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면 감응하는 달’…자리이타 공덕행 실천

지전과 경전을 태우는 봉은사 예수재의 봉송 장면.
지전과 경전을 태우는 봉은사 예수재의 봉송 장면.

이번 음력사월에 맞게 될 윤달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윤달은 ‘일 년 열두 달’이라는 일상의 시간 속에 가외로 주어진 것이기에, ‘비일상의 시간’으로 여기며 다양한 문화가 전승되어왔다. 또한 지금 인류는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사태로 삶 전체가 비일상의 시간에 놓여 있다. 그러니 경자년 윤사월은 자연의 순환에 따른 비일상의 시간과, 인간의 생태계 파괴로 생겨난 비일상의 시간이 공존하는 셈이다.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매순간 절실하게 깨달아가고 있다. 그래서 함께 보살피고 배려하는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나날이다. 

불교계는 코로나사태의 위기상황에서 양극단을 떠나 ‘있을 자리에 온전하게 있음’으로써 참된 중도(中道)를 보여주었다. 마침 사월에 윤달이 들어 한 달 뒤로 미룬 부처님오신날 또한 사월초파일이니 참으로 절묘하다. 공덕 짓기를 실천했던 윤달의 오랜 역사를 새긴다면 이번 윤사월초파일은 더욱 뜻 깊을 법하다. 이에 윤달의 의미를 불교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사찰마다 윤달의 대표 의례로 봉행하는 생전예수재의 참뜻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공덕을 실천하는 윤달

우리의 윤달문화는 긍정적이고 해학적이다. ‘윤(閏)’의 한자를 보면 문(門) 안에 왕(王)이 있어, 윤달에는 왕이 집무를 보지 않고 침전에 머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듯 중국에서는 윤달을 비 상월(非 常月)이라 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근신하는 풍조가 강했고, 지금도 중국인들은 붉은 내의를 입는 등으로 액막이를 하며 윤달의 부정적 측면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선조들은 윤달을 일상을 훼손하는 시간이 아니라 풍요롭게 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윤달은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기에 인간세상을 관장하는 신들도 감시를 쉰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사, 산소 이장, 수의 만들기와 같이 평소 택일을 받아야 했던 중요하고 조심스러운 일을 윤달에 거리낌 없이 행하면서 일상의 금기에서 해방되는 시간으로 여겼다. 

불확실한 시간을 경계하는 마음도 종교적 시간으로 승화시켰다. 윤달을 ‘기도하면 감응하는 달’로 여기며, 선행과 방생 등 자리이타의 공덕을 짓는 풍습은 ‘선보다 강한 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려시대에는 윤달이면 궁궐에 많은 스님을 모셔 백좌도량(百座道場)을 열고 대장경을 경찬하며, 액을 물리치는 소재도량(消災道場)을 베풀었다.

또 왕이 사찰에 행차해 불공을 올리거나 선왕의 능을 참배하는가하면 사면령을 내려 죄수를 풀어주고, 노인과 소외된 이들을 보살폈다. 이처럼 윤달을 복되게 맞으려는 노력이 나라의 중요의식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불교는 백성의 마음을 보듬는 중요한 의지처가 되어왔다. 

또한 예수재와 가사불사ㆍ삼사순례를 비롯해 절을 찾아 불공을 올리는 광범위한 신행행위가 윤달의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이러한 윤달의 불교의례는 복을 구하는 기도에서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의 수행을 돌아보며 보다 큰 공덕을 실천하는 의미를 지녔다. 이 기간에 적극적으로 섬긴 불보살은 인간을 감시하는 신과 결을 달리하며, 정상에서 벗어난 시간에 나를 지켜줄 존재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윤달문화는 신의 감시에서 벗어났다는 유쾌함이 있는가하면, 한편으로는 모호한 시간에 공덕을 지으며 복되게 보내려는 신중함이 함께했던 셈이다. 따라서 윤달을 길월ㆍ흉월로 보거나 할 일과 금할 일을 구분하는 데서 벗어나 ‘기도에 감응하는 달’, ‘공덕과 수행의 달’로 정착시켜온 데는 불교의 힘이 크다. 위신력 있는 부처님과 그 가르침이 있기에 특별하고 불확실한 시간에 대한 경계심을 종교적 시간으로 승화시켜온 셈이다. 
 

2004년 윤달에 봉행된 보문사 예수재 모습.
봉은사 예수재에서 지전과 경전을 머리에 이고 도는 모습.

예수재와 윤달의 결합

“살아생전 이승에서 예수시왕 생칠재를 미리미리 힘을 다해 정성스레 닦아가되 매달음력 초하루와 보름날에 두번걸쳐 거룩하신 삼보전에 지성으로 공양하라.” <예수시왕생칠경>에 나오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예수재를 초하루와 보름에 불공을 올리며 봉행토록 했으니, 곧 오늘날 초하루ㆍ보름 법회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초하루ㆍ보름 법회는 초기불교부터 출가자들이 대중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포살(布薩)의 수행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출가자의 참회의식이 포살이라면, 재가자의 참회의식은 예수재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검증되어온 것이다. 이는 ‘미리(預) 닦는다(修)’는 예수(預修)의 의미처럼, 예수재가 지닌 수행의식으로서 성격과 일상성을 말해준다. 

