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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소설]등(燈) / 김영민
  • 김영민 삽화=용정운
  • 승인 2017.12.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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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이 머리카락을 뽑을까 말까 망설였다. 아까부터 다섯 살 된 아들의 작은 머리통을 보면서 고민에 빠졌으나, 주방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아내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아이는 ‘전등놀이’ 중이었다. 거실 벽에 바짝 붙어 스위치를 켜고 끄기를 되풀이했고, 그 손놀림에 따라 방안의 풍경들도 어둠속에서 획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그는 오늘 따라 일찍 일어난 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듯이 훑어보았다. 깜박거리는 전등 아래서 아이 모습이 유난히 낯설다. 무표정한 얼굴이 공포영화 주온에 등장하는 꼬마 같아서 산득한 기분마저 들었다. 점멸하는 전등 빛 때문에 눈이 피로했다. 머리카락 뽑기는 잠시 미루더라도 저 이상한 놀이부터 제지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그만!’ 퉁명스럽게 말하며 일부러 험상궂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아이는 항상 해왔던 것처럼 그와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다. 천장 쪽에 무슨 유령이라도 보이는 것처럼 시선을 고정한 채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기를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이다.

그는 아이 팔을 낚아채 완력으로 현관문 앞에 세웠다. 그리고 신발장 안에서 지난번 이사 때 사용하고 남은 줄을 꺼내와 한쪽은 가느다란 아이 손목에 묶고, 다른 한쪽은 현관문 손잡이에 감아 고정시켰다. 아이가 자신에게 감긴 줄을 바라보면서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흥미를 잃고 스위치가 있는 거실 벽 쪽으로 향했다. 줄이 팽팽해졌고 내뻗은 아이 손이 스위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아이가 찡얼대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그의 얼굴에 난처하면서도 피로한 승리감이 흘렀으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저 자그마한 상대는 기어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에게 저항했다. 아이가 악을 쓰며 울다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를 연달아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꼬마들이 총놀이 할 때처럼 ‘드드드’ 소리를 내더니, 벌렁 드러누워 발작하듯 몸을 흔들며 방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는 아이의 그악스런 몸놀림을 보면서 어김없이 넌더리나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오늘도 내일도 한 달 후에도 아니 죽을 때까지 이 숨 막히는 전쟁을 치러야 하고, 결국 패배하는 쪽은 언제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반려동물도 집안에선 안 묶어놔.”

주방에서 온 아내가 고무장갑을 벗으면서 쏘아붙였다.

“동물이면 몰래 내다버리기라도 하지.”

“여보!”

아내가 묶인 줄을 풀고는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시로 이뤄지는 모자간의 극적인 상봉―혈육의 정을 확인하듯 이산가족처럼 몇 초간 꽉 끌어안는―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아내가 아이 웃옷을 걷어 올리더니 몸을 찬찬히 살폈다. 심지어 바지까지 내려 다리에 상처나 멍자국이 있는지 확인했다. 얼마 전 누워서 바둑채널을 보고 있는 그에게 아이가 ‘등신’ 이라고 욕하면서 침을 뱉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순간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차례 했다. 그 이후 아내는 혹시 그가 아이를 때리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내는 고작 서른 단어 밖에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등신’ 이라고 했다는 걸 믿지 않았다. 아이가 입에 달고 사는 ‘드드드’ 소리를 오해했을 거라고 비난했으나 아무튼 그는 들었다. 사람의 감각기관이란 자신에게만큼은 늘 진실한 법이니까.

그는 휴지를 들고 쭈그려 앉아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이가 뱉은 침들을 닦기 위해서였다. 하얀 비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것을 휴지로 훔치려다가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촉감이 비닐은 아니었다. 비닐보다는 더 두껍고 촉촉했으며 무엇보다도 표면에 희미하게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벚꽃잎이었다. 벚나무가 즐비한 곳은 집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진 절로 향하는 둘레길인데 그곳에서 여기까지 날아들 리는 없었다. 아내가 뭐냐고 묻자 그는 벚꽃! 짤막하게 대답했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던 아내가 날이 밝아오는 거리를 내다보면서 말했다.

“벚꽃놀이 가는 사람들은 좋겠다.”

“……”

말끝을 튕긴 아내는 가족나들이 가자는 것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아내가 다시 주방으로 향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 머리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무래도 집안에선 아내 때문에 머리카락을 제대로 뽑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는 아내의 눈을 피해가며 아이를 데리고 슬그머니 현관문을 나섰다. 그러나 몇 걸음 못가서 몸을 숨기듯이 반사적으로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도로 건너편 2층에서 이불을 터는 동네 아주머니와 얼굴이 마주치자 도무지 아이를 데리고 집밖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언제부턴가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서면 주변을 의식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느닷없이 아무 데서 침을 뱉거나 드러누워 이악스럽게 생떼를 쓰고, 가끔 다른 사람 손에 있는 물건까지 낚아채서 그를 난처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그러자 나중엔 아이와 외출하는 걸 기피하게 됐는데 가족나들이 한 기억이 까마득했다.

