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국, 나무아미타불 염불로 해탈계기 삼길”
“이 난국, 나무아미타불 염불로 해탈계기 삼길”
  • 혜거스님 금강선원 선원장
  • 승인 2020.03.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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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극복하는 지혜’
금강선원 유튜브(각유신)
대승기신론에서 찾아보자


개인, 나아가 전체 해탈 추구
불교핵심 잘 정리된 대승경전
‘대승기신론’ 공부에 푹 빠져

육바라밀 실천행 바탕 삼아
다함께 ‘염불삼매’ 들어보자

‘보살운동 근본도량’ 서울 개포동 금강선원(선원장 혜거스님)이 신도들과 소통을 위해 SNS 채널 등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의 월간 소식지를 온라인 ‘월간 금강’으로 전환한데 이어 온라인에 새롭게 시도한 ‘각유신(覺有神)’ 코너도 불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경전의 정수를 추려내는 혜거대종사의 ‘15분 법문’을 통해 불자들은 순간순간 자신이 깨어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2월29일부터 방송된 3월 마음에 새기는 글 ‘대승기신론’편은 카카오채널 ‘대한불교조계종 금강선원’, 유튜브 ‘금강선원’, 인스타그램 ‘금강선원’에서 직접 볼 수 있다.

혜거스님
혜거스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생기자마자 모든 강의를 쉬고 모두 건강관리에 유념하시도록 했는데 지금 이르러 보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건강관리 잘해서 아무 탈 없기를 간절히 빈다. 자, 그러면 어떤 마음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하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상황 상황마다 마음 쓰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게 있다. 그중에서 오늘은 기신론(起信論)을 가지고 여러분이 신심을 일으키도록 말씀드려보겠다.

기신론은 불교를 가장 잘 요약해 정리해놓은 논문이라 영어로 처음 번역한 불교경전이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이 대표적인 불교사상서로 뽑았다고도 한다. 그러면 그들이 기신론의 무엇이 좋아서 번역했겠는가. ‘신심을 일으킨다(起信)’는 것이 기신론이다.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꼭 성취해야겠다, 꼭 성불해야 되겠다, 꼭 이뤄야 되겠다’고, 신심을 일으킨다 해서 기신론이다. 

그러면 이 신심을 일으키는 첫 번째가 뭐냐? ‘일심(一心)’, 마음 ‘심(心)’자다. 두 번째 기신론의 핵심은 이문(二門)이다. 이 기신론에서 첫 번째는 ‘마음’이요 두 번째는 ‘문’인데 두 가지 문이 무슨 문이냐. 하나는 생멸문(生滅門)이요 하나는 열반문(涅槃門)이다. ‘이 세상을 생멸문에서 살 것인가, 열반문에서 살 것인가’ 이렇게 질문이 던져지면 사람들은 생멸문 보다는 열반문이 더 낫겠다 해서 ‘아 나는 열반문에서 살겠다’, 누구든 이렇게 마음을 낼 수 있다. 생멸문 아니라 열반문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다고 신심을 일으키는 것 이것이 ‘기신론’이다.

세 번째, 기신론에서는 체ㆍ상ㆍ용(體相用) 삼대(三大)를 가르친다. 체(體)는 뭐냐. 근본자리다. 법성게에서 말하는 법성원융무이상의 법성(法性), 이 자리가 근본자리다. 상(相)은 일체만물 일체만상이다. 나와 너 이 세상의 삼라만상은 전부 상이 있다. 삼라만상에는 전부 모양이 있다. 모양이 있는 것 이것을 전부 ‘상’이라고 한다. ‘내 마음’을 체, 그리고 ‘내 몸뚱이’를 상이라고 한다. 그러면 용(用)은 뭐냐? ‘내 몸뚱이 작용’이다. 내 몸뚱이는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따라서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면 따라서 몸이 움직이듯이 이렇게 같이 움직인다.

그래서 몸 따로 마음 따로 놀지 않고 몸과 마음이 일치해가면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한다. 반대로 몸 따로 마음 따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중생’ ‘범부’ ‘소인’이라고도 한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소인으로 살아도 안 되고 중생으로 살아도 안된다. 이것을 다 초탈해 보살도에 이르도록 가르친 것이 바로 기신론이다. 

