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경허스님이 천장암에서 기거하던 한평 남짓한 방. 바깥으로 열반 100주년 기념탑이 보인다.
경허스님이 천장암에서 기거하던 한평 남짓한 방. 바깥으로 열반 100주년 기념탑이 보인다.

천장암(天藏庵)은 글자 그대로 하늘이 감춘 절이다. 충남 서산시 연암산 자락에 놓였다. 해발 600미터쯤, 비교적 낮은 고도이지만 눈 아래로 보이는 절경 덕분에 훨씬 높아 보인다. 꾸불꾸불한 숲길 깊숙이 박혀있어 하늘이 아주 가깝다. 동안거가 한창인 16일 천장암을 찾았다.

눈이 오면 차()가 못 가는데 다행히 비가 내렸다. 백제시대인 서기 633년에 창건돼 매우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후 내내 묵혀져 있다가, 한국불교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경허성우(鏡虛惺牛) 대선사(1849~1912)가 주석하면서 비로소 유명세를 탔다.

경허스님은 여기서 총 18년을 살았다. 인근의 공주 동학사에서 화두를 타파한 후 보임(保任)’하면서 머물렀던 곳이 이곳이고, 만년에 다시 돌아와 가사(歌詞)문학의 명작인 <참선곡(參禪曲)>을 집필한 곳이 이곳이다. 천장암은 작고 낡은 절이지만 참선수행의 종문(宗門)이라 이를 만하다.
 

천장암은 경허스님이 마지막으로 떠난 1904년부터 100년 넘게 버려져 있었다. 현재 천장암 회주 옹산스님이 불사의 주역이다. 2012년 경허스님 열반 100주년 기념탑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염궁선원을 지었다. 염궁은 念窮이라고도 쓰고 念弓이라고도 쓴다. ‘생각을 다하다로 읽어도 좋고 생각의 활이라고 읽어도 좋다.

선어록 <무문관(無門關)>은 참으로 말길이 끊어져서 사량분별(思量分別)이 들어설 틈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결국 깨달음이란 생각의 끝에서만 또는 생각이 다해야만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옹산스님은 어느 사냥꾼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생각의 활을 택했다. 해가 져 껌껌해진 산을 급히 내려오던 사냥꾼이 갑자기 커다란 물체가 맞닥뜨렸다. 밤이 깊어 정체를 알 수 없었는데 문득 호랑이라고 여겨 잔뜩 긴장했다. 만약 호랑이라면, 화살이 빗나가는 순간 개죽음이다.

그는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온힘과 온정신을 집중해 활시위를 당겼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화살은 바위를 뚫어버리고 있었다. 참선은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장암 한쪽에는 경허스님이 직접 念弓門(염궁문)’이라고 적은 현판이 붙어있다.
 

천장암 회주 옹산스님이 세운 염궁선원 전경.
천장암 회주 옹산스님이 세운 염궁선원 전경.

'보임의 사전적 의미는 깨달음을 온전히 간직해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깨달음의 철저한 자기화()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 <경허집>의 기록에 따르면 당신의 보임은 거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벌 누더기를 여름에도 겨울에도 갈아입지 않아 온몸에 빈대와 이가 득실거렸다. 온몸이 헐어버린 지경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티끌만한 욕망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몸 위로 구렁이가 지나다녀도 미동조차 없었다.

참선곡은 천만고의 영웅호걸북망산의 무덤이요부귀문장 쓸데없다황천객을 면할쏘냐오호라 나의 몸이풀끝의 이슬이요바람 속의 등불이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결국 스스로를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생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천장암에는 그 무시무시한 탈아(脫我)의 유적이 남아있다. 경허스님이 기거했던 방은 채 한 평이 되지 않으며 건물의 맨 끄트머리에 내몰려 있다.
 

경허스님의 고행을 본받으려고 올해 동안거에도 9명의 수좌가 방부를 들였다. 정진은 새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계속된다. 선원을 복원한 옹산스님은 한국 선풍의 골수인 경허스님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원력을 세운 것이라며 살림은 어렵고 교통은 불편하지만 끝까지 선원 운영을 이어가리라고 힘주어 말했다.

개인적으로 무문관에 도전하는 스님도 있다. 3년을 목표로 했으며 벌써 2년 동안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방에서 나오지 않는 그 스님은 미국 국제변호사 출신으로 알려졌다. 묵언중이어서 말을 붙일 수 없다. 다만, () 최인호 소설가의 <길 없는 길> 등 경허스님과 관련된 책은 모조리 읽고 발심해 40대 초반에 다 버리고 출가했다고, 주지 스님이 알려줬다.

그 스님은 생각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생각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대개는 대충 생각하거나, 생각에 아파만 하다가 끝나버린다.

서산=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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