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처럼 수행하며 불법(佛法) 전한 혜해스님
연꽃처럼 수행하며 불법(佛法) 전한 혜해스님
  • 이성수 기자
  • 승인 2020.08.06 09:50
  • 호수 360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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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혜해스님

흔들림 없이 오롯이 정진한
자취 생생하게 담은 사진들

경봉 향곡 진제 스님 비롯해
고승 회상에서 탁마한 모습도
젊은 시절의 혜해스님. 단아한 모습에서 출격장부의 기상이 느껴진다.
젊은 시절의 혜해스님. 단아한 모습에서 출격장부의 기상이 느껴진다.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에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에서 출가한 보주당(寶珠堂) 혜해(慧海)스님이 사바세계와 인연을 다한 지 어느덧 70여 일이 다가오고 있다. 글과 그림 등을 남기지 않으며 사문(沙門)의 길을 걸은 스님의 자취는 문도들이 보관하고 있는 사진을 통해 만날 수 있을 뿐이다. 평생 출가자로 묵묵히 수행한 스님은 5월31일 경주 흥륜사서 법랍 77세, 세수 100세를 일기로 원적에 들었다.
 

양산 내원사에서 경봉스님과 함께 한 혜해스님.
양산 내원사에서 경봉스님과 함께 한 혜해스님.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대중에게 불법(佛法)의 향기를 전한 스님은 진흙에 뿌리를 내리지만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살았다. 출가한지 몇 해 지나지 않은 젊은 시절의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에서 단아하고 정갈한 스님을 만날 수 있다. 꽉 다문 입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출격장부(出格丈夫)의 기상이 느껴진다.

스님은 참선을 중심으로 수행하고 대중을 교화했다. 울산 석남사를 비롯한 제방에서 정진하고 경주 흥륜사에 천경림(天鏡林) 선원을 개설해 납자(衲子)들을 맞이했다. 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당대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았다. 효봉, 경봉, 서옹, 향곡, 월산 스님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고승(高僧)들의 지도를 받으며 화두를 참구했다.
 

장성 백양사에서 서옹스님과 함께 한 혜해스님.
장성 백양사에서 서옹스님과 함께 한 혜해스님.

양산 내원사에서 경봉스님과 함께 한 사진과 장성 백양사에서 서옹스님과 같이 한 사진은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구법행을 한 스님의 마음이 드러난다. 1969년 4월 동화사 내원암에서 향곡(香谷)스님을 모시고 대중과 촬영한 사진에서는 일대사(一大事)를 구하는 수좌의 기상이 보인다.
 

혜해스님이 남긴 ‘동그라미’, 한글로 쓴 스님 법명이 군더더기 없는 삶의 향기를 전한다.
혜해스님이 남긴 ‘동그라미’, 한글로 쓴 스님 법명이 군더더기 없는 삶의 향기를 전한다.

향곡스님의 영향을 받은 혜해스님은 진제 종정예하와도 인연이 깊다. 향곡스님 법을 이은 종정예하가 혜해스님의 영결식과 49재에 직접 참석해 법을 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제 종정예하는 지난 7월16일 흥륜사에서 엄수된 혜해스님 49재에서 “화두에 열중하고 일생을 모범적으로 승려 생활을 하신 분”이라면서 “가실 때에도 백 살이 되어 고통 없이 담담하게 육신의 옷을 벗었다”고 추도했다.
 

969년 양산 내원암(내원사)에서 향곡스님을 모시고 대중이 기념촬영을 했다. 세 번째 줄 왼쪽 끝이 혜해스님.
1969년 양산 내원암(내원사)에서 향곡스님을 모시고 대중이 기념촬영을 했다. 세 번째 줄 왼쪽 끝이 혜해스님.

1979년 향곡스님 49재에 촬영한 사진에서 혜해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비통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 사진에는 진제 종정예하의 40여년 전 모습도 만날 수 있다.

혜해스님은 글과 그림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후학의 간청으로 그린 ‘동그라미’가 있을 뿐이다. 먹물을 묻혀 한 번에 그린 ‘동그라미’는 오직 출가수행자로 정진한 스님의 원만한 행(行)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한글로 쓴 스님의 법명은 군더더기 없는 삶의 향기를 전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1979년 2월 향곡스님 49재. 앞줄 가운데가 진제 종정예하, 오른쪽이 혜해스님.
1979년 2월 향곡스님 49재. 앞줄 가운데가 진제 종정예하, 오른쪽이 혜해스님.

혜해스님은 사바세계를 떠나는 날까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였다. 평생 올곧게 정진한 수행자의 삶을 보여주었다. 원적에 들기 얼마 전 문도들과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이별의 아픔’보다 ‘깨달음의 노래’처럼 환희심이 느껴진다. 맏상좌 법념스님(흥륜사 한주)은 “은사 스님은 보여주시는 행(行) 그 자체가 법문이고 가르침이셨다”고 회고했다.
 

혜해스님을 모시고 문도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드는 혜해스님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혜해스님을 모시고 문도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 카메라를 보고 손을 흔드는 혜해스님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미군정, 한국전쟁 등 격동의 세월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정진하며 수행자의 위의를 잃지 않은 혜해스님이 다시 돌아와 부처님 가르침을 이 땅에 전할 수 있기를 발원한다.

사진제공=경주 흥륜사

경주=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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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산 2020-08-26 00:30:56
무당하다 야매로승적도없이머리깍는중ᆢ인런중좀단속!
해혜스님좀보고배워라
야매비구니들아!

박영주 2020-08-06 19:53:34
사잔으로 보니 은사스님이 아직도 곁에 계시는 듯합니다.
글 잘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