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 소멸하는 마음으로 수용자에 부처님가르침 전해”

서울구치소 불심회 회원들. 김은현, 김재현, 이종호, 김태기, 윤주성, 김행규, 김완식, 이남수, 이석우, 이경숙 법우.(사진 뒷줄부터 시계방향) 뒤로 보이는 나무는 불심회 회원들이 창립 당시 조경한 것으로, 30년이 지나 아름드리나무가 됐다.

서울구치소 불심회(회장 김행규)가 이립(而立)이 됐다. 지금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있던 구치소가 1987년 의왕으로 이전한 뒤 30년, 창립 회원들은 현직에서 물러나고, 바통을 이어받은 후배법우들은 재창립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난 5월25일 서울구치소에서 불심회 회원들을 만났다.

지난겨울 서울 광화문이 ‘핫플레이스’였다면 요즘엔 그 중심이 서울구치소로 옮겨갔다.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구속된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 등이 이곳서 재판을 받고 있다. 구치소 앞에서는 연일 박사모 집회가 이어지면서, 교정공무원들은 날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일반 공무원들과 달리 교정직은 제복을 입고, 구치소나 교도소 같이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일단 근무시간에는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고,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서도 안 된다. 또 만나는 사람도 다르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 달리 교정교화 시설인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경찰서와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걸러지지 않아 마지막까지 온 이들이다. 구속영장이 집행되면 곧바로 구치소로 와 판결을 받을 때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2년까지 지내다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로 이감된다. 미결수들과 형을 확정 받아 구치소에서 징역을 사는 기결수 외에 사형수도 서울구치소에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가 됐지만, 사형수는 엄연히 존재한다.

수용자들을 상담하고 교화하는 역할을 스님이나 포교사 같은 교정위원들이 한다. 그러나 법문을 듣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결국 일상을 지켜보는 교정공무원들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사람부터 흉악범, 사형수까지 만나야 하는 게 일이다 보니 위안이 절실할 때가 많다. 불심회가 창립한 배경이기도 하다.

서울구치소는 3000여 명을 수용하는 교정교화 시설이다. 불교를 믿는 교정공무원들이 중심이 돼 30년 전인 1987년 6월1일 서울 대원정사에서 불심회 창립법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월례법회와 수계법회 성지순례 등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또 수용자들에게 불교신문이나 불서를 보시하는 것은 물론 불우수용자들에게 영치금은 물론이고 양말 비누 속옷 등 생필품을 사주는 등 나눔을 실천했다. 불심회 직원자녀와 불우수용자 자녀 후원을 위해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1989년에는 이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황량한 서울구치소에 나무를 심기도 했다. 회원들은 40여 일에 걸쳐 목백합 등 22종 묘목 3493그루를 청사와 민원실, 도로변 등에 심었는데 그 때 심은 묘목들은 지금 아름드리나무가 됐다. 1990년대 후반에는 토요일마다 목동 정광사에서 교리와 목탁 집전을 배웠다. 안성 도피안사 주지 송암스님이 교육을 담당했는데, 당시 이남수 회장은 사비를 털어 회원들에게 목탁을 하나 씩 선물해 집전을 배우도록 독려했다. 그 덕에 서울구치소에서 6기 포교사 6명이 배출되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여줬다.

지난 2009년 정년퇴직한 이남수 전 불심회장도 모처럼 후배들을 만나러 이날 서울구치소를 방문했다. 그는 1988년 서울구치소로 발령받아 와서 퇴직할 때까지 20여 년간 불교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 중 10년은 회장을 맡아 이끌어온 그는 불심회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업장 소멸하는 심정으로 교정공무원 생활을 했다. “징벌사동에 일할 때는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다”며 “잠도 안자고 수용자들과 싸우는 것은 물론 바늘을 삼키거나 플라스틱을 날카롭게 벼려 눈을 찌르겠다고 자해하는 등 힘들어 하는 수용자를 도와줌으로써 복을 짓는다고 스스로를 달랬다”고 한다. 사천왕의 권속인 나찰처럼 부처님 세계를 외호한다는 심정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또 감옥에서 힘들어 하는 수용자들에게 ‘여러분이 만든 조건 때문에 왔으니까 원인을 해결하려면 마음을 바꿔야 한다’며 불서를 권유해 불연을 맺어줬다.

한 때는 150여 명에 달하는 회원으로 북적일 때도 있었지만 요즘엔 45명 회원이 활동 중이다. 퇴직과 잦은 인사이동으로 회원 수가 예전 같지 않다. 4교대 근무로 전체 회원이 한 자리에 모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은 숫자이지만 그래도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청계사에서 모여 법회를 하고, 연 2회 성지순례를 다녀온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청계사가 운영하는 지적장애인 시설 녹향원에 가서 봉사한다.

불심회 도반들끼리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면서 산다. 수용자 중에 가족도 없고 형편이 넉넉지 않아 영치금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수용사동에서 근무하다보면 어려운 수용자들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불심회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영치금을 후원받아서 도와주는 것이다.

수용자 상담과 사형수 교화를 담당해온 김은현(54)계장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소위 흉악범이라 불리는 수용자들을 만나거나 사형수를 만나 상담하는 일에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며 “가끔 화를 못 참기도 하고 욕심이 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내려놓으라는 부처님 가르침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탐진치를 내려놓고 수용자들 바라보면 마음 넓어지고 내 자신이 달라진다”며 불심회 활동이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음을 전했다. 서울구치소 경비교도대에서 복무하면서 불교모임 ‘구도회’에 활동한 게 인연이 돼 교정공무원이 된 이석우(36)씨는 “수용자들에게 막연히 착하게 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법을 토대로 상담을 하면 잘 공감한다”며 직장 생활에서 불교 영향이 적지 않다고 했다.

직전 회장을 지내고, 지난해 포교사 품수를 받은 윤주성(50)씨는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고,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수용자가 된 사람들을 교화하는 데 부처님가르침은 정말 중요하다”며 “수용자들에게 부처님가르침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수계법회와 스님 초청법문 자리를 자주 마련해 불심회 회원들의 교육과 신행활동이 보다 활성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회장 소임을 맡고 있는 김태기(52)씨는 “초창기 성운스님, 지원스님이 자주 와서 법문해주고, 성지순례를 다니며 스님 법문을 들을 때는 불자 되길 잘 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신행활동이 삶에 큰 위로가 된다고 했다.

김행규(52)회장은 “교정교화 일을 하면서 업장을 소멸한다는 마음으로 후배들과 열심히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인연이 있어 교정교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더니 어려운 수용자들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결론이 내려지더라”며 “수용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또 오는 14일 오후6시30분 인덕원 타워컨벤션웨딩에서 기념법회를 열어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는 김 회장은 “불심회가 30년간 활동하는데 지원해준 청게사 주지 성행스님과 선우정사 주지 선타스님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재창립 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신행활동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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