어떻게 해서든 뽑아야 한다. 그는 머리카락 개수를 모두 셀 것처럼 아이 머리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우선 다시 전등놀이에 빠져든 아이의 관심부터 딴 곳으로 돌려야했다. 그는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건 뿔이 셋 달린 트리케라톱스 공룡인형이나 파워레인저 같은 장난감이 아니다. 그는 손목에 차고 있는 은시계를 풀어 아이 눈앞에 들이댔다. 반응이 금방 왔다. 회전하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는 아이가 스위치에서 손을 떼고 그의 시계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시계를 흔들며 안방으로 들어갔고, 아이가 뒤따라오자 그것을 건넸다. 손에 시계를 받아든 아이는 미동도 않고 초침을 응시했다. 그는 머리카락을 뽑는 것도 잠시 잊은 채 부증불감(不增不減)의 회전 속으로 빠져든 아이 모습을 심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는 돌이 지나면서부터 시계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장난감 차를 유난히 좋아해 잠자리에 들 때마다 손에 쥐고 자곤 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처럼 차와 시계를 좋아하는 게 내심 기뻤다. 어리지만 사내랍시고 벌써부터 차에 관심을 갖는 구나 여겼다. 하지만 아이가 진짜 좋아한 것은 차가 아니라 돌아가는 바퀴였고 그게 순전히 병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어떤 배신감이 밀려오면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어제 직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마감시간이 되자 가게 앞 매대에 진열해놓은 자잘한 물건들을 안으로 들이고 퇴근을 서두를 때였다. 한 손님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순간 그는 여자를 보곤 얼굴을 붉혔고, 여자도 마찬가지여서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아는 척을 할까 말까 고민했으나, 여자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곤 결정을 내렸다.

“찾으시는 물건 있습니까?”

여자가 주뼛거리면서 천장에 견품으로 달아놓은 전등들을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천장을 두리번거릴 뿐 딱히 하나를 고르지 못했다. 그보다도 이 가게를 어서 빠져나가려는 눈치였다. 당신, 맘에 든 게 있어? 여자의 남편이 물었다. 글쎄. 여자의 남편이 등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가격을 물었다.

“9만원입니다.” 그가 말했다.

“아뇨, 그 루미 거실등은 17만원입니다. 이 사람아 가격을 제대로 알려줘야지.”

옆에서 사장이 끼어들었다. 사장의 타박에 그는 무안함을 느꼈고, 여자는 바로 옆에 남편이 있는데도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조명가게 사장이 아닌 종업원으로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일까. 아무튼 여자의 남편이 등을 골랐고 뒤이어 부부는 집주소를 알려준 뒤 밖으로 나갔다. 여자가 남편과 함께 길가에 세워둔 차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과거 여러 기억들이 부유물처럼 떠올라 마구 헤집고 다녔다. 그는 사장이 자신을 데리고 여자 집에 등을 설치하러 갈까봐 불안했다. 예전에 다니던 물류회사 관리부에서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바람에 실직한 이후로, 임시방편으로 몇 달 전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고 있으나 작업이 얼른 손에 붙지 않았다. 잠시 후 퇴근준비를 끝낸 그가 사장과 함께 가게 밖으로 나와 셔터를 내렸다. 순간 옛 일이 떠올라서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오싹 소름이 돋았다.

내 꿈은 셔터맨이야.

