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해제 앞두고 만난 쌍계총림 방장 고산스님

동안거 해제일인 14일 전국 98개 선원 2200 여명의 스님들이 정진을 끝내고 산문을 나선다. 해제를 앞둔 스님들은 떠나기 전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다음 안거 때 선방에 올 스님들을 위해 겨우내 덮었던 이불과 좌복을 빨아 널고, 선방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해제를 하루 앞둔 오늘(2월13일) 쌍계총림 쌍계사에서 방장 고산스님을 만났다. 고산스님은 또 다시 걸망을 지고 산문을 나서는 운수납자들에게 “수행자는 무애해탈인”이라며 “다른 생각을 가지면 수행하는 데 방해만 된다. 산철에 선지식을 찾아 의심나는 점을 물어볼지언정 좋은 거 구하려 애쓰지 말고 세상 사람들 춤추고 노는데 끄달리지 마라”고 당부했다.

쌍계총림 방장 고산스님

지난해 동화사, 범어사와 함께 총림으로 지정된 쌍계총림 쌍계사는 벽송지엄, 부용영관, 서산휴정, 부휴선수스님 등의 수행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 금당선원은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김대비스님과 삼법스님이 중국으로 유학갔다 육조 혜능스님의 두상을 모셔와 사찰을 세운 게 지금 금당 자리다. 눈이 뒤덥힌 겨울 산에 유일하게 칡꽃이 피어 있어서 그곳에 사찰을 건립했다고 한다. 금당에는 부처님이 아닌 육조정상이 봉안된 탑이 모셔져 있고, 추사 김정희 친필의 ‘세계일화조종육엽(世界一花祖宗六葉)’과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금당을 좌우로 수좌 스님들이 수행하는 동방장과 서방장이 있다. 고산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았을 때 복원한 것이다. 이번 동안거에는 방장 고산스님을 위시로, 선덕 영조스님과 열중 현각스님 등 17명이 함께 정진했다. 임제할 덕상방이 있듯 금당선원에는 고산가풍이 있다. “불식촌음이라고, 잠깐 시간도 쉬지 않는 것이 고산가풍”이라고 소개한 스님은 “정진하는 사람은 24시간 하고 염불기도도 24시간 하고 한 소식 할 때까지 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고산가풍을 잇는 수행공간이 서방장이다. 동방장이 하루 8시간 정해진 시간에 수행하는 곳이라면, 서방장은 24시간 정진할 수 있는 곳이다. 고산스님이 서방장을 복원한 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40 여년간 그곳은 24시간 열린 수행공간이다. 이번 겨울에는 한 명의 스님이 서방장에서 3개월간 잘 때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을 했다.

서방장에서 정진하는 스님들. 사진 오른쪽부터 금당선원 열중 각현스님, 방장 고산스님, 선덕 영조스님.

서방장이 수행만 하는 도량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서방장에서 누구든지 누워서 잠을 자면 화엄신장이 발로 밟아 가위에 눌린다”는 전설 때문이다. 고산스님이 전하는 일화는 이렇다. 예전에 범어사에 사천왕이란 별호를 가진 스님이 있었는데, 서방장 화엄신장에 대한 얘길 듣고 어림없는 얘기라며 서방장에 큰 대자로 누워 잠을 청했다고 한다. 고산스님이 밖에서 화단을 정리하면서 지켜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스님이 가위에 눌려 꼼짝 못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놔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서방장에 들어가 자는 스님을 툭툭 차서 깨우니까 눈을 뜨고 일어나면서 화엄신장이 있긴 있다며 공감을 했다는 것이다. “누구든 의심나면 들어가 누워봐라. 잠이 들었다 하면 화엄신장에 밟힌다”고 말한 고산스님은 “그 이후엔 그런 소리가 없는데 겁나서 아무도 눕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산철엔 선지식 만나 의심나는 거 묻고
3개월 간 공부한 것 점검 받아야지
세상 사람들 노는 데 끄달리면 안돼

잠시도 쉬지 않는 게 고산가풍
한 소식 할 때까지 밀어붙여야

“무슨 일이든 하나라도 잡으면 쉬지 말고 성취할 때까지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한 스님은 화두를 드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근기에는 간화선이 제일이다. 간화선 말고 다른 것 하라면 무기공에 떨어져 멍하니 앉아 있어 공부도 못하고 세월만 보낸다”는 스님은 “뭐든 의심되는 거 하나 가지고 깨닫는 게 간화선”이라고 강조했다.

여러 화두를 일거하던 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왜 없다고 했는지, 왜 똥막대기를 부처라고 했을까 의심되지 않냐”고 물으며 “오늘 아침 밥을 먹었는데 유난히 맛있다. 이것도 화두가 될 수 있다. 왜 맛이 있었느냐를 의심하면 화두다. 모든지 자기 의심되면 화두”라고 설명했다. 화두를 통한 깨침은 깜깜하던 한 밤중에 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잡히는 물건을 뭘까 만져보고 계속 생각하는게 화두 타파하는 경지”라며 “그러다 누군가 불을 켜면 금방 알아 맞출 수 있다. 그 불빛이 선지식 법문과 같다. 의문점이 있어 계속 고민하고 타파하는 게 간화선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3개월간 겨우내 본지풍광을 밝히기 위해 침잠했을 스님들의 눈은 이제 세상을 향하고 있다. 해제는 수행의 쉼이 아니라 실천이기 때문이다. 서산대사가 <선가귀감>에서 출가의 본뜻을 일러 편안함, 배부름, 명예와 이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끊고 부처님 혜명을 이어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수좌 스님들이 금당선원 열중 각현스님에게 인사하고 있다.

고산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내가 먼저 깨달아서 남을 가르친다는 뜻”이라며 “자기가 깨닫지 못하고 남을 가르치는 것은 한 봉사가 다른 봉사를 이끌어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자각각타 각행원만이라고 한다. 내가 먼저 깨닫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고 각행원만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게 보살도를 행하는 것은 수행자의 근본 취지”라며 “언제든지 내가 건너보고 어떻게 가야 쉽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건너가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산문을 나서는 스님들에게 스님은 “해제란 석 달 동안 공부한 내용을 선지식을 찾아가 물어보러 가는 것”이라며 “수행하는 사람은 계정혜 삼학을 갖춰야 한다. 계행이 청정하고 지혜를 갖추면 선정에 들 수 있다. 해제를 하더라도 계정혜 삼학을 떠나서 살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한국사회의 영원한 화두인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내렸다. 스님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마음의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을 꼽았다. “한 가정이 화목해 평화를 찾으려면 마음에 쌓인 담장부터 헐어야 한다. 부인은 부인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들딸대로 전신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니 가정의 화합이 오겠냐”고 반문한 스님은 남북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북한은 북한대로 자기욕심 차리고 남한은 남한대로 욕심 차리려고 대화한들 무엇이 풀리겠냐”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대화를 해야 통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끝이 없다”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욕심 버리고 대화하면 남북통일 금방 된다. 이산가족만 만나는 것 아니다. 통일은 금방이다”고 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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