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자애롭던 금정산 호랑이”
“큰스님…자애롭던 금정산 호랑이”
  • 김윤희 맑은나라맑은소리 대표
  • 승인 2020.07.04 23:24
  • 호수 35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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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백운 큰스님 추모하며

서른 즈음 불쑥 찾아든 인연
젊은 기자에 선문의 신선함과
미욱함 일깨워준 지혜의 창고

막 삶은 고구마 건네주시며
“아가, 신문 만들며 묵고해라”
진한 사투리 속 따스함 생각나
김윤희
김윤희

신라시대 꽃을 피운 선종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이라는 용어를 알게 해 준 대강백 지흥당 백운대선사는 내 서른의 어느 날에 불쑥 찾아든 ‘금정산의 호랑이’이셨다. 그러나 말이 호랑이지 자애롭기로는 그지없는 어른이셨다.

부산불교신문사 시절, 신문의 한 면을 통째로 채웠던 구산선문에 관한 글은 젊은 기자에게는 선문(禪門)의 신선함을 제공했고, 미욱의 중생으로서는 미욱에서 눈을 뜨게 해주는 지혜의 창고였다. 가지산문, 그리고 그를 뒷받침해주는 자료사진들을 찾아 앉히는 일은 신문을 만드는 일에서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좋은 글에 준하는 사진을 골라 신문의 한 면을 채우고 편집 의도대로 신문이 인쇄되어 나오면 그 보람됨은 소위 말해 자식을 출산하는 일에 비유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곤 신문 마감과 동시, 다음 신문을 위한 편집회의를 하고 원고 청탁에 들어가야 하는데, 원고 청탁과 수령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1990년대 말경 백운스님은 부산 금정산의 백운암에 주석하고 계셨다. 그 시절 통신수단은 유선전화가 가장 빠른 수단이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전송수단은 팩스였다. 그러나 그 팩스도 통신문화가 잘 보급된 시내권이거나 규모가 웬만한 곳이라야 가능했는데, 백운암은 금정산 안에서도 가장 높고 외진 곳에 속했다.

그리하여 스님과는 전화 통화를 한 후, 암자로 찾아 올라가거나 더러는 나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금정산 어귀 어디쯤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여 원고뭉치를 받아들고 오는 게 다반사였다. 산을 오르고, 산의 풍광을 눈에 담으며 노승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기다림이었다.

세속의 큰아버지 정도의 연세를 잡수신 스님은 원고와 함께 과일이나 떡, 주전부리를 항상 챙겨 주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더러는 따뜻하게 삶은 고구마를 건네주시며 “아가, 신문 만들면서 묵고 해라”라며 특유의 찰진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시면 마치 유년기 외가댁을 다녀오는 기분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2년여를 보내고 나니, 어느 날엔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와 “아가, 내가 자네들 힘들까봐 온천장에 토굴을 하나 장만해서 거기서 글을 쓰고 있응께 그리로 원고를 받으러 오니라” 는 말씀이었다.

빨간 승용차를 구입해 한참 신바람 나게 타고 다니던 때, 온천장의 그 좁은 골목은 차의 후진도 힘들고 교행도 힘들었다. 바로 그 좁은 골목 안에 스님의 처소는 있었다. 하여, 늘 이면도로 여유 있는 장소에 파킹을 해 두고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 때마다 노스님의 말씀은 “토굴을 좀 좋은 곳에 잡았어야는디 좁아터진 곳에 잡아 미안타”라시며 구수하며 따뜻한 말씀을 주곤 하셨다.

2000년도 중반, 스님을 자주 뵙지 못하게 된 일은 신문사를 퇴사하고 독자적 행보를 위한 나의 <맑은소리맑은나라> 창간을 계기였다. 그러나 책을 만들며 선종구산을 들먹이는 일이 있을 때에는 어김없이 백운스님이 떠올랐다. 이후 규모 있는 법회와 행사를 통해 스님을 종종 뵙곤 했는데 역시 신문사 시절, 원고 수령을 위해 뵙던 때와는 그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그러나 지난 해 이맘때, 현 교육원장 진우스님에 의해 스님의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 생겼다. 진우스님의 은사임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내게 백운스님은 다시금 가까운 어른스님으로 성큼 다가왔다. 비록 교육원장 스님의 휴대전화 속에서 모습을 보이신 스님이셨지만 내 서른의 날들에 집안의 어른처럼, 그리고 금정산의 선한 호랑이이셨던 스님이 다시 오신 거였다.

무지에서 눈을 뜨고 알아가는 과정은 짐짓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한 사람의 생애에서 ‘누구를 만나는가?’ 라는 의미는 삶의 척도를 바꾸는 일대사가 된다. 선종구산, 가지산문의 진정한 가지를 쳐 준 어른 지흥당 백운노스님의 원적이 여름 병상에 몸을 맡긴 중생에게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다. 승속을 넘나들며 지식과 지혜를 갈무리 해주시던 회통의 대강백 백운스님이 오늘 많이 그립다.

[불교신문3595호/2020년7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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