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의 치열한, 또 다른 정진

불교계가 온통 위례 상월선원 얘기다. 9인의 종단 스님들이 동안거를 맞아 한겨울 야외천막에서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정진하는 중이다.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다. 안거 기간은 3개월이다. 객관적으로 3개월이 아니라 몇 시간도 견디기 힘든 고통을, 자청해 견디고 있다. 못 버티면 스스로 스님임을 포기하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누구도 범접치 못하고 예상치 못했던 한국불교의 도전과 결기에, 세속의 호감과 기대가 크다. 천막 바깥에서는 방방곡곡에서 스님과 신도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고 노래를 하며 응원을 한다. 1인용 텐트에 들어가기 전, 스님들은 세상의 화합과 평온을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발원했다. 그래서 천막결사는 뜻 깊고 장렬하다. 물론 스님들의 이런 마음은 위례 말고도 존재한다. 전국 어느 선방에서나 이웃에게 좀 더 따뜻한 자리를 내주자면서, 자기를 거침없이 내몰고 있다.

심원사 상왕선원 무문관. 밖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심원사 상왕선원 무문관. 밖에서만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경북 성주에 위치한 심원사(沈源寺)는 해인총림 해인사의 말사다. 지난해 5월 상왕선원(象王禪院)을 개원했다. 시작하자마자 야심차다. ‘문 없는 문을 뚫는다는 무문관(無門關)이다. 상월선원 스님들이 하고 있는 그것이다. 12월18일 그곳을 방문했다.

8인의 스님들이 스스로를 방에 가둬두고 화두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상월선원처럼 묵언과 11식이 철칙이다. 무문관은 본래 중국 남송시대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가 쓴 선어록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실 있지도 않은 문을 빠져나온다는 건 불가능하다. , 그러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어마어마하게 숭고하다. 책 제목의 서슬 파란 각오에 힘입어 극한적 면벽(面壁) 수행을 일컫는 관용어로 자리했다.

조계종단 최초의 무문관은 1964년 서울 도봉산 천축사에서의 무문관으로 본다. 6인의 스님들이 부처님의 6년 고행을 본받겠다며 문을 걸어 잠갔다. 이후 불조혜명(佛祖慧命)의 계승을 꿈꾸는 스님들이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처럼 확철대오(廓撤大悟)해보겠다며 끊임없이 무문관을 택한다. 상월선원이 그렇고 상왕선원이 그렇다. 이 말고도 여럿이다.
 

선원에서 바라본 가야산과 비슬산.
선원에서 바라본 가야산과 비슬산.

심원사는 신라시대만 해도 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대찰이었으나 소실됐다. 1999년부터 회주 종성스님의 지휘 아래 꾸준히 복원했다. 상왕선원은 과거 사찰의 중심이었던 금당(金堂, 대웅전) 터에 새로 지었다. 원래 산세가 코끼리의 형상을 닮아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불렀던 가야산 자락이며, 상왕봉에 있어서 상왕선원이다.

기운이 매우 좋다. “산란심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수행환경이라 수좌 스님들이 정말 좋아한다는 게 주지 응관스님의 귀띔이다. 이번 동안거에도 경쟁률이 15:1이었다. 운 좋게 무문관에 참여한 스님들은 역설적이게도 다들 꺼리고 두려워하는 고독과 어둠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온종일 5평 남짓한 각자의 방에 앉아 있다. 문은 밖에서 잠근다. 책 한권 못 들인다. 점심공양 무렵 동안만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오전 11시에 남이 열어줬다가 오후 150분이면 반드시 남이 잠가버린다. 하루 21시간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이 친구다. 자취를 없애려고 신발도 안으로 들인다.

전각은 마치 빈집처럼 보인다. 인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문고리와 자물쇠만 뚜렷하다. 안거 경력 40년이 넘은 선원장 스님부터 최하 20년 이상의 구참(舊參) 스님들에게만 허락된 고요다. 이른바 화두가 성성해지는 체험을 자주 하고 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들었다.
 

한 스님이 상왕선원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다.
한 스님이 상왕선원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다.

혹자들은 안에서 무얼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다. 주지 스님에게서 단순하지만 명쾌한 대답이 돌아온다. “방에서 빈둥거리며 망상을 피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면 지치는 법이다.” 공부하지 않을 수 없고 자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고 뭐라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불교에서 문()은 육근(六根) 곧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입구멍 땀구멍 마음구멍을 만족시키기 위해 날뛰고 속이고 편먹는 게 중생의 삶이다. 상월선원에 들기 전, 무문관을 몇 차례 실행한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먹는 것을 최소로 하고 정진할 때 진짜 배고픔을 경험했다먹고자 하는 욕구, 식탐이 이 시대 사회문제의 시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전한 바 있다.

등 따시고 배부를 때의 모든 언행은, 아무리 빛나고 높아도 끝내는 나만을 위한 언행이기 쉽다. 최소한의 먹음과 입음과 잠으로만 가능하고 유효한 무문관은 실제 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이토록 허망하고 치졸한 몸뚱이를 한번 극복해보자는, 그 힘으로 남을 위해 한번 살아보자는 원력이 아닐지 미루어 헤아린다. 부처님이 설파한 진리는 무아(無我)이며 그러므로 자비다. 내가 깨달으려면, 나는 없어져야 한다. 선방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심원사 전경.
심원사 전경.

성주=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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