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죽비가 되고 거울이 되어…

동안거 해제를 앞둔 2월3일 덕숭총림 수덕사 견성암 비구니 스님들이 한철 동안 앉아 있던 좌복의 먼지를 털고 있다.
동안거 해제를 앞둔 2월3일 덕숭총림 수덕사 견성암 비구니 스님들이 한철 동안 앉아 있던 좌복의 먼지를 털고 있다.

덕숭총림 수덕사 견성암(見性庵)은 근현대 최초의 비구니선원이다. 1908년 만공스님이 열었다. 역사가 오랜 만큼 배출된 인물도 많다. 과거엔 견성암 제일(第一)’선원이라 불렸다. 지금도 출가를 꿈꾸는 여성이라면 염두에 두거나 추천받는 곳이다.

원래는 덕숭산 윗자락 환희대에 있었으나 훗날 수덕사 본찰 바로 옆에 자리했다. 외양이 상당히 이국적이며 고풍스럽다. 1965년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식()으로 지은 2층 석조건물이다. 기와는 나중에 올렸다. 건물을 지을 때 비구니 스님들이 손수 돌을 깨고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올해 동안거엔 32명의 스님들이 방부를 들였다. 여성 출가자들이 점점 줄어드는 탓에 예전보다는 적은 숫자다. 20년 전엔 100여 명, 10년 전엔 70여 명이었다. 그래도 질()은 양()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23일 견성암을 찾았다. 27일이 해제일이고 이제는 안거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이번 한철도 치열하게 살았다. 새벽 3시에 기상해 저녁 9시까지 참선했다. 눈 뜨면 앉고’, 밥 먹고 앉고, 예불하고 앉는 옹골찬 일상이었다.
 

1965년에 세운 견성암 선원 건물 전경.
1965년에 세운 견성암 선원 건물 전경.

스님들의 좌선도 훌륭하거니와 생활도 충분히 귀감이 된다. 철저한 공동체주의자들이다. 30대 스님부터 80대 후반 스님까지, 큰방에서 다 같이 정진하고 다 같이 발우공양하고 다 같이 잠을 잔다. 완벽한 평등을 지향한다. 간혹 보시금이 들어오면 많든 적든 인원에 따라 똑같은 액수로 나눈다.

민주주의도 단련돼 있다. 선원장은 2, 도감 재무 서기 등 다른 () 소임1년 임기로 돌아가면서 맡는다. 분란의 씨앗조차 만들지 않으려고, 같은 문중의 스님이 2명 이상 상소임을 맡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반드시 대중공사에 붙여 모두의 동의를 받은 뒤 시행한다.

법랍 45년 이하면 아궁이에 불을 때든 법당에서 기도를 하든 무조건 소임을 봐야 한다. 몸만 움직일 수 있으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만큼 끊임없이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죽비가 되고 거울이 된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어른은 권력이 아니라 모범이기만 하다. 절을 들고 날 때는 반드시 보고를 하고, 제일 먼저 일어나 입선(入禪) 시간을 기다린다. 개인주의와 각자도생이 보편을 넘어 아예 미덕이 된 시대에, 삶의 모습만으로도 인간문화재 감이다.
 

큰방에 정리되어 있는 스님들의 발우. 윗편의 '세계일화' 글씨는 만공스님이 썼다.
큰방에 정리되어 있는 스님들의 발우. 윗편의 '세계일화' 글씨는 만공스님이 썼다.

도감(都監)은 살림살이 전반을 살피는 역할이다. 금년에 도감으로 일하는 동주스님이 견성암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견성암에서만 27년을 산 스님의 화두는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아리송한 물음이다.

중국 당나라 조주 선사는 이에 대해 내가 베옷을 하나 지어 입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七斤)이더라는 엉뚱한 대답으로 특유의 선기를 분출했다. 견성암 실내에는 칠근루(七斤樓)’라고 쓰인 만공스님의 현판 글씨가 붙어있다. ‘일곱 근은 각자가 감당해야 할 필연적인 삶의 무게로도 해석한다.

스님들은 안거를 정리하고 있다. 떠날 준비를 하거나 계속 살아갈 준비를 한다. 큰방과 경내를 청소하고 ()좌복을 햇볕에 턴다. 사람 키만 한 길이로, 참선할 때는 좌복이 되고 잠을 잘 때는 이부자리가 된다. 한평생 이것과 한 몸이 되어, 줄기차게 달려드는 만법을 받아내고 끝내 이겨내기도 한다.

수덕사=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3555호/2020년2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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