언젠가 여자에게 별 생각 없이 했던 말, 아니 그때쯤 여자와의 만남이 한 번씩 귀찮을 때도 있었다. 이별은 깔끔할수록 좋고 될 수 있으면 상대에게 차여서 헤어지는 게 남자의 예의라고 믿던 시절, 은연중에 여자에게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비쳐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말엔 힘이 있어. 가끔 절에 간다는 여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책망하면서 삼업(三業)을 이야기해줬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짓는 과보. 윤회와 환생에 관한 이야기도 해줬는데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게 어딨어? 그러자 여자가 지금도 환생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달라이 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13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한 후에 그의 사체가 스스로 움직이더니 위치를 북동쪽으로 바꿨대. 그 방향 어느 집에 한 아이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정확히 달라이 라마의 유품을 고르거나 라마교의 고승을 알아본 거야. 그 아이가 지금의 14대 달라이 라마지. 여자의 말은 외계인 시신과 그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 보관돼있다는 미국 네바다 주의 51구역처럼 기이하고도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는 아이 머리 위로 손을 뻗으면서 인터넷 검색과 전화통화로 확인한 내용을 떠올렸다. ‘모근이 붙은 머리카락이나 손발톱, 기타 인체의 세포가 묻은 모든 것에서 DNA 검사가 가능합니다.’ 손발톱은 자를 수가 없었다. 화가 나서 분을 주체하지 못하면 자신의 얼굴을 할퀴는 버릇이 있는 아이를 위해 아내가 항상 짧게 깎아주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친자확인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의 휴대폰에서 “잘 지내? 남편이 잘 해줘? 아이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서 온 문자만 우연찮게 봤다면 이런 요란까지는 떨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문자와 더불어 대학병원에서 아이가 장애확정판정을 받은 이후 마음 한 쪽에 내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 라는 의구심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자폐증. 16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상장을 받으려고 단상에 수차례 올라가고, 2년간 최전방에서 우수대원으로 국가에 봉사했으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견기업에서 7년 넘게 근무했던 자신에게 그런 사특하고 불량한 유전자는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아이가 자폐증 확정판정을 받자 그는 가족나들이를 꺼려했고 어느 때부턴가 친목회나 동창모임에도 안 나갔다. 화젯거리로 자식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몹시 괴로웠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직장에서 잘린 이후부터 이런 대인기피 성향은 더 심해졌다. 그나마 친했던 몇몇 초등학교 동창들―학창시절 그를 ‘쌍가마’라고 놀리기 일쑤였고, 그래서 그도 곧잘 ‘돼지족발’ ‘역삼각형’이라고 응수했던―하고도 술자리까지 아예 피하면서 직장과 집만 오가는 ‘집돌이’로 변해버렸다.

아내가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 그는 아이 머리카락을 손으로 헤쳤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아무리 해도 한 올씩을 집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잔인하게도 몇 가닥이 잡히자 그대로 손을 낚아챘다. 시계에 온통 정신이 쏠려있던 아이가 끝내 울음을 터트렸고 곧바로 아내가 달려왔다. 그는 슬그머니 머리카락을 쥔 손을 허리 뒤로 감췄다.

스위치를 올리자 안이 환해진다. 천장에서 원형, 직사각, 정사각 모양의 방등들과 거실등들이 일제히 밝은 빛을 내뿜는다. 1500원짜리 형광등 하나를 사러온 이십대 커플은 LED등을 보자고 했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는 전등을 끄려고 스위치 쪽으로 손을 뻗다가 머뭇거린다. 어제 여자가 고른 거실등을 올려다보다가 유리창 너머 밖을 내다보았다. 왠지 여자가 어디선가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 아침 그 일 때문이었다. 그가 사장과 함께 가게문을 열려고 셔터를 올리고 돌아섰을 때, 바로 앞 도로엔 승용차 한 대가 신호등에 걸려 서 있었다. 차 안의 사람들이 낯이 익었다. 분명 여자와 그녀의 남편이었다. 여자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는 것을.

여자가 고른 등을 보고 있자니 처음 둘이 방에 들어갔던 때가 떠올랐다. 벚꽃놀이를 다녀온 날 밤, 그는 여자 손을 이끌고 모텔에 들어갔다. 둘 다 처음이었으므로 모든 게 서툴렀다. 컴컴한 방에서 등 켜는 것부터 헤맸다. 방등 현관등 무드등 욕실등 취침등 스위치가 모두 한 곳에 붙어있어서 자꾸 엉뚱한 등을 켜거나 끄기 일쑤였다. 조바심이 난 그는 나중엔 어이가 없어 키득키득 웃었고 그러자 여자도 뒤따라 캐득거렸다. 다음날 모텔을 빠져나왔을 땐 누런 태양이 황사 짙은 하늘 한가운데에 걸려 있었다. 무드등 대신 방등 아래서 상대의 알몸을 보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여자가 그의 가슴에 손가락으로 ∞문양을 그리면서 말했다.

남녀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려면 6천겁의 연이 쌓아야 한대.

겁?

