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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 (2018).12.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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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방장 지선스님 정유년 동안거 해제법어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스님

掃盡從前諸雜解
話頭提起急加功
一朝識破娘生面
虎穴魔宮正路通

종전의 잡스런 알음알이 싹 쓸어버리고
화두를 급히 들어 더욱 공을 들여라
하루 아침에 엄마 뱃속의 본래면목을 알아버리면
호랑이굴, 마왕의 궁전에 가서도 바른 길이 늘 통하리
(나옹스님 게송)

이번 동안거는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업보가 박잡한 저는 바람에 날리는 눈처럼정신없이 지냈습니다만, 여기 모이신 사부대중들께서는 심신이 모두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예전에 하던 짓,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민주(民主)라는 것을 딱 붙잡고 천하 사람들을 만나진흙소가 물 위를 걷고 대지(大地)가 허공에 찢어지는 것도 말하며 다녔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뼛속까지 스며든 한기를 이겨내고 피어난 매화향기가 평창에 가득한 것을 보기도 했고, 참사람의 모습들이 춤을 추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고달프긴 하였으나 세상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는 민주, 통일의 원리를 보았기에 즐거웠습니다. 저는 이렇게 겨울을 보냈습니다.

강에 가득하던 얼음이 조금씩 풀리고 산하에 봄빛이 언뜻 짐작도 되면서 봄날 아지랑이 같은 알음알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시골의 촌로들도 한다는 가상화폐 얘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발전되어 가는데 단순한 사람은 필요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근본을 추구하는 삶에서 멀어질수록 세상에는 고통이 가득 차니 항상 근심이 됩니다. <능엄경>의 ‘지견(知見)의 알음알이를 세우면 곧 무명의 근본이요, 지견에 따로 견해가 없다면 곧 열반이다’라는 경구처럼 알음알이를 버리고 담박하고 청정하게 근본을 닦으며 사는 것이 지금의 시절에는 절실해 보입니다.

그러면 어찌 근본을 닦을 수 있을까요? 대주혜해스님 <돈오입도요문론>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이 나옵니다. “근본을 닦을 때에는 무슨 법으로 닦아야합니까?” “선정(禪定)에 들면 근본을 닦을 수 있나니 선정이 없다면 망상이 일어나 선근(善根)조차 망치리라!” “그렇다면 무엇이 선(禪)이고 무엇이 정(定)입니까?” “헛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음이 선(禪)이요, 본디 성품을 보는 것이 정(定)이다. 본디 성품이란 그대의 생멸 없는 마음이요, 정(定)이란 경계에 무심하여 팔풍(八風)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팔풍이란 이익과 손해, 험담과 칭찬, 괴로움과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다.”

팔풍의 망념은 장애입니다. 오로지 진정한 선정을 닦아야 근본을 닦을 수가 있습니다. 근본을닦아야만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능가경>에서는 “마음이 생기니 온갖 법이생기고 마음이 멸하니 온갖 법이 멸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마음은 생멸심이니 근본이 아닙니다.

이 근본, 여래장심, 불성이란 자리도 기실 방편으로 지어서 낸 말일뿐입니다. 그러면 어찌 이러한 법문을 하느냐? 내놓을 것도, 취할 것도, 설할만한 법도 없어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근본을 닦으라하니 또 어긋나 잘못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성인은 참마음을 찾되 부처님을 찾지 않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님을 찾고 참마음은 찾질 않는다. 지혜로운 이는 마음을 다스릴 뿐 몸을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데, 어리석은 이는 몸을 다스리려할 뿐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 이 말은 생사영단이 안되고 근본에 어두운 공부인들을경계하는 말입니다.

무시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온갖 경계에 흔들림 없는 마음이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는 필요합니다. 이러한 근원적 자리에서 활발발하여야만 이 나라 살리는, 이 겨레 살리는 실천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 그동안의 타성에서 벗어나 우리 불자들은 참된 양심의 자리에서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살려 일단 주인공으로 삽시다. 그러한 주체적인 삶, 민주시민도 못되면서 대승보살행을 머리에 담아두면 그 괴리가 너무 커져 자기가 할 수 있는 소소한 선행조차도 못하게 됩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오르는 장원심(長遠心)을 냅시다.

유난히 추웠던 시절이었는데 아마 이번 봄, 아지랑이 같은 알음알이는 더욱 치성해질 것입니다. 아! 헛된 생각들을 단박에 없애서 무심, 무소득의 지견으로 살아가는 돈오의 삶! 어떠합니까?

8식도 미세망상의 마구니 경계로다!
쏟아지는 비 같은 설법을 뒤로 하고
백문(百聞)이 불여일행(不如一行)!
떠나는 선방스님들 뒷모습들이 아름답구나!

엄태규 기자  che1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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