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림에 이는 바람소리…아 큰스님!”

문득 혜해(慧海) 노스님의 원적 소식을 전해 듣고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2004년인가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상량식 때의 그 자비하신 미소가 아직도 모두의 가슴속에 항상 하건만, 어찌 그리 한마디 말도 없이 허허로운 바람처럼 떠나가셨습니까? 이는 세찬 비바람에 동백꽃잎이 후두둑 지듯이, 그렇게 쿵하고 가슴 한 켠이 무참히 내려앉는 듯한 느낌입니다. 비로서 한 시대와 살아있는 역사가 장엄한 최후의 순간을 맞는 듯합니다.

선시에 이르길, “금강산에 이르니 신심이 지극해지고, 묘보리에 철저한 발심이 되네(信極到金剛 發心妙菩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혜해 노스님을 두고 이르는 말씀입니다. 스님의 발걸음이 닿는대로 금강(金剛)과 동해(東海)를 토함(吐含)이니, 스님의 원적 또한 다만 이러할 따름입니다.
 

2006년 12월 출가사찰인 금강산 법기암을 찾은 혜해스님이 법기암터의 우물에 대해 설명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2006년 12월 출가사찰인 금강산 법기암을 찾은 혜해스님이 법기암터의 우물에 대해 설명했다. ⓒ불교신문

스님은 1921년 평북 정주군 안홍면에서 태어나 1944년 24세에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에서 대원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사미니계를 수지 하였습니다. 그후 1946년 10월,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월남해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셨습니다. 정든 금강산과 법기암을 뒤로한채 월남을 감행하면서 과연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스님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을겁니다.

스님은 28세 되던 해에 해인사에서 효봉큰스님의 지도로 용맹정진을 시작해 성철, 청담, 향곡큰스님의 결사에 잇따라 동참하며 정진을 거듭 하였습니다. 그후 1971년 신라의 고도인 서라벌 경주의 유서깊은 흥륜사에 천경림 선원을 열었으며, 1980년부터는 선원장 소임을 맡아 몸소 수행과 외호를 함께 하였습니다.

스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죽비를 몸소 잡았으며 모든 대중들로부터 ‘생불(生佛)’로 불릴 만큼 삶과 수행에 있어 지남(指南)이자 사표(師表)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오래된 미래’이자, 찬란한 ‘선의 황금시대’라 할 것입니다. 천경림의 선풍이 능히 한국불교의 새벽을 일깨우는 듯 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2004년 조계종 총무원이 금강산 신계사를 복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내 달려와 2007년 10월13일 낙성법회가 열릴 때까지 신계사에 머물면서 남북통일과 평화공존을 간절히 발원하며 기도정진하였습니다. 마침내 세수 86세에 신계사 낙성법회를 여니, 실로 60여년만의 환지본처(還至本處)이자 평생 간직한 오랜 꿈의 실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감격과 희열을 담아 애틋하게 부르시던 ‘황성옛터’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도는 듯합니다. 그 때의 한과 눈물, 그리고 희열로 인해 금강풍악(金剛楓嶽)의 단풍은 더욱 붉디붉은 단심(丹心)으로 타올라 마치 화광삼매(火光三昧)를 이루었나 봅니다.

평생동안 무소유와 청빈으로 일관하신 스님께서는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자애롭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릿바람처럼 단호한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위의(威儀)와 행해(行解)가 항상 하셨습니다. 또한 후학과 신도 및 대중을 대할 적에는 언제나 온화한 얼굴과 사랑스런 말로 화안애어(和顔愛語) 하셨던 이시대의 참 수행자이자 진정한 보살과도 같았습니다. 

오직 수행과 전법을 위해 위법망구(爲法忘軀) 하시더니, 윤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하루 앞둔 날에 마침내 원적에 드셨습니다. 세수는 100세요, 법납은 77세 이셨습니다. 이는 한 시대와 살아있는 역사가 비로소 장엄히 소멸하고 새로이 태어나는 순간의 깨달음과 같습니다.

선시에 이르길, “가보지 못했을 땐 천만 가지의 한이러니, 이제 가서 보고 돌아오니 별다른 일이 없음이로다(未到千般恨不消 到得歸來無別事)”라고 하였습니다. 스님, 이제 바람처럼 허허로이 금강산 일만이천봉과 팔만구암자를 돌아보시니 어떠하십니까? 부디 금강과 동해 더불어 언제나 함께 하시면서 유유자적하고 여여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보주당 혜해 노스님이시여! 부디 본래의 서원을 잊지 마시옵고 속히 사바세계로 돌아오시어, 널리 중생을 다 건지옵고 세세생생 동수정업(同修淨業) 하옵기를 앙망하나이다! 다시 군더더기 사족을 붙이노니, 경주 서라벌 흥륜사의 천경림이여, 그 숲에 이는 바람 소리와 허공은 그대로 스님의 청정법신이자 팔만장경이며, 또한 사리탑이자 무자비(無字碑)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노스님의 삶과 수행이 다만 이러할 따름입니다! 

[불교신문3590호/2020년6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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