예수재는 자신의 사후공덕을 살아있을 때 짓는 주체적 의례이다. 망자를 대상으로 한 천도재는 타행(他行)의 의례일 수밖에 없지만, 예수재는 생전에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치르는 자행(自行)의 천도인 것이다. 따라서 사후를 내다보며 참회하는 수행의식이기에 특별한 때를 두지 않고 일상적으로 예수하도록 한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예수재가 윤달과 결합하게 된 정황을 추론해보는 일은 흥미롭다. 민간에서는 윤달이면 인간을 감시하는 신들도 쉬게 되니 ‘저승문이 열린다’고 여겼고, 이에 사후극락에 대한 기도가 성행하였다.

또한 평소 부정이 타기 쉬워 조심스러웠던, 수의와 관을 미리 만들어두는 일련의 죽음준비 또한 윤달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윤달에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와 극락왕생불공이 성행했기에, 살아있을 때 사후를 생각하는 예수재가 윤달과 결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하겠다. 

특히 명부신앙에서는 열 명의 시왕(十王)이 1년의 열두 달과 인간의 육십갑자를 각기 나누어 관장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윤달이면 시왕이 휴가를 떠나니 이때 한곳에 모인 시왕에게 정성껏 공양을 바침으로써 업장을 소멸 받는다’는 탄력적인 담론으로 예수재에 즐겨 동참하였다. 업을 심판하는 시왕은 두렵고 피하고픈 존재이지만 공양을 올려 모심으로써 가피를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수용되는 것이다. 

‘조선후기의 <동국세시기>에 “광주 봉은사(奉恩寺)에서는 윤달이 되면 장안의 부녀자들이 몰려들어 불단[佛榻]에 돈을 놓고 불공을 드리기를 달이 다가도록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고 믿으며… 서울과 여러 지방 대부분의 절에서 이런 풍속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재’라는 표현은 없지만 불공을 올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풍습은 윤달예수재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당시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강남 봉은사에서 예수재의 본래의미를 새기는 신행운동을 일으켜 주목된다. 
 

예수재 봉행을 증명하는 함합소(緘合疏).
예수재 봉행을 증명하는 함합소(緘合疏).

예수재 핵심은 ‘수행과 보시’

1993년 윤5월, 봉은사에서는 당시 예수재가 기복적으로 흐르는 데 대한 성찰과 함께 본래 의미를 되새기는 신행으로 예수재를 전환시켰다. “이번 생의 죄를 단순히 의례로써 소멸하고 사후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믿음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49일간 ‘베풀기 운동’과 ‘책보시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에 매주 불우이웃에 보시하고 경전을 주변에 나눔으로써 업을 맑히고 공덕을 쌓는 실천운동과 함께 예수재를 봉행했다. 예수재에 담긴 참의미를 실천한 봉은사 사례를 염두에 두면서, 의례가 지닌 주요특성을 살펴보자. 

예수재의 절차는 조전점안(造錢點眼)으로 만든 금은전을 경전과 함께 시왕단에 바친 다음, 맨 먼저 사자(使者)를 청해 공양을 올린다. 명부세계의 성중을 예수재에 청하려면 사자를 통해 초청장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 상단과 중단의 성중을 차례로 모셔 공양을 올리고, 하단으로 이어진다. 예수재는 산 자들이 주인공이기에 하단의 존재는 영가가 아니라 명부에서 파견된 여러 권속들이 해당된다. 이윽고 법주가 금은전과 경전 헌납으로 생전의 빚을 갚았음을 고한 다음 봉송으로 회향한다. 

이러한 예수재의 핵심 메시지는 ‘수행’과 ‘보시’에 있다. 사후를 위한 공덕은 ‘나를 향한 수행’과 ‘나 이외의 존재를 향한 보시’를 통해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특한 의례적 설정을 하게 되는데, 모든 중생은 각자 명부에서 수생전(壽生錢)을 빌러 태어났기에 이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빚은 경전을 보지 못한 빚과 금전적인 빚으로, 불자라면 곧 업(業)을 뜻하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이에 동참재자들은 경전을 봉독하고 지전을 헌납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재자의 이름과 주소, 갚아야 할 경전 수와 금액이 적힌 함합소(緘合疏)를 함께 불태워 빚을 갚았음을 증명하게 된다. 

이처럼 예수재에서 업을 빚으로 표현한 데는 중요한 뜻이 있다. 경전 빚은 삼보의 가르침으로 인도하고, 금전 빚은 공덕을 쌓아 업을 맑히도록 이끌기 위함이다. 따라서 의례에서 지전과 경전으로 빚을 갚아 내세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수행과 보시로써 갚아나가는 것임을 일깨우는 데 있다. 1993년 이래 봉은사 예수재에서 행해온 베풀기는 이러한 예수재의 의미를 의례 속으로 끌어들인 실천적 행보라 하겠다.

“명부성중 봉송예배 하는 사이에 지전은 모두 불타 바람마저 잔잔하니 복 쌓고 액 없애어 목숨은 바다 같고 번뇌의 불꽃 길이길이 벗어났네.” 마지막 봉송의 구절이다. 몇 해 전 칠칠재로 행한 봉은사예수재에 참관했을 때, 동참재자들은 각자 자신이 지은 업의 무게를 상징하는 지전과 경전을 머리에 이고 도량을 돌았다. 이윽고 소대에서 모든 것을 태우는 불길을 보며, 나의 업이자 번뇌를 저처럼 태워 없애는 길이 어디인지 저마다의 생각에 잠겼음직하다. 
 

봉은사 예수재에서 지전과 경전을 머리에 이고 도는 모습.
2004년 윤달에 봉행된 보문사 예수재 모습.

[불교신문3579호/2020년5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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