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양양 낙산사와 홍련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 양양 낙산사와 홍련암
  •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 승인 2021.01.17 22:58
  • 호수 3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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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힘들어요? “관세음보살” 불러보세요

3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유명
삼국유사 ‘조신의 꿈’ 이야기
이광수 ‘꿈’으로 재탄생된 곳

“어찌 나의 자유를 구속하랴
세상살이 다만 내 뜻 따를 뿐
그대는 모름지기 그대의 법을”

참선 예불하다 파직당한 허균
‘문파관작’ 詩로 소회 드러내
의상대사가 관음굴에서 관음보살의 현신인 파랑새를 보았다는 홍련암. 양양 낙산사 대화재 때도 화마가 비켜간 신령스런 곳이다.
의상대사가 관음굴에서 관음보살의 현신인 파랑새를 보았다는 홍련암. 양양 낙산사 대화재 때도 화마가 비켜간 신령스런 곳이다.

삶의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쓴 수많은 시간 속의 갈등을 풀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닷바람을 쐬며 나무그늘 아래서 홀로 생각에 잠기며 욕망을 덜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양양 낙산사와 홍련암이다.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1년(671)에 창건하였다고 <삼국유사>에서 전해진다. 낙산이란 보타락가(補陀洛迦, potalaka)의 준말로, 관세음보살은 바다근처 험난한 바위가 가파르게 솟아 있는 곳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낙산사와 홍련암은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사찰 중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옛날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라는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조신의 꿈 이야기’가 이광수의 <꿈>으로 재탄생된 사찰이기도 하다. 

해변 주차장 뒷산을 올라 솔숲을 지나 조용한 길을 오르면 낙산사의 일주문 격인 홍예문이 성의 누각처럼 나타난다. 석문인 홍예문은 위는 누각이고 그 아래는 무지개 모양의 돌문으로 세조 13년(1467)에 축조되었다. 화강석 열세 개를 두 줄로 쌓아 둥근 문을 만들었는데, 이는 주변 열세 개 고을이 합심하여 낙산사 불사에 참여한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 누각은 새로 짓고 석문은 해체 복원하였다. 
 

지국천왕 발밑 탐관오리가 눈길을 끈다. 이에 얽힌 영험담이 궁금해진다.
지국천왕 발밑 탐관오리가 눈길을 끈다. 이에 얽힌 영험담이 궁금해진다.

사천왕 발밑 보셨어요?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오르면 사천왕문이 나오는데 낙산사 대화재 시 화마가 피해간 곳으로 유명하다. 하늘나라에 세워진 문이라서 그럴까? 사천왕의 영험함을 알 것 같다. 사천왕을 잘 살펴보면 재미난 것을 볼 수 있다. 지국천왕 발밑에는 관모를 쓴 관리를 지국천왕이 비파를 타며 발장단으로 지근지근 밟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그리고 광목천왕의 발밑에는 코끼리 탈을 쓰고 새의 부리 형상을 한 생령좌가 뾰족한 대못을 들어 광목천왕이 밟기만 기다리고 있어 재미있다.

이런 조형이 나오게 된 배경은 세조와 예종이 하사한 땅을 유생과 관리들이 빼앗으려고 하자 낙산사 스님들은 뭔가 수를 내어야 했다. 사천왕께 일러바쳐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려 했을까?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할 관리들이 제 잇속만 차리고 백성을 수탈하니 어쩌면 사천왕의 발밑에서 고통을 받는 일이 당연한 인과응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권력자에 대한 백성들의 반격을 나타낸 것일까? ‘에잇 엿 먹어봐라!’ 대못에 찔리길 기다리는 약자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담겨 있어 재미있다.

낙산사는 2005년 대화재 이후 온 국민의 관심과 격려로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 그림을 참고하여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그 첫 번째가 태양을 손님맞이 하듯 공손히 맞는 누각이라는 뜻의 빈일루이다. 누각에서는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남아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태워버리라는 의미이다. 누각의 네 기둥은 화재의 악몽을 잊지 말고 불조심 하자는 의미에서 당시 불에 탄 소나무를 손질하여 사용하였다. 빈일루를 지나면 석축 위 응향각은 좌우로 행랑채가 연결되어 궁궐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은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께 향을 올리겠다는 마음을 내는 곳이다.
 

‘관세음보살의 궁전’으로 불리는 낙산사 원통보전 앞에 이르면 화마의 뜨거움도 견뎌낸 칠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관세음보살의 궁전’으로 불리는 낙산사 원통보전 앞에 이르면 화마의 뜨거움도 견뎌낸 칠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화마도 견뎌낸 칠층석탑

곧장 계단을 올라 대성문을 지나 관세음보살의 궁전 원통보전 앞에 이르면 화마의 뜨거움도 견뎌낸 칠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세조 13년(1467)에 세워진 석탑으로 강릉 심복사 석탑 양식을 계승한 탑이다. 깨어진 칠층석탑을 바라보면 백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긴 홍길동전의 주인공 허균이 생각난다. 강릉이 고향인 그는 20대 후반 약 3년을 낙산사에서 지내기도 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신분은 태어날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자신의 행동에 따라 귀천이 나누어진다”고 말씀하셨다. 허균의 넓은 학식과 뛰어난 문장은 불교의 자비와 평등사상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사대부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모든 것은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그의 불교적인 인생관은 급기야 <홍길동전>을 낳았고,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꿔왔다. 