둘레가 40리나 되는 큰 바위산을 백년에 한 번씩 얇은 옷으로 스쳐서 그 바위산이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야. 상상이 안 가지? 부부의 연은 7천겁이고 부모와 자식은 8천겁……

여자의 말대로 그는 ‘겁’이라는 시간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백년에 한번 씩 옷을 스친다고 그렇게 큰 바위가 없어지기나 할까? 소나 태양을 숭배하던 옛날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 오히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여겼다. 그와 여자는 전생엔 6천겁의 인연이 닿았는지 모르겠지만 현생에서 연은 벚꽃이 몇 번 피었다가 지는 동안 만큼이었다. 산부인과로 향하면서 그는 자신들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예감했다. 전생에서 8천겁 중에서 1겁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현생에서 그의 완강한 반대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는 세상과 연이 닿지 않았다. 수술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사람의 몸 안에 있는 한 생명이 꽃잎처럼 쉽게 떨어져나간다는 게 그는 믿기지가 않았다. 오히려 회복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링거에서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지는 수액을 보면서 여자가 말한 겁이 과연 어떤 것일까 상념에 빠졌고, 한편으론 이 잔인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겁과 상반되는 단어를 휴대폰으로 검색해보기도 했다. 찰나: 두 사람이 명주실 양끝을 붙잡고 칼로 내려쳤을 때, 그때 그 실이 끊어지는 순간이 64찰나이다. 이를 현대 시간으로 환산하면 0.013초. 그는 여자와 함께 한 시간들이 어쩌면 먼 훗날엔 찰나처럼 짧으면서도 희미하게 기억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주일 후, 다시 만났을 때 얼굴이 초췌해진 여자가 함께 절에 가자고 했다.

등 하나 달고 싶어. 그래야 내 맘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

여자가 ‘영가등’ 이야기를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

……낙태 장면을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어…… 수술기구가 안으로 들어가니까 그 작은 게 살겠다고 자궁 위쪽으로 도망가더라…… 우리 아이도 무서웠을 거야……

여자가 말한 낙태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린 그는 몸서리를 쳤다. 왠지 자신이 소가 끄는 밧줄에 묶여 사지가 절단나는 거열형을 당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싫어, 안 갈 거야. 너도 괜한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마. 삼업 같은 건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맘 편히 가져.

여자가 그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내더니 꽃이 죄다 진 벚나무 너머 흐린 하늘을 보며 무슨 주술에 걸린 듯이 느릿느릿 말했다.

……앞 물결은 뒷 물결을 언제나 모르는 법이지……

점심 무렵, 가게 앞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사장이 그에게 오늘은 일이 밀렸으니 이따 여자 집에 혼자 등을 설치하러 가라고 했다. 그는 안 가려고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다가 포기했다. 식사 중에도 수시로 고객과 통화하며 출장일정을 잡는 사장을 보고 있자니 핑계를 대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한편으론 여자가 사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집에 다녀오려고 사장에게 아이가 아프다고 둘러댔다. 오전에 창고물품정리를 하느라 옷이 엉망이었던 것이다. 비록 헤어졌지만 옛 애인에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땀냄새나 풍기는 꾀죄죄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등을 제대로 설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혼자 몇 번 다녀보긴 했으나 손재주가 없어서 작업시간이 오래 걸렸고 등을 비뚜름하게 설치한다거나, 간혹 일을 끝내고 스위치를 올리면 불이 안 들어와서 애먹은 적도 있었으니까.

그는 호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와 지갑을 꺼냈다. 집에서 바지를 갈아입으려고 소지품들을 꺼내는데 오른쪽 호주머니엔 가장 중요한 게 들어있었다. 바로 오늘 아침에 뽑은 머리카락을 넣어둔 비밀을 간직한 봉투였다. 반으로 접은 편지봉투 두 개를 꺼낸 그는 자신과 아이의 것을 따로 식별해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름을 적어놓으려고 봉투에서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한 사람 것이라도 되는 듯이 엇비슷했다. 둘 다 가늘고 짧았다. 모근이 없는 머리카락들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뽑아야만 했다. 머리카락들을 전부 휴지통에 버린 그는 이번엔 아예 봉투에 자신과 아이 이름을 써넣었다. 그리고 다시 머리카락을 뽑으려고 장난감 차바퀴를 돌리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아내가 문제였다. 아침에 머리카락을 뽑으면서 아이를 울려서인지 벗어놓은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으면서도 그가 무슨 해코지를 하는지 자꾸 곁눈질했다. 방에선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울려서 미안해. 그는 일부러 아내가 보는 앞에서 사과하고는 과자를 사주겠다면서 아이를 데리고 기어이 집을 나섰다.

