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오신 부처님] <34>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만나리 - 미해①
[사랑으로 오신 부처님] <34>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만나리 - 미해①
  • 조민기
  • 승인 2019.12.0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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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염주가 부인을 지켜줄 것입니다”
삽화=견동한
삽화=견동한

가족 상봉 

“미해야” 

“형님” 

눌지는 껑충 자란 막냇동생을 품에 안았다. 미해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눌지가 기억하는 미해의 마지막 모습은 어린아이였는데 늠름하고 아름다운 청년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형님이라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은지 콧날이 다 시큰해졌다. 장성한 세 아들을 보면서 보반 부인은 눈물을 쏟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족 상봉의 기쁨을 충분히 누린 뒤 미해가 입을 열었다.

“형님, 박제상을 다시 데려와야 합니다. 어서 돌아가서 박제상을 데려오지 않으면 왜국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네, 형님?”

눌지는 차마 미해의 간절한 눈빛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려울 것이다.”

눌지를 대신하여 옆에 있던 복호가 미해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듯 말했다.

“너를 돌려보낸 것만 해도 큰일이었다. 네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면, 왜국에서 박제상을 순순히 돌려보낼 리가 있겠느냐? 방비도 더욱 삼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미해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여기 있는 모두, 너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허나 지금은 우리의 힘이 약하니 방법이 없구나. 너를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천지신명께 감사한 마음이다.”

“형님께서는 그럼 박제상이 자신을 희생할 것을 알고도 제게 보내신 것입니까? 왜국으로 사람을 보내 그를 다시 데려올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입니까?”

눌지를 바라보는 미해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내가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죽기 전에 널 다시 한 번 꼭 보고 싶다고.”

분위기가 냉랭해지려는 차에 보반 부인이 나섰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보반 부인의 눈물 앞에 세 아들은 모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서라벌 제일의 미녀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던 보반 부인은 남편 내물 마립간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실성이 마립간에 올라 눌지를 핍박하고, 미해와 복호를 왜국과 고구려에 질자로 보내자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다. 언제 아들들이 타국에서 객사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다. 비단옷을 입고 비단 이불을 둘러도 잠이 오지 않았고 맛난 음식도 입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제 겨우 세 아들을 다시 만난 보반 부인은 감격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나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본 미해는 너무나 슬퍼졌다. 
 

박제상의 부인과 딸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던 미해는
박제상이 준 염주를 꺼내
치술부인에게 전해주었다

“헤어지기 전, 제상이
저에게 준 것입니다 
부인에게 드리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호랑이 눈처럼
까맣게 빛나는 염주를 본
복호와 보미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아도스님의 염주였기 때문…


치술 부인

기쁨과 슬픔의 눈물이 함께했던 가족 상봉이 끝난 뒤 미해는 기진맥진하여 눌지가 정해준 방으로 돌아왔다. 격한 감정을 쏟아낸 후라 기진맥진했다. 쓰러지듯 침상에 누운 미해의 품에서 염주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배에 오르기 전, 박제상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염주를 만지작거리다가 까무룩 잠이 든 미해는 밤이 깊어서야 깨어났다. 곤히 잠을 자고 나서인지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방 밖으로 나온 미해는 반쯤 차오른 달을 바라보았다. 왜국에 있을 때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달을 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기척을 내도 듣지 못하느냐?” 

갑자기 들려오는 눌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미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궁녀도 대동하지 않은 채 편한 옷을 입고 서 있는 눌지의 뒤로 복호와 처음 보인 여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형님”

“아무래도 오늘 밤은 우리 삼 형제 모두 쉽게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으니 술이나 치자꾸나.”

“달도 밝고 바람도 시원하니 마음을 나눌만한 사람과 술 한 잔 음미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밤입니다.”

입안에 향기를 머금은 듯한 매혹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미였다. 미해가 보미를 바라보자 복호의 얼굴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이 분은 너의 둘째 형수인 보미궁주란다.”

“축하드립니다, 형님. 혼인하셨군요.”

“얼마 되지 않았다. 보미궁주는 고구려에서 왔단다.”

“그렇습니까? 축하드립니다.”

미해의 목소리에는 놀라움 외에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 무심함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보미였다. 은은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도록 치장한 자신을 보고도 꿈쩍 않는 사내가 있을 줄을 몰랐다. 

“듣던 대로 미해 왕자께서는 참으로 고운 얼굴을 지니신 분이군요.”

미해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음을 확인한 보미는 복호에게 속삭였다. 

“그렇다오. 우리 세 형제 중 어머님의 미색을 가장 닮은 것이 미해였다오.”

“저분은 누구십니까?”

미해의 시선은 눌지의 뒤에 서 있는 두 여인에게 향했다.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보미와 달리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여인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고, 미해와 또래로 보이는 여인은 눈이 새빨갛게 부어있었다. 

“이 분은 박제상의 아내 치술 부인이다. 그리고 이쪽은 박제상의 딸 청아다.”

눌지가 한숨을 삼킨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해는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찌하여 박제상의 아내가 실직이 아닌 월성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해 왕자님을 뵙습니다. 마립간의 배려로 딸과 함께 궁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미해는 치술 부인과 청아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박제상은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치술 부인은 아기처럼 울음을 터트린 미해를 일으켜 세웠다.

“왕자님께 가기 전, 남편은 이미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했을 것입니다.”

청아는 꺽꺽거리며 울음을 쉬이 그치지 못하는 미해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저와 청아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왕자님께서도 잘 지내셔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치술 부인은 눈물을 삼키며 미해를 위로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던 미해는 품 안에서 박제상이 준 염주를 꺼내 치술부인에게 전해주었다.

“헤어지기 전, 제상이 저에게 준 것입니다. 부인에게 드리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호랑이의 눈처럼 까맣게 빛나는 염주를 본 복호와 보미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아도스님의 염주였기 때문이다. 

“받으십시오. 제가 신국에 무사히 도착하여 부인께 염주를 전한 것을 알면 제상도 기뻐할 것입니다. 이 염주가 제상을 대신하여 부인을 지켜줄 것입니다.”

치술부인은 염주를 떨리는 손으로 남편을 보듯 염주를 바라보았다. 박제상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뱃속이 뜨거워지면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참고 또 참았건만 한번 터져 나온 울음은 쉬이 그칠 수가 없었다.

“부인께서는 돌아가서 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청아야,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거라.”

눌지가 서둘러 자리를 파하자 복호는 아쉬움을 듬뿍 담은 눈으로 보미를 먼저 보냈다. 드디어 세 형제만 남았다. 

“나의 침소로 가자. 오랜만에 우리 셋이 함께 자자꾸나.”

세 형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눌지와 복호, 미해는 불도 켜지 않은 채 목소리를 낮춰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박제상의 부인이 왜 후궁의 복색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미해가 참았던 물음을 던졌다. 

“지금 치술 부인은 궁녀이자 나의 아내이다. 왜인들의 눈을 속이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제상은 왜국에 가기 전, 자신이 반역죄를 저질렀다는 소문을 내라고 했다. 그래야 왜인들을 속이고 널 데려올 수 있다며…”

“그런…”

“그의 말대로 소문을 내고, 그의 아내에게 ‘김씨’ 성을 내린 뒤 궁으로 들였다. 치술부인 때문에 박제상을 죽이려 한다고 믿게 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제상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알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쯤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치술 부인과 청아는 내가 거둘 것이다. 내 아내처럼, 내 자식처럼 아껴줄 것이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구나.” 

[불교신문3540호/2019년12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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