허균은 삼척부사로 재직할 당시, 참선과 예불을 한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파직 당했다. 그는 파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파관작(聞罷官作)’이라는 시를 지어 당당히 자신의 소회를 드러냈다. “유교가 어찌 나의 자유를 구속하랴(禮敎寧拘放)/ 세상살이 다만 내 뜻에 따를 뿐(浮沈只任情)/ 그대는 모름지기 그대의 법을 사용하라(君須用君法)/ 나는 스스로 나의 삶을 살리라(吾自達吾生).” 참으로 불교적인 시다. 허균은 역모사건의 누명을 쓰고 형장에서 능지처참을 당하면서도 “나는 할 말 있다”고 소리쳤다. 허균의 영혼은 그의 호 ‘교산’처럼 교룡으로 다시 태어나 낙산사 대성문을 지키며 그가 꿈꾸는 평등과 자비로운 세상을 기다리고 있다. 
 

홍예문. 낙산사의 일주문 격으로 13개 화강석에 얽힌 불사 이야기가 전한다. 회재 후 해체 복원했다.
홍예문. 낙산사의 일주문 격으로 13개 화강석에 얽힌 불사 이야기가 전한다. 회재 후 해체 복원했다.

낙산사 주인공은 바로 당신? 

자! 이제는 낙산사의 주인공인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할 차례다. 전각 이름이 원통보전이다. 관세음보살은 듣는 것이 어느 보살보다도 뛰어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청각이 원통자재하다고 해서 원통교주, 원통대사라 한다. 관세음보살님의 청각은 아마 세계 최대의 우주 안테나인 골드스톤의 100만 배가 넘을 것이다. 그만큼 중생의 소리를 듣고 해결하는 최고의 권위자로 중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다. 

원통보전의 관세음보살님은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에서 모셔왔다고 전해진다. 모습은 두툼한 얼굴에 서린 기품과 나무랄 데 없이 균형 잡힌 비례감각, 전신을 휘감은 세련된 영락장식, 늘어뜨린 유려한 의복, 화려하고 섬세하게 꾸며진 보관 등 고려후기의 전통양식을 계승한 아름다운 관세음보살님이다. 조선시대 남효온은 금강산 가는 길에 낙산사를 참배하고 “관음전을 보았다. 관세음보살의 모습은 극히 정밀하고 교묘하여 마치 영혼이 들어 있는 듯하다”고 기록을 남겼다. 

다음은 관세음보살님께서 부처님의 사리를 건네주신 홍련암으로 가 보자. 의상대사가 관음굴에서 관음보살의 현신인 파랑새를 보았다는 홍련암은 낙산사 대화재 때도 화마가 범접을 하지 못한 신령스런 곳이다. 춘천부사 이현석이 1694에 지은 낙산사 해수관음 공중사리비명을 요약하면 “관음굴은 옛날에도 관세음보살께서 두 번이나 상서로움을 보이셨는데 지금 세 번 째 신이함이 일어났다.

관세음보살님을 개금하는 과정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방안에 가득하더니 갑자기 밝은 사리 한과가 탁자위에 떨어졌다. 석겸스님 등이 원을 세워 사리탑을 조성하여 사리를 봉안하였다. 부처님은 본래 말씀이 없는데 사리를 나타내어 분명함을 보이셨네. 사리 역시 빛을 머금고 글을 빌려 알리려 하네. 글은 사리지기 쉬운 것, 돌에 새겨 오랫동안 전하려 함이네”하였다. 

1683년 홍련암 관세음보살님의 개금불사 때 나타난 부처님의 사리는 1692년 해수관음공중사리탑에 모셨고, 2년 뒤 비를 세워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 2006년 사리탑 해체 때 부처님의 멸도 시 다비의 내용대로 동합, 은합, 금합, 사리병, 사리의 순으로 장엄되어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느낄 수 있었다.

가지면 가진 만큼 부족하고, 없으면 없는 만큼 불행하다고 느끼는 인간의 욕망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세상살이가 힘들 때 홀로 찾아가 해안가 절벽 낙산에 올라 관세음보살을 불러보자. 뭔가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해수관음상. 낙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곳이다.
해수관음상. 낙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곳이다.

※ 이 글은 유튜브 ‘불교신문TV’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필자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불교미술 석사과정을 마치고, 문화학자, 작가, 방송인, 한국문화해설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BBS불교방송 TV ‘재미있는 사찰 속 불교미술’ 진행했고 저서로는 <불교미술의 해학>, <사찰의 문과 다리> 등이 있다.

[불교신문3645호/2021년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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