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자현스님

올해 조계종에는 10년마다 1번씩 시행되는 승려분한신고가 있다. 분한신고란 쉽게 말해서 전체 조계종 승려에 대한 일제 정비라고 이해하면 된다.

분한신고에는 많은 서류가 첨부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단연 유언장이다. 조계종은 전체 스님들에게 사전 유언장을 받아서, 급작스러운 입적 시에 사찰재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한다.

그런데 유언장이라는 명칭이 주는 부담과,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는 재산에 대한 의지 때문에 이 부분에서 간혹 잡음이 발생하곤 한다. 살았을 때 기증하는 것이 아니라 입적 후에 환수되는 것임에도, 재산에 대한 집착은 평생의 승려들도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런데 516일 월정사에서 봉행된 탄허대종사 37주기 추모다례재에서는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탄허스님의 제자인 삼보스님(영월 법흥사 주지)이 스승의 유지인 불교교육불사에 사용해 달라고 평생의 재산인 30억을 쾌척했기 때문이다. 30억이라는 금액도 놀랍지만, 이 중 상당수는 사찰에서 조성된 것이 아니라 삼보스님의 개인적인 재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스님은 젊은 시절 월남전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추서 받았다. 이 때문에 매달 국가로부터 200만원 정도의 연금이 지급된다. 그런데 이 연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수십 년을 모아 은사스님의 뜻을 기리는 교육불사에 투척한 것이다.

탄허스님은 해방 후 혼란한 현실 속에서, 교육만이 불교와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역설하신 분이다. 실제로 스님께서는 2080권을 현토 번역했으며, 이로 인해 종교인 최초로 국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된다. 또 스님이 동국역경원의 총 책임자인 역장장 취임 때, “법당 100채를 짓는 것보다 스님들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신 일은 유명하다.

그런데 당시 처음 출가한 삼보스님이 이 말을 듣게 된다. 삼보스님은 1966년 탄허스님을 은사로 출가해서, 월정사에서 불교 경전을 수학하고 이후 동국대학교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학습하신 분이다.

탄허스님의 인재양성 노력과 교육불사에 매진하는 모습이 깊이 각인된 삼보스님은, 70세를 맞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판단 속에서 스승을 위한 행보에 나선 것이다. 재산이 있다고 기부가 가능한 것이 아니며, 재산이 많더라도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이런 점에서 일생을 모은 것을 스승의 뜻을 위해 일거에 떨치는 행동은 진정한 대장부만이 할 수 있는 참다운 일이다.

시한부 인생이라도 결단이 쉽지 않은데, 삼보스님은 아직도 화랑무공훈장의 기운이 남았는지 청춘처럼 정정하시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은사 스님을 모시는 참다운 자세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하기에 충분하다.

인도의 산치대탑이나 중국의 돈황과 운강석굴 등 세계적인 불교 유적에는 스님들의 보시 비중이 상당하다. 당시 스님들은 단순히 보시를 받는 대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가장 열정적인 실천자였던 것이다.

종단에서는 총무원장 스님께서 깃발을 높이 든 백만원력불사가 추진 중이다. 이런 뜻깊은 일에는 신도와 스님이 별개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삼보스님이 보여준 행보와 탄허스님을 모시는 방식은 이 시대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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