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다큐영화 ‘에움길’ 이승현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은 이옥선 할머니가 내래이션을 맡아 나눔의집에서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담고 있다. 이옥선·고(故) 하점연·박옥선 할머니(사진왼쪽부터)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영화 속 한 장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쉼터
나눔의집서 벌어지는 작지만
소중한 일상 이야기 담아내

영화 귀향 배우·조연출 맡은
이승현 감독이 메가폰 잡아

7대 도시 순회 시사회 회향
6월 전국 개봉 목표로 진력

나눔의집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에 의해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던 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불교계를 중심으로 각계 인사의 모금운동을 통해 1992년 10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뒤 명륜동과 혜화동을 거쳐 1995년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으로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옥선 할머니는 같은 아픔을 겪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나눔의집에서 가족처럼 노년을 살고 있다. 억울함에 눈도 감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먼저 떠나간 할머니들을 위해,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후손들을 위해 이 할머니는 평화인권운동가로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값지게 살아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은 나눔의집에서 펼쳐진 20년 동안의 영상기록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이옥선 할머니가 내레이션으로 나눔의집 할머니들의 잔잔한 일상생활을 전해주고 있다. 때로는 아이들처럼 다투기도, 때로는 소녀처럼 장난치며 함께 웃는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조명한다. 영화 제목인 ‘에움길’은 멀리 둘러가는 굽은 길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여전히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담고 있다.

이승현 에움길 감독.

지난 17일 만난 이승현 감독은 영화 에움길을 만든 연출가이자 늦깎이 연기자이기도 하다. 원예학과를 다니다 군 제대 후 연기자로서의 삶을 꿈꾼 이 감독은 연기아카데미를 통해 연기 실력을 쌓다가 영화 ‘귀향’을 만든 조정래 감독과 만나게 된다. 오디션을 통해 귀향에서 양심적인 일본군인 ‘다나카’역을 맡았다. 저예산 영화이다보니 배우는 물론 데이터 매니저, 메이킹 영상 촬영, 후반 작업 조연출 등으로 맹활약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위안부 문제가 뉴스나 교과서에서만 나오는 먼 이야기가 아닌 7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중차대한 충격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깨닫게 됐다.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정도만 알았지, 나눔의집 존재 여부는 물론 1000회를 훌쩍 넘긴 수요집회가 열리는 것조차 몰랐었죠. 귀향 후반작업 이후부터 나눔의집에 자주 찾아가 할머니들을 뵙고 있습니다.”

영화 귀향 제작을 통해 하루속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이 감독은 2017년 초 나눔의집에서 1600개가 넘는 영상자료를 넘겨받아 데이터화하면서 새로운 영화 제작을 꿈꾸게 됐다. 

나눔의집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6mm와 8mm 캠코더 등으로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와 녹음해 놓은 오디오 CD 등 1600여 개의 자료를 컴퓨터 데이터작업을 위해 건네받았다. 6~7명이 팀을 꾸려 영상 전체를 데이터화하고 중요한 멘트는 문서화 하는데 걸린 시간만 8개월 남짓.

이 감독은 영상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서 민감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통해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를 알렸듯이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한 다큐영화 또는 극영화를 만들어 조금이라도 이 문제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충격적이면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등 다양한 감정이 들더군요. 2000년 초반만 해도 할머니들이 많이 살아계셨는데 지금은 몇 분 안 남으셨잖아요.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하고 계실 때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 촬영을 시작하게 됐지요.”

이 감독은 에움길을 2017년 4월부터 9월까지 촬영했다. 촬영 중인 2017년 7월 주인공인 이옥선 할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인 김군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중간편집본을 만든 뒤 몇 차례의 시사회를 통한 지속적인 수정작업을 거쳐 지난 3월초순에서야 상영시간 76분 분량의 최종본이 완성됐다. 지난 6일 서울을 마지막으로 전국 7개 도시 순회 영화시사회도 마쳤다. 오는 6월 개봉을 목표로 배급사 측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옥선 할머니는 초반에 저한테 ‘그냥 그렇다’고 말씀 하셨는데 나눔의집 관계자들에게는‘정말 좋다’고 말씀 하셨다고 하더군요. 절친인 김군자 할머니와 성당을 같이 다닐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참 좋았어’ ‘보고 싶다’ 등의 말씀도 하셨다고 전해주시더군요. 대구에서 열린 첫 시사회에서는 대구가 고향인 이용수 할머니께서 직접 참석해주셔서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나는 이용수다’ ‘우리를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고 개개인으로 봐줘서 너무 좋았다’고 말씀해주셔서 큰 힘이 됐습니다.”

이 감독은 에움길 상영관 관객수 목표를 30만명으로 잡았다고 털어놨다. 360만명이 영화 귀향을 관람한 것에 비한다면 턱없이 낮은 목표지만 열악한 다큐 영화계의 현실에서는 30만명도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이 감독은 연출과 연기를 병행해 나간다는 계획 아래 대학원 진학을 통해 보다 체계적인 영화 연출 공부를 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이제 첫 걸음을 내디딘 만큼 앞으로 연출을 공부하면서 다큐영화는 물론 단편, 장편 극영화도 기회가 된다면 만들고 싶습니다. 특히 나눔의집이 불교계에서 운영한다는 사실도 친절하게 영화 자막으로 넣어줬으니 불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관람을 부탁드립니다.”

영화 에움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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