집밖을 나서자 아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드드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훗날 거리를 돌아다니는 AI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꼭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AI의 생김새와 행동이 사람과 확연히 다르면 그 이질감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 영역을 ‘불쾌한 골짜기’ 라고 한다는데, 그는 아이의 이런 정형행동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우울한 골짜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나저나 아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온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때문인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그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후드티를 입은 낯익은 동네 백수 청년이 대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아이를 관찰하듯 노골적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모퉁이를 돌 땐 허리보호대를 차고 있는, 일흔을 넘긴 마트주인이 빈병을 정리하다가 그와 아이를 향해 입가에 알 수 없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예전에 가족나들이를 갔을 때 느꼈던 공포감이 엄습했다. 온 세상이 그와 아이가 어떻게 지지고 볶는지 어디 한 번 보자 하면서 가만히 숨죽인 채 응시하는 것 같았다. 타인의 불행은 언제나 구경거리다. 아이와 함께 내딛는 걸음걸음이 우거진 밀림을 헤치고 가는 것처럼 어렵게 다가왔다. 그는 금방이라도 아이가 길 한복판에 누워 감사납게 떼를 쓸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이를 데리고 다시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래도 머리카락을 뽑아야 한다는 욕구가 앞섰다.

집근처 놀이공원에 도착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머리카락을 뽑을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꼬마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노는 탓에 정신이 없었다. 아장아장 걷는 코흘리개는 연신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려고 했다. 한 녀석은 계속 까르르 웃었고 다른 아이는 울고 있었다. 철봉 기둥을 붙잡고 계속 빙빙 돌고만 있는 놈도 있었다. 놀이터의 모든 아이들이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가만히 지켜보면 유별난 데가 있었다. 귀엽네요. 옆에서 유모차를 밀고 온 여자가 침을 뱉고 있는 그의 아들을 보면서 말을 걸어왔다. 화들짝 놀란 그는 대꾸도 않고 아이 손을 이끌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공중화장실 뒤편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아이 머리통을 지그시 누르면서 붙들었다. 아이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한 올을 뽑으려고 더 세게 누르며 머리카락을 헤쳤다. 그런데 아이 머리 한가운데에 여태껏 의식하지 못했던 게 눈에 띄었다. 정수리의 허연 부분, 머리카락들이 나선형으로 뻗은 가마 옆에 성긴 곳이 한 군데 더 보였다. 또 다른 가마였다. 그러고 보니 아이도 자신처럼 쌍가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이가 자꾸 도리머리를 해서 머리카락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쌍가마를 보면서부터 아니 아까 봉투에서 꺼낸 머리카락들이 비슷하다는 걸 알 게 된 순간부터 의욕이 한풀 꺾여 머리카락을 뽑으려는 손에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아이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화장실 안으로 뛰어갔다. 이런 망할 자식! 그는 얼른 뒤따라갔다. 아이가 변기 옆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옹송그리며 여느 때보다 크게 ‘드드드’ 소리를 냈다. 그는 떨고 있는 아이를 구석에서 끌어내려고 손을 뻗었다.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든다. 눈물이 타고 흐르는 볼에 뻘겋게 달아오른 자국이 선명하다. 그가 차고 있는 금속 시곗줄에 긁힌 모양이다. 손목에 차고 있는 은시계가 유난히 빛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시계가 번들거렸고, 아이를 잡으려고 내뻗은 그의 팔이 반사된 금속 빛에 젖어서 이내 하나의 집게로 변한다. 무슨 기다란 기구 같다. 순간 언젠가 여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스친다. 수술기구가 안으로 들어가니까 그 작은 게 살겠다고 자궁 위쪽으로 도망가더라…… 그는 움찔 놀라면서 아이에게 내민 손을 거둔다. 무릎을 가슴팍에 붙인 채 웅크리고 있는 아이는 영락없는 태아의 모습이다.

잠시 후 놀이공원을 빠져나올 때 저만치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를 데리고 나간 그가 미덥지 못해 뒤따라온 게 틀림없었다. 과연 아내는 아이의 볼에 난 상처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따지고 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놀이터에서 넘어졌다고 둘러댔다. 아내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그의 모습이 싫지 않는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요일에 벚꽃구경 가자. 곧 지고 말거야.”

“……”

그는 자동차가 지나칠 때마다 구르는 바퀴에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밖에서 보니 볼의 긁힌 자국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직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던 그는 아내에게 도로변 약국을 가리키며 후시딘 연고를 하나 사라고 했다.

“아저씨, 저 등 교체해주면 돼요.”

그는 옛 애인에게서 ‘아저씨’란 말을 듣자 기분이 묘했다. 마치 화장실에서 아직 볼일이 안 끝났는데 느닷없이 센서등이 꺼질 때처럼 난감하기까지 했다. 어떤 추억들은 어항에 배를 드러낸 채 죽어있는 물고기를 보는 거나 다름없는 모양이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만지면 냄새만 풍기는. 아마도 남편을 의식해서 거리를 두려는 듯했다. 여자의 집은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라였다. 거실 한쪽엔 커다란 벽면 티브이가 걸려 있었고 한쪽 벽엔 부부가 사진 속에서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외관상 보이는 집안의 평범함이 그를 안심시켰고 마음속으로 여자에게 감사했다. 날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다. 절연장갑을 낀 그는 다마스 차에 싣고 온 전등을 한쪽에 놓고 공구박스를 펼쳤다. 거실 한가운데에 사다리를 펼쳤을 때 여자의 남편이 밖에서 들어왔는데 입에선 희미하게 술냄새가 났다. 토요일 오후 어느 모임에서 가볍게 한 잔 걸친 듯했다. 여자의 남편이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선 그가 작업하는 것을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다가 말을 걸어왔다. 술기운 때문인지 목소리엔 흥이 묻어났다.

