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된 욕망의 비법에 집착 말아야”

해탈로 인도하려 설한 가르침
언덕 건너가면 뗏목 필요없듯
법에 집착해 머무르지 않아야

등현스님
등현스님

<금강경> 6장에 “그대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처럼 알라. 옳은 법(法)도 오히려 반드시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그른 법(非法)이겠는가?”라는 말씀이 있다. <맛지마니까야>의 <물뱀의 비유경>에서도 역시 같은 말씀이 있는데 “비구들이여, 건너가기 위함이며, 집착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뗏목의 비유를 설하였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뗏목의 비유를 아는 그대들은 가르침(법)마저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가르침이 아닌 것(비법)임에랴”이다.

금강경은 초기 경전처럼 무집착을 설하는 가르침이다. 그 대상이 욕계, 색계, 무색계의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좋지 않은 것은 더 더욱 집착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다이아몬드와 같다. 다이아몬드가 아무리 값비싸고 좋다 할지라도 눈 속에 들어가면 고통을 주는 것처럼, 법에 집착하면 고통이 있으므로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은 부처님의 가르침, 즉, 대소승의 모든 경전에 있는 가르침을 말한다. 열반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설한 여러 가르침들이고, 그러한 법들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법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가?

부처님의 법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설하신 것이기에 사람마다 필요한 법이 각각 다른 것이다. 그러나 한 법에만 집착하게 되면 다른 법은 모두 그르다 하게 되어, 다른 근기를 가진 중생들과 법을 내치는 악업을 짓게 된다. 그러므로 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비법(非法)은 무엇인가? <물뱀의 비유경>에 나타나는 비법은 이러하다. 첫째, 비법이란 부처님께서 꾸짖으신 모든 감각적 쾌락의 욕망과 짝하는 생각들이다. 이는 부처님께서 ‘즐거움은 적으나 괴로움과 근심이 많으며, 재난은 더욱 많다고 설하신 것이 비법’인 것이다. 수행자가 이러한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둘째, 비법은 바르지 못하게 잡은 법, 잘못 집착한 법이다. 마치 뱀의 머리를 잡지 않고 꼬리를 잡으면 돌아와서 손과 팔을 무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된 의도로 듣고 배우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잘못된 의도라 함은 남보다 잘난 체 하기 위하여 법을 배우거나, 남의 허물을 찾아내기 위하여, 또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공부하는 것 등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이러한 의도로 법을 듣고 공부하면, 그 법이 뱀의 꼬리를 잡은 것처럼 오히려 스스로에게 고통을 준다는 것이 두 번째 의미의 비법이다.

셋째 경우의 비법은 오온중의 하나 혹은 오온의 합을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다치거나 느낌, 견해와 욕망 등을 거스르면 죽일 듯이 달려드는데, 그 이유는 오온을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 즉 아상(我想)이 3번째 의미의 비법이다. 이처럼 비법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빠진 비법, 삿된 의도로 법을 공부하는 비법 그리고 아상에 집착하는 비법 등의 세 가지이다. 이러한 비법들은 사람을 고통으로 이끄는 것이다.

진리를 보게 하고, 해체와 해탈로 인도하기 위하여 설하신 가르침이 법이다. 이 법들은 해탈을 위한 도구이기에, 이미 해탈한 이들에게는 저 언덕에 건너간 자의 뗏목처럼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필경에는 그 법에도 집착하여 머무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법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물며 삿된 욕망의 비법에 빠져 집착하는 것은 더더욱 옳지 않다는 것이 이 가르침의 요점인 것이다. 

<십지경>에 보면 공을 성취한 보살이 동사섭을 실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취하여 중생을 제도한다. 그것은 해탈을 성취하여 더 이상 법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보살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비법인 오욕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나, 명예욕 등의 삿된 의도와 아상을 벗지 못한, 즉 저 언덕에 건너가지 못한 사람이 (법을 존중하지 않고) 법을 놓아버리는 것은, 바다를 항해하는 자가 배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인 것이다.

[불교신문3575호/2020년4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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