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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배 수행 끝에 '가볍게 살자' 발원했습니다"[불교신문이 만난 사람] 주윤식 제8교구 신도회장
  • 직지사=이경민 기자│사진=신재호 기자 
  • 승인 2019.01.1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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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식 신도회장은 지난해 중국 업체와 3000억 합작사업을 따내 화제가 된 대구 중견기업 ‘우진’ 대표이기도 하다. 단호한 말투, 카리스마 있는 눈빛이 영락없는 경영자로서의 그를 말해주지만 절집 이야기를 할 때는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가 묻어났다. 사진 신재호 기자

사업, 가정 문제로 힘들 때마다

도리사로 발걸음하며 평온 얻어

 

“내 인생이 곧 불교” 깨닫고

신도회장직 맡으며 ‘제2막’ 시작

“제8교구 스님들 노후 내가 책임”

70개 사찰 돌며 소통 앞장서

스스로 “역동적 삶이었다”고 한마디로 갈음한 30대,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이사 간 아파트 바로 옆 사찰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때만 해도 절에는 여자들만 가는 줄 알았다. 남자도 갈 수 있다는 말에 휴일에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아내를 따라 나선 길, 법당에 들어간 부인을 기다리던 그에게 스님 한 분이 다가왔다. “어쩌다 왔다”는 그의 말에 스님은 밥이나 먹고 가라 권했다. 두 번, 세 번 사찰에 발길 할 때마다 스님은 염주를 쥐어주고 직접 쓴 글씨를 건넸다. 자꾸 물건을 쥐어주는 탓에 “돈을 내야 하나?” 생각했지만 스님은 질문만 받았다. 불교와의 첫 인연이었다.

남에게는 말하지 못할 고민도 털어놓고 스님은 절에서 어떻게 사나 물으며 불연을 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절에 다니지 않았고 불교를 제대로 공부한 적 없으니 그저 안부를 묻고 맛있는 음식, 따뜻한 옷 한 벌 해드리며 정을 쌓았다. 어렵게 준 그 마음이 얼마지 않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돌아오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암과 싸우던 스님은 곁을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세상을 등졌다. 빼빼 마른 몸으로 사그라져가는 스님에게 “더 드시고 싶은 것 없냐” 허망한 물음만 외쳤다. 섭섭했고 서운했다. “내 무슨일이 있어도 다시는 스님과 인연 안 맺는다”고 수차례 다짐했다.

주윤식 제8교구 신도회장, 승보공양 운동 8개월 만에 후원자 1000여 명 모집. 지난해 4월, 신도 3000명이 하루 100원, 1년 3만6500원을 모아 ‘제8교구 스님들 노후만은 우리가 책임지자’ 제안하며 승보공양 운동을 시작한 아이디어 뱅크. 제8교구 내 김천, 구미, 상주, 문경, 예천 등 5개 시군 말사 70여 곳을 직접 돌며 교구 통합 성지순례단을 기획한 것도 그다. 예천 용문사에서 40명으로 시작한 성지순례단은 이제 100여 명 이상이 정기적 모임을 갖는 지역, 본말사, 말사별 소통 다리가 되고 있다. 구미 도리사에서 100일 10만배 정진도 혼자 이겨내며 스스로를 쉼 없이 가다듬어온 그가 지난 12일, 정작 “불교의 불자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주윤식 신도회장은 지난해 중국 업체와 3000억 합작사업을 따내 화제가 된 대구 중견기업 상하수처리 교반기 제작 업체인 ‘우진’ 대표이기도 하다. 단호한 말투, 카리스마 있는 눈빛이 영락없는 경영자로서의 그를 말해주지만 절집 이야기를 할 때는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가 묻어났다.

“신도회장이라 하면 경전도 좀 욀 줄 알고 불교 교리나 사찰 문제에 있어서도 막힘없이 답을 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남들이 3번 절을 하고 불전에 돈을 넣고 나오니 ‘아, 나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따라하고, 누가 향을 피우면 나도 따라서 피고 뭐 그렇게 배웠지요. 절에 가는 건 원체 좋아해 사찰엔 자주 갔지만 더 이상 특별한 인연은 맺지 않으려 했거든요.”

다시는 불교와 인연을 맺지 않을 거라던 다짐이 깨진 건 50대 접어들 무렵이었다. 이제 막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우진’이 구미 도리사 인근에 공장과 연구소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매주 월요일 공장과 본사, 서울사무소에서 치열한 회의를 마치고 나면 “이상하게 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리사 높다란 계단에 앉아 아래를 굽어보며 겹겹이 산과 너른 들녘,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다 상념에 빠지다보면 잡다한 생각은 사라지고 마음은 서리서리 풀어졌다. 아무도 모르게 절에 조용히 갔다 돌아오는 날이 이어졌다. ‘뭔가 보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진 건 도리사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다.