“우리 예전에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멋쩍게 웃었고 여자는 슬그머니 안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스위치를 내리자 거실이 어둑해졌다. 열린 안방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여자의 남편이 거실을 밝게 하려고 안방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여자는 침대 끝에 우두커니 걸쳐 앉아 있었다. 그는 헤드랜턴을 끼고 사다리를 올라갔다. 여자의 남편은 그에게 낯이 익다면서 고향부터 시작해서 학교, 군대, 예전 직장까지 하나씩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의 공통점은 없었다.

“아마도 전생에 만난 모양입니다. 혹시 부부? 하하하.”

여자의 남편이 사다리 아래서 낡은 전등커버를 받아주며 농을 던졌다. 그는 손등으로 연신 이마를 훔쳤다. 4월의 저녁이라서 날이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여자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땀을 흘렸다. 사다리 위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사를 풀 때 땀이 따갑게 눈으로 들어가 일하기가 고역이었다. 커넥터에 연결된 선을 분리시키고 고정쇠의 나사못을 모두 풀었다. 그리고 다시 새 전등 고정쇠를 전동드릴로 천정에 단단히 박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장 등박스 안쪽 각재목이 말썽이었다. 천정 보드판 안쪽에서 지지대 역할을 하는 목재가 약해서 전등 무게를 제대로 지탱해주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설치했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전등이 그대로 방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단단하게 설치하려고 드릴로 박았지만 약하고 헐거운 느낌은 여전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 가게까지 가서 굵은 각재목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 등박스 보드 안쪽에 덧대고 고정쇠를 박기 시작했다. 먼지가 날리면서 그의 얼굴에 떨어졌다. 손을 위로 올리고 계속 일을 하자니 팔이 저리면서 어깨까지 결렸다. 마치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그는 전등 본체를 고정쇠에 끼워 단단히 고정시키고 커버를 씌웠다. 작업이 끝났다. 여자의 남편이 스위치를 올렸고 실내가 환해졌다. 먼지를 뒤집어쓴 그는 눈과 목이 따갑고 까끌까끌했다. 화장실에서 얼굴이라도 대충 씻으려고 거실 한쪽 문을 열었을 때였다.

“거긴 안돼요!”

갑자기 안방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그는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문손잡이를 잡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가 열었던 곳은 화장실이 아니라 유아용품으로 가득한 방이었다. 바구니엔 젖병과 기저귀가 있었고 유모차와 아기욕조도 있었다. 여자는 그가 열었던 방문을 세게 닫으면서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남의 집에서 방문을 함부로 열면 어떡해요?”

“미안합니다.” 그가 말했다.

“모르고 한 거잖아.” 여자의 남편이 말했다.

“그러니까 조심해야죠. 저 사람은 항상 저런 식이라니까요.”

여자가 자신의 내뱉은 말에 놀랐는지 입을 꾹 다물고는 남편과 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자의 남편도 두 사람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당신, 이 아저씨 알아?”

“……네…… 알아요……”

그는 뒤로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여자는 뭔가 단단히 벼른 듯한 표정이었고, 여자의 남편은 이제 호기심에서 탐색의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아는 사이야?”

“……”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마침내 여자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셔터맨이잖아요.”

귓불까지 빨개진 그는 눈이 뻑뻑한 것도 잊고 서둘러 공구박스에 연장들을 담기 시작했다.

“이해하십시오. 아내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는 무심코 여자의 호리호리한 몸매로 눈길을 던졌다. 다시 들어가려다 만 방문을 거쳐 벽에 걸린 가족사진으로 시선을 옮겼고, 마침내 여자의 절망 섞인 분노를 이해했다. 여자의 남편이 아까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그에게 다시 말을 붙여왔다.

“선생님은 아이가 몇인가요?”

“아들 하나입니다.”

