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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 (2018).12.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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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 나온 자승스님 “뭘 하겠단 생각도 허물”전국 94개 선원 일제히 동안거 해제
백담사 무문관과 기본선원, 신흥사 향성선원에서 3개월간 정진한 대중이 조실 무산스님의 해제법어를 듣고 있다.

“다 내려놓는게 은퇴…뭘 하겠단 생각이 허물”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 무문관 수행 소회 밝혀

내설악 백담사는 올 겨울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총무원장 임기가 끝나자마자 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을 이어가는 무문관에 들었기 때문이다. 3개월의 동안거를 마치고 백담사 산문이 열린 날, 전날 밤부터 내린 눈이 길을 막았다. 겨우내 끊겼던 인적이 다시 트일 때 겨울 손님은 가뭄이 심했던 산천초목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었다.

백담사 무금선원은 3월1일 해제법회를 열었다. 무문관 대중 10명 외에도 신흥사 향성선원 대중과 조계종립 기본선원 대중 등 80여명이 함께 했다. 조실 무산스님은 선종 초조 달마선사의 무문관 41칙 안심법문으로 해제법문을 대신했다.

“달마대사가 면벽하고 있을 때였다. 혜가는 눈 속에 서서 팔을 자르고 이렇게 말했다. 제자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대사가 말했다. 네 마음을 가져오면 내가 너를 편안하게 해 주리라. 혜가가 다시 말했다. 제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습니다. 이에 달마대사는 내가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법문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백담사에서 열린 동안거 해제법회.

간결한 법문으로 동안거 정진이 끝났다. 무문관과 기본선원, 향성선원에 의탁했던 정진 대중은 다시 걸망을 멨다. 무술년 하안거가 오기까지 운수하는 납자가 되어 세상을 향해 만행을 떠날 시간이 됐다.

무금선원 유나 영진스님의 방에 조실 무산스님과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 신흥사 주지 우송스님, 낙산사 주지 금곡스님, 향성선원 선원장 문석스님, 기본선원 선원장 대전스님 등이 모여 동안거 정진 소회를 나눴다. 3개월 정진을 마친 자승스님에게 관심이 쏠렸다. 무산스님은 “괜한 걱정을 했다.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거량하듯 “덕분에 설악산은 높아지고 골짜기는 깊어졌다”고도 했다. 자승스님은 “30년 탐관오리 짓 업장이 많이 소멸된 것 같다”고 말을 받았다. 영진스님은 “무문관이 많이 유명세를 탔다”며 “한번더 모셔야겠다”고 말을 보탰다.

백담사를 제외한 전국 93개 선원은 3월2일 해제법회를 일제히 봉행한다. 선사방함록에 따르면 총림 286명, 비구 1108명, 비구니 638명 등 총 2032명이 동안거 결제에 참여해 용맹정진했다.

진제 조계종 종정 예하는 해제를 앞두고 발표한 법어에서 “파도에 백번 밀려나도 다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돛단배가 마침내 순풍을 만나 신대륙에 도착하듯이, 수행자는 번뇌 망상이 팥죽 끓듯이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지를 가져야만 화두가 순일해지고 마침내 마음의 고향에 이르게 될 것”이라며 부단한 정진을 당부했다.

신흥사 조실 무산스님과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담소하고 있다.
백담사 무문관에서 3개월간 정진한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외부 소식을 들을 일도 없고 관심 가질 일도 없으니 모든 것이 저절로 내려지더라”라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총무원장을 마치면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나름 구상을 했었는데 그런 생각이 다 허물이었습니다. 총무원장을 8년 했으면 사판으로서 종단을 위해 할 일을 다 했으면 됐지 뭘 더 하겠습니까.”

임기를 마친 뒤 곧바로 백담사 무문관 정진에 든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동안거 해제법회에 앞서 3개월간의 수행에 대한 소회를 피력했다. 이후 행보에 여전히 세상의 관심이 쏟아지는데 대해서는 “이미 은퇴했다”며 “은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루 전 중앙종회의원들을 접객할 때도 일체 종단과 관련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말을 보태지도 않았고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말을 보탠다면 그 역시 허물이 된다”고 했다.

백담사에 따르면 자승스님은 사찰에서 제공하는 1일1식을 점점 줄여 하루 반공기와 약간의 야채로 정진했다. 대중공양물도 일체 받지 않았고 음식이 들어가는 그릇은 직접 설거지를 해서 내놓았다. 자승스님은 무문관 정진 후 12kg의 체중이 줄었다. 최고 17kg이 빠졌으나 해제 2주를 남기고 약간 살을 찌웠다.

무문관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손빨래라고 했다. 화학세제를 이용하다보니 오랫동안 헹궈야하는 일이 여간 힘든게 아니라고 했다. 햇볕을 맞을 수 있는 시간도 하루 30분에 불과했다.

자승스님은 1986년 통도사 보광선원에서의 정진에 이은 32년만의 안거에 대해 “외부 소식을 들을 일도 없고 관심 가질 일도 없으니 모든 것이 저절로 내려지더라”라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고 술회했다. “체질에 맞는 것 같다”며 “또 방부를 들일까 생각 중”이고도 했다.

자승스님은 이후 계획에 대해 “뭘 하겠다는 것은 다 욕심이고 허물이다”며 “승속을 막론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은퇴한 사람이 무슨 계획이 있겠느냐”고 웃었다.

인제=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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