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힘들 때 서로 위로하며 연민해야”
“모두 힘들 때 서로 위로하며 연민해야”
  • 정운스님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 승인 2020.03.1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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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19 … 우리 자세

나 너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자신과 주변 ‘조고각하’ 할 때

생명경시와 자만심 경계하고
스스로 만든 두려움 내려놓고
비방보다 대승적 마음 가져야
정운스님
정운스님

북촌 길이 휑하다. 주말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북적거리며, 축제 같던 동네가 고요한 정적만이 감돈다. 50여일 전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병해 ‘잠시 중국만으로 끝나려니…’ 했더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과학과 의학이 최첨단으로 발전하는 현대에 인간의 삶이 윤택할 거라고 장담하건만, 근자의 사태를 보니 인간은 하염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현 우리나라는 연일 코로나19를 메인 뉴스로 방송하며, 실시간으로 확진자와 사망자를 발표할 정도로 심각한 단계이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하더니, 한 나라의 국가 운명도 마찬가지다. ‘고난’이라는 복병이 불쑥 튀어나와 나라 전체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고… 어찌하겠는가. 무서운 ‘적수(?)’라고 피한다고 피해지는 일인가. 이런 때 나, 너,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첫째 ‘조고각하’, 자신과 주변을 살피자. 송나라 때,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스님이 있었다. 법연은 최초로 무자 화두를 주목한 선사이며, <벽암록>의 저자인 원오극근(圓悟克勤, 1063∼1135)을 제자로 둔 스님이다. 법연이 제자 세 명과 함께 외출했다가 늦은 밤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초롱불이 꺼져 앞을 전혀 볼 수 없었다. 법연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각자 생각나는 대로 말해 보아라.”

스승의 질문에 당황한 두 제자는 어물거리며 답변하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극근이 대답했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총무원 청사를 오르는 계단에 ‘조고각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글귀는 자신의 본성에서 발현되는 하나하나의 본성을 각성하라는 의미이지만, 일상의 삶 차원에서 보자. 처음 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병되었을 때, 인간의 무분별한 생명 경시를 문제 삼았다. 자연이든 동식물이든 생명을 함부로 해한 데서 발병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런 위기를 기회삼아 인간의 자고병(自高病)을 반성해야 한다. 
 

전국 사찰이 코로나19로 인해 법회와 모임은 중단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도 정진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마스크를 쓴 채 서울 조계사를 참배중인 한 불자의 모습.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전국 사찰이 코로나19로 인해 법회와 모임은 중단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도 정진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마스크를 쓴 채 서울 조계사를 참배중인 한 불자의 모습.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한편 옛날 선조들은 전염병이 돌거나 어린 아이가 아프면, 무조건 역경(逆境)으로만 보지 않았다. 즉 자연적인 재난이든 인재이든 인간으로서 불가항력적인 전염병을 ‘손님’이라 지칭하며 겸손했다는 점이다.

<보왕삼매론>에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 성인이 말하기를 병고를 양약으로 삼으라고 했다. … 세상살이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제 잘난 척 하는 마음과 사치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인간의 자만심을 경계하고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한번쯤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자. 

둘째, 이 재난 또한 스쳐 지나간다. <천수경>에 “죄에는 본 성품이 없고 단지 그 마음에 따라 일어나니, 만약 그 마음이 멸한다면 죄도 또한 사라진다”는 내용이 있다. 인간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두려움·공포로 자승자박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문제 삼지 않으면 고뇌는 없다.

이 코로나바이러스 질병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만들어낸 고통과 두려움으로 고통을 더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이 바이러스 질병을 무서운 적으로 여기고 두려워하는 공포감을 조금 내려놓자. 당당하게 맞서는 것도 어떨까?

셋째, 이기심을 버리고 대승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서로 비방하거나 상대를 탓해서는 안 된다. 처음 바이러스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국가 정책을 비난하거나 확진된 사람(대구의 특정 종교)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자신과 자기 가족만을 위해 물품이나 마스크 등을 사재기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이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고,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많다.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는 말할 것도 없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모든 이들이 힘든 때, 상대를 위로하며 연민심으로 바라보자. 서로 서로의 동반된 삶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상의상관의 연기법 원리). 지금은 물질적인 것이든 경제이든 인력으로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재난이 빨리 사라지도록 진정어린 염원을 맘속에 품어보자. 

[불교신문3566호/2020년3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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