났으며, 선어록과 선사 일대기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한국불교사와 편양언기선사의 일대기를 소설로 쓴 <양치는 성자>를 비롯해 서옹대종사의 뜻에 따라 <임제록 연의>를 편집했다. 또 <진묵대사> <초의선사> <완당 김정희> <만암대종사> <동산대종사> <성월선사> <혜암종정> <오세동자> <인곡대선사> <부설거사> <연선도인> 등을 다수의 원고를 집필하면서, 불서편찬과 불교대중화에 대한 원력을 실천했다.

10년 전부터 백운스님은 상좌인 교육원장 진우스님이 있는 담양 용흥사에 주석했다. 교학과 참선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진해온 스님은 6월19일 원적에 들었다.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6월22일 백양사 연화당에서 백양사·범어사 문도장으로 엄수됐다. 백운스님 출가본사인 백양사와 동산스님 회상에서 수행했던 범어사 등 두 본사(本寺)가 합동으로 문도장을 거행한 것이다. 이날 500여 명에 달하는 사부대중이 운집해 백운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사진 위>

사바세계 중생들 곁으로 돌아오기를 발원했다.
 

◼ 임종게

하얀 낮에는 밝은 구름 벗을 삼고
푸른 밤에는 맑은 냇물 벗이 되어
시비 벗어난 자연의 온갖 모습이여
정녕 그대는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

白日朋友昭昭雲(백일붕우소소운)
靑夜親舊湛溪水(청야친구담계수)
斷是非自然諸樣(단시비자연제양)
丁寧汝使我心樂(정녕여사아심락)

◼ 49재 일정

  초재 6월25일(음 5월5일) 오전 10시 백양사
  2재 7월2일(음 5월12일) 오전 10시 용흥사
  3재 7월9일(음 5월19일) 오전 10시 미륵사
  4재 7월16일(음 5월26일) 오전 10시 용흥사
  5재 7월23일(음 6월3일) 오전 10시 용흥사
  6재 7월30일(음 6월10일) 오전 10시 용흥사
  7재 8월7일(음 6월17일) 오전 10시 범어사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사진=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불교신문3594호/2020년7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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