“아들이니 아버지를 닮았겠네요. 그렇죠? 저 사람이 언젠가 나한테 그랬어요. 부모 자식 간에는 8천겁의 연이 쌓아야 한다고요…… 8천겁……”

그는 여자의 남편이 갑자기 왜 자신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비록 뭔가에 반항하듯 친자확인을 하려했으나 자신이 자폐아이를 볼 때 한 동안 느꼈던 감정, 어쩔 수 없는 생(生)에 대한 자조와 수긍 단계로까지 여자의 남편도 접어드는 듯했다. 그는 장비를 다 챙겼고 이제 이 집에서 나가는 일만 남았다. 그는 앞치마를 두른 채 걸레를 들고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뭐가요?” 여자는 사과하는 그가 생뚱맞다는 듯이 대꾸했다.

“……”

그는 입술을 떠듬거렸으나 결국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뒤돌아보았다. 여자가 무릎을 꿇은 채 방안의 먼지들, 그가 남긴 발자국들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는 차안에 가만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둘레길 공원입구까지 왔지만 선뜻 차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뒷좌석에서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계속 ‘드드드’ 소리를 내고, 아내는 달램과 으름장이 뒤섞인 목소리로 ‘안 돼’ 하면서 아이의 양손을 붙들고 있다. 모자의 신경전을 룸미러로 가만히 지켜보던 그는 이 나들이가 후회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저 무심한 거리에 반발심을 느낀 나머지 어서 밖으로 나가서 여느 가족들처럼 봄을 만끽하고 싶었다. 주차장으로 버스 한 대가 들어오더니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을 쏟아냈고, 둘레길은 상춘객들이 점점 많아져 부산스러웠다. 다시 룸미러를 한번 쳐다본 그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기어이 차문을 열었다.

주차장의 시선들이 순식간에 아이에게로 쏠렸다.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아이라는 걸 알고는 점잖게 고개를 돌리지만 짐짓 잔인한 호기심을 몰래 숨긴 채 계속 힐끗거리는 것을. 저만치 떨어진 사람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한참동안 뚫어지게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는 아이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그러고는 과자 부스러기처럼 몸에 묻은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씩 떨어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전륜사(轉輪寺) 2km. 푯말을 지나쳐 얼마쯤 걷자 하얀 빛깔들이 장벽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벚꽃이었다. 그는 따사로운 봄 햇살과 흐드러진 벚꽃들의 일렁임 속에서 좀 멍해졌다. 몸마저 나른해지면서 언젠가 어릴 적 자신도 가족나들이 나온 것을 떠올렸고, 그리하여 지금은 자신이 아들 손을 잡고 있는 게 아니라 부모 손을 잡고 아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한편 그때도 꼭 이런 날 이런 길이었다고 여겼는데 또렷하지 않는 조각난 봄의 기억들 때문인지, 지금 둘레길을 걷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거대한 바위산 둘레를 돈 것 같은 환영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쩌면 전생에서부터. 정신을 차린 그가 아이를 내려다보고는 놀랐다.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바위산이 닳고 닳아 작아진 돌멩이 같았던 것이다. 사람들 눈 속에 억겁의 흔적이 있다는 걸 신기해하면서 그는 아이 손을 슬며시 놨다. 그러자 아이가 앞으로 뛰어갔고, 그는 행여 무슨 일이 터질까봐 얼른 아이를 뒤쫓았다. 다행히 침을 뱉는다든지 남의 물건을 빼앗는 소동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가 일렁이는 벚꽃을 올려다보다가 나무에 손을 올리면서 ‘드드드’ 소리를 내뱉었다. 그와 아내는 잠시 동안 신이 난 듯한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내가 물었다.

“‘등’이라고 하는 것 같아.”

아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정말이었다. 아이는 스위치를 켜기라도 하듯이 벚나무에 손을 얹고 까닥거렸는데, 그 자잘한 눈부신 꽃잎들은 꼬마전구들을 한꺼번에 펼쳐 밝혀놓은 듯했다. 조금 떨어진 가지 끝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원형등들이 달려 있었고, 저만치 멀리 일렬로 늘어진 벚꽃들은 연등같이 줄줄이 절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시 보니 순백의 그 하얀 것들은 영가등 행렬 같아서 그는 괜히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그땐 왜 그랬을까. 바람이 불자 꽃잎들이 무수히 휘날리면서 떨어졌고, 길 한쪽엔 벌써 져버린 꽃잎들이 눈처럼 하얗게 쌓여 있었다. 그는 흩뿌려지는 꽃잎들 아래서 좀처럼 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내가 그만 가자고 재촉하는데도 ‘드드드!’ 하는 아이 옆에서, 자신도 ‘어!어!어!’ 외마디 소리를 연달아 쏟아내며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안타깝게 올려다보았다.

꽃잎들이 뜯겨나가기 직전 일제히 몸을 떠는 찰나, 저기 저 환한 비명들. 등이 시리다.

