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당 혜원대종사 원적…법랍 74년 세수 88세
3월23일 오전8시46분 쌍계총림 방장실서
영결식 3월27일 오전10시 쌍계사 도원암 앞
분향소 쌍계사 팔영루, 쌍계사 연화대서 다비식 엄수

고산당 혜원대종사가 23일 오전 8시46분 원적에 들었다.
고산당 혜원대종사가 3월23일 오전8시46분 원적에 들었다.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당 혜원대종사가 3월23일 오전8시46분 경내 쌍계총림 방장실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랍 74년, 세수 88세. 

고산스님 분향소는 쌍계사 팔영루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종단장 5일장으로 3월27일까지 진행된다.

영결식은 3월27일 오전10시 쌍계사 도원암 앞에서 거행되며, 같은 날 쌍계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엄수될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고산스님은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1948년에 사미계를, 1956년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 쌍계사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장,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4년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쌍계사 방장으로 후학양성에 앞장섰으며, 조계종 원로의원과 전계대화상, 법계위원장 소임을 맡아 종단 발전 및 안정에도 힘썼다.

고산스님은 선교율 모든 분야에서 정진했으며 두각을 나타낸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으로 꼽힌다. 1954년 범어사에서 첫 안거를 성만한 이후로 20여 년 간 해인사 청암사 등 전국 선원을 돌며 화두를 참구했으며, 지리산 금당선원에서 크게 깨달았다.

경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강백(講伯)으로서도 일가를 이뤘다. 고봉스님으로부터 전강 받아 〈대승기신론 강의〉, 〈반야심경강의〉와 같은 책을 펴냈으며 청암사승가대학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동산스님, 석암스님으로 이어지는 율맥을 이어받은 율사이기도 하다.

수행뿐만 아니라 행정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1998년 12월 제29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돼 분규 이후 혼란했던 종단상황을 수습했다.

1975년 이후 맨손으로 현재의 쌍계사를 일궜다. 쌍계사 주지로 부임한 뒤 팔상전, 청학루 전면 교체 보수, 해행료(요사채),범종루 신축, 선원인 동서방장 건물 복원, 대웅전 수리 등 많은 불사를 거쳐 쌍계사를 현재의 대가람으로 자리매김케 했다. 그럼에도 스님은 겸손하게 “단지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불제자라면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 행동을 모두 익히고 실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193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고산스님은 1945년 입산 출가해 3년간 행자 생활 뒤 1948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동산스님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스님은 행자 시절 두 차례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을 외우다 어머니가 나타나 와락 끌어 안았는데, 깨어보니 가슴에 품은 것은 관세음보살상이었다는 일화도 있다. 

고산스님은 임종게를 통해 사부대중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했다.

“春來萬像生躍動(춘래만상생약동) 
秋來收藏待次期(추래수장대차기) 
我於一生幻人事(아어일생환인사) 
今朝收攝歸故里(금조수섭귀고리)

봄이 오니 만상이 약동하고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 
내 평생 인사(人事)가 꿈만 같은데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

 

고산스님 임종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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