 “절에 머물며 100일 동안 10만배를 하겠다”는 원력에 당시 도리사 주지였던 묘장스님은 기꺼이 방을 내줬다. 주윤식 신도회장과 묘장스님.

“구미 공단에 근무하던 사람이 도리사 이야기를 꺼내더라구요. 당시엔 주6일제라 토요일에도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도리사가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갔다가 절에서 실컷 놀게 하고 저녁엔 집까지 데려다줘 너무 고맙다는 이야기였죠. 아이들도 기특하고 도리사도 참 고맙더라구요. 그래서 도리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스님에게 아이들 간식비에 보태라고 약소하게 보시를 좀 했지요.”

도리사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 인연이 시작됐다.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물밀 듯 밀려오던 시기, 새로 시작한 사업은 하루하루 그를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몰았고 가장으로서도 위태위태한 날이 이어졌다. 반백세 넘는 나이, “정신없이 50년을 살았는데 돌아서보니 아무것도 잘한 게 없었다” 생각하던 찰나, 3가지만 제대로 해보자 원력을 세웠다. ‘10만배 하기’ ‘백두대간 완주하기’ ‘환경공학 분야 석박사 학위 따기’, 주말마다 산에 올랐고 치열하게 공부했다. 도리사에서 10만배 수행도 회향했다.

“절에 머물며 100일 동안 10만배를 하겠다”는 원력에 당시 도리사 주지였던 묘장스님은 기꺼이 방을 내줬고, 서투르게 절을 하는 모습을 본 부전 스님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를 다시 잡아 줬다. 그렇게 10만배를 끝내고 나니 달라진 자신이 보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늘 행동이 먼저였고 무슨 일이든 저돌적으로 덤벼들었거든요. 눈앞의 것만 본거죠. 그런데 10만배를 마치고 나니 사람이 달라지더라구요. 비즈니스를 할 때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다른 길이 보이더라구요. 지혜가 생겼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괴롭고 패가 안풀린다 생각되면 지금도 절을 찾는 것 같아요. 골프를 치고 술을 마셔도 풀리지 않는 답답한 속이 절 근처만 가도 시원해지거든요.” 

생색내기 싫어하는 성격에 “절이 좋아 조용히 다녀가는 신도로만 있고 싶다”던 그가 교구신도회장을 맡게 된 건 작심 결과다. 훨훨 날 듯 살고 싶어 대구국가산업단지 내 국가물산업클러스터 입주기업협의회 초대 회장까지 임기도 채 채우지 않고 모든 걸 내려놓던 3년 전, “부담 없이 맡아도 되니 한번 해보라”는 스님 제안만큼은 끝내 거절할 수 없었다. 

‘경영엔 소질이 있는지 몰라도 절집 살림살이엔 젬병’이라던 주 회장은 교구신도회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부터 했다. 제8교구 내 70여 본말사를 돌며 신도회장들과 만나 소통부터 했다. 현장 목소리는 그대로 조직화 했다.

“우리 불자들 한 명 한 명 신심은 아주 대단하거든요. 다른 종교는 비할 바가 안돼요. 그런데 그걸 모을 줄 몰라요.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우리 교구만이라도 지역별, 본말사별, 말사별로 계속 소통하고 의견을 한 데 모아보자. 실행까지 가능한 일을 만들어보자 한 거죠. 승보공양 운동도 그 일환이에요.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여러 명이 힘을 모으면 적어도 우리 교구 스님들만큼은 ‘출가에서 열반까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1년에 3000명이 목표지만, 우리 본사가 좋은 결과를 내면 다른 본사까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출가자를 따르는 우리 재가자들이 있는데, 적어도 돈이 없어 병원을 못가는 스님은 없어야 하지 않겠어요?”

주 회장은 요즘에도 고민이 생기면 절에 오른다. “불교는 잘 모르지만 거창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나쁜 것을 좋게 만드는 힘, 사람들이 가진 분노를 식히고 마음에 평온을 주는 것, 그런 면에서는 내게 충분히 고마운 종교죠. 제 아는 스님이 그랬거든요. 스스로 살려 하지 말고 남 먼저 살리라고. 그게 결국 내가 사는 길이라고.” 주 회장 소신이 담긴 기업 이름 ‘우진(佑振)’, ‘남을 도와야 내가 빛난다’. 첫 인연을 맺은 스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직지사=이경민 기자│사진=신재호 기자   사진=신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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