기신론이 이렇게 체상용 삼대를 가르치고 나서 그 다음에 가는 자리가 어딘가. 사신(四信), 네 가지의 믿음을 놓치지 않고 살면 아무리 미련하고 아무리 업이 두터운 사람이라 해도 잘못 가는 길이 없다.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되는데 이 네 가지 믿음이 뭐냐. 불(佛) 법(法) 승(僧) 삼보에다가 근본이다. 이 네 가지를 믿음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불교에서 본래는 삼보께 귀의하여 삼보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기신론에서 삼보에 신근본을 추가한 것이 특별하다 하겠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법을 믿고, 승보의 가르침을 믿어 삼귀의 불교에 귀의하는 첫 번째 문으로 삼고 있는 불교의 근본을 더해 사신(四信)을 추가해 가르친 기신론은 불자들의 마음을 크게 열어 주었다 할 것이다.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은 이미 잘 알기에 더 말할 게 없겠으나 신근본(新根本)의 근(根)의 뜻은 부처님자리, 보살의 자리, 진리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라 할 수 있는 말로써 만법의 근본자리로 이해할 수 있겠다.
 

금강선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법회 강의 등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카카오채널,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으로 통해 신도들과 소통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사진은 혜거스님의 ‘각유신, 마음에 새기는 글/ 대승기신론’ 유튜브 법문 모습.
금강선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법회 강의 등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카카오채널,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으로 통해 신도들과 소통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사진은 혜거스님의 ‘각유신, 마음에 새기는 글/ 대승기신론’ 유튜브 법문 모습.

그 다음 ‘오근(五根)’은 뭔가. 대승불교에 이르면 수행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소승불교는 수행의 바탕을 팔정도에 둔다. 그런데 대승경전에 이르게 되면 수행의 바탕을 팔정도가 아니라 육바라밀에 둔다. 팔정도와 육바라밀에는 비슷한 말도 있고, 다 좋은 말이고 다 똑같은 것 같은데 왜 팔정도는 소승이고, 육바라밀은 대승이라고 하는가.

팔정도는 지시사항이다.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를 가져라’ 하는 지시, 명령문이다. 팔정도에는 전부 정(正)자가 따라다닌다. 옳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누구한테 의탁해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은 의탁형이 아니다, 지시형도 아니다. 보시 지계 인욕…이렇게 전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남에게 베풀고, 계율을 지키고…. 소승불교에서의 계율은 억지로 지키기 위해 지키는 것이지만 대승불교의 계율이라는 것은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서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선 육바라밀이라고 안하고 ‘오관’이라고 썼다.

오관, 그건 뭐냐. 육바라밀의 제일 끝이 뭔가, ‘지혜’다. 지혜 전에는 뭐가 있었나? 선정(禪定)이다. 선정과 지혜를 합치면 ‘지관’이다. 선정은 ‘멈출 지(止)’자이다, 멈춘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탐욕을 일으키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절대로 질투를 내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전부 멈춘다(止)는 것이다. 그러고 어떤 것이 관(觀)이냐 하면 ‘아는 것’이다. 아니까 한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지켜지는 것이다.

자, 여기는 낭떠러지니까 내려가면 안 돼, 여기는 물이니까 빠지면 안 돼, 여기는 불이니까 들어가면 안 돼.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 스스로 안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욕심을 부리는가. 욕심이 죄 인줄을 모르고, 욕심이 나를 잘못 가게 하는 것인 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욕심이 바로 물속과 같고 불속과 같은 줄 알면 욕심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선정과 지혜, 이 둘을 합쳐 ‘지관’이라고 하고, 육바라밀 중에서 선정과 지혜 이 둘을 합쳐서 읽어서 ‘오관’이 된 것이다. 

그러고 나면 마지막에 육자가 나오는 데, 여기서 깜짝 놀랄 일이 있다. 기신론은 대승사상이고, 대승사상 중에 가장 우수한 논서가 기신론이다. 그런데 이 기신론에서 마지막 수행법이 육자(수행)이다. ‘나ㆍ무ㆍ아ㆍ미ㆍ타ㆍ불’ 염불이다.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것을 마지막에 뒀다. 그렇다면 이 공부의 마지막은 무엇과 같은 것인가.

제일 첫 번째 ‘일심’이다. ‘생멸문을 벗어나 열반문으로 가겠다’. 체상용 삼대의 이치를 확실하게 알고, 불법승 삼보에 근본, 네 가지를 신념으로 삼고 오관, 육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관법이고 ‘나무아마타불’ 여섯 자 염불로 마지막을 장엄을 하는 이것이 기신론의 가르침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이 어렵고 힘든 시대를 만났으니 우리 다함께 기신론의 깊은 사상 속에 한번 흠뻑 빠져 들어 ‘나무아미타불’ 일심염불로 해탈을 얻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불교신문3564호/2020년3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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