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기 2563년 동안거 결제를 맞아
[사설] 불기 2563년 동안거 결제를 맞아
  • 불교신문
  • 승인 2019.11.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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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년 동안거 입제식이 열렸다. 전국 100여개 선원 2000여명의 수좌들이 이번 삼동(三冬)에도 ‘문 없는 문’을 꿰뚫기 위해 목숨을 건 정진에 들어갔다. 

한국불교 위기, 탈종교화 등 비관적 전망이 쏟아지지만 의연한 까닭은 1년 중 6개월을 문 걸어 잠그고 일체의 세속 잡사를 버린 채 오직 화두만을 부여잡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좌복 위에 앉아 미동도 않고 숨소리마저 죽인 채,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 한 물건’을 참구하며 부처되려고 발심한 이들이 있어 한국불교가 불조의 혜명을 면면히 잇는다. 

결제 대중은 선원에서 100일간 좌선 정진한다. <육조단경>에 이르길 “밖으로 경계를 만나 일체의 망념이 일어나지 않음을 좌(坐)로하고 본성을 깨달아 흩어짐이 없음을 선(禪)이라 한다” 했다. 중생은 부와 명예 권세를 중시 여기고 이를 성취함을 삶의 목표로 삼지만, 그 실상은 꿈속의 일마냥 허망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꿈속의 나를 실상으로 여기고 울고 웃고 화내고 찌푸리며 일생을 허우적거리다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인간 몸 받기가 ‘눈 먼 거북이 망망대해에서 백년마다 한 번 씩 머리를 내밀다 구멍 뚫린 나무 판자 만나기’보다 어렵다 했는데, 그토록 불가능한 인연을 맺어 사람 몸 받고도 ‘진짜 나’를 모르고 끝낸다면 허망하다 못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중죄나 다름 없다.

구산선사는 “참나를 모르면서 행동하는 것은 그대로 장님 노릇이 아닐 수 없으니, 한 걸음 옮겨 딛고 손 한번 들고 놓는 것이 죄업 아님이 없고, 생각 한 번 일으킨 것이 번뇌 아님이 없다”고 했다. 이것이 중생의 삶이며 고통의 원인이다.

명재일식지간(命在一息之間), ‘사람 목숨이 숨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사이’라 할 정도로 무상하기 짝이 없으니 조사님들이 인간 몸 받아 오직 할 일이라고는 참나를 찾는 화두참구밖에 없다고 그토록 신신당부하고 경책한 이유다.

불보살과 조사님들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모두 꿈을 깨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헤매다 죽음을 향해 앞다퉈 달려가는 난중에 다행히 동안거 결제 대중들은 일체의 욕망을 벗어던지고 참나를 찾아 정진하니 그 공덕이 만방에 두루하다.

삼세제불 시방보살 역대조사들이 한결같이 이르시기를 ‘일체중생이 본래불’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아직 부처되지 못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내 탓이지 다른 이의 허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공도 내 것이요 그 과도 내 몫이니 100선원, 2000대중의 공덕이 아무리 크고 넓다 해도 이는 모두 그들의 소유일 뿐 나와 아무런 관련 없다.

늙고 병들어 저승사자 만나 후회 말고 지금 당장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부여잡고 화두를 결택하여 ‘고양이가 쥐를 잡 듯’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파고 들 듯’ 간절히 참구하여, 스스로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는 대장부(大丈夫)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 첫 걸음이 결제이니 대중들은 지금 당장 있는 곳이 어디든지 개의치 말고 좌선정진하기를 염원한다.

[불교신문3534호/2019년11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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