소설 당선소감 / 김영민

김영민
궁극의 한점을 찾아가는 길
여백의 울림을 담고 있기를

초원에 사는 사람들의 집을 ‘게르’라고 부른다지. 내일은 떠나야하므로 바람의 넋에 짐승의 숨결을 더해 잠시 세운 천막. 찾아다니는 그 풀처럼 가벼워지는 게 내일 떠날 자의 미덕이리라. 나도 그랬다.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심지어 어느 곳에서 새로 시작하는 날에도 숫자만 가득해서 불온하기 그지없는 달력을 보면서 언제쯤 떠나게 될까 재보기도 했다. 정말 가야할 곳은 따로 있다는 듯이.

지나고 보니 빨리 떠나려고 했으나 늦게까지 미적거릴 때도 있었고,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일찍 헤어진 것들도 있었다. 어쩌면 그 불협화음의 인력들이 활자 속으로 빠져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신묘하게 느껴지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밤하늘의 별이고, 둘째는 바둑이며, 셋째는 부처님 말씀이다. 멀고 깊고 그윽해서 다다르기 어려운. 헛헛한 지난 어떤 시절엔 소설책보다 이 셋 사이를 오가며 빠져들기도 했는데, 내겐 셋이 하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궁극의 한 점, 모두가 그것을 찾아가는 길처럼 여겨진다. 소설도 그러하리라. 허구이지만 그 안을 따라 들어가 보면 결국엔 또 다른 나와 마주하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무참해진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연과 연 사이, 그 강물 같은 여백으로 사람들 마음을 싣고 너끈히 한 세월 흘러서 어디 햇살 좋은 풀밭에 내려놓는 그런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를 쓰기엔 내 육식(六識)이 너무 탁하다…… 그래서 결국엔 시를 포기했지만 내 소설이 시가 가지고 있는 그 여백의 울림을 담고 있기를 늘 소망한다.

소년을 데리고 서점에 가서 딱 세 권만 고르게 했던 중년남자, 아버지께서 지금은 쇠해져 편찮으시다. 그래도 기뻐하시겠다. 광주대 문창과 선생님들과 소행성 B612 박상우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부족한 작품을 뽑아서 다시 가야할 곳을 넌지시 알려주신 한승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꽤나 늦었다. 좀 더 채비를 서둘러야겠다.

소설부문 심사평 / 한승원 소설가

한승원 소설가
아픈 실존 통해 번뇌와
미망을 밝혀주는 등불

소설작품은 무엇보다 먼저 재미있어야 하고, 읽은 다음 슬프면서도 찬란한 감동이 있어야 하고,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향기롭게 승화되어야 하고, 각성을 통한 인간의 구원을 암시해주어야 한다. 각성을 통한 구원은 종교적인 몫이 있고 문학적인 몫이 있다.

음모된 작품들 중 ‘이사’, ‘당신의 계절’, ‘새끼’, ‘마실 여행’, ‘등’, ‘새의 귀환’, ‘맨드라미’ 등을 본심에 올리고 깊이 읽었다. ‘이사’ ‘당신의 계절’ ‘마실 여행’ ‘새끼’는 소설문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문장의 밀도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입담에서, 냉철한 섬세함과 형상화의 능력에서, 주제를 도출해내는 구성에서, 삶의 무게에서 볼 때, ‘새의 귀환’ ‘맨드라미’ ‘등’이 가장 낫다고 생각되어 다시 깊이 읽었다. ‘새의 귀환’은 설정이 좋지만 끝부분이 작위적이라는 점 때문에 제외되었다. ‘맨드라미’는 늙은 창녀의 슬픈 실존이 가슴 아프게 했지만 무게에서 ‘등’보다는 못하다고 생각됐다.

신춘문예 소설심사는 모래밭에서 보석을 찾아내기이고, 보석 무더기 가운데서 가장 향기롭고 찬란한 슬픔의 보석을 가려내는 일이다. ‘등’은 아픈 실존을 통해 번뇌와 미망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이 작가는 업장과 고뇌로 인한 갈등대립과 각성에 대하여, 문장쓰기와 주제 도출하는 법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이다. “뜯겨지는 직전 꽃잎들이 일제히 몸을 떠는 찰나, 저기 저 환한 비명들, 등이 시리다.” 이 시 같은 결말의 문장은 독자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좋은 작품을 뽑게 되어 행복하다. 앞으로도 더 냉철하면서도 섬세하게, 참담한 인간의 삶을 살피고 많은 공부와 더불어 명작을 써내주기 바란다. 지금은 불교적인 성찰이 전실하게 필요한 정글 같은 자본주의 세상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영민 삽화=용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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