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2019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동화]
  • 이수윤
  • 승인 2019.01.0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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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뎅이를 만난 거저리 / 이수윤

숲속의 새 아침이 밝았어요. 아름드리 참나무 밑둥을 나선 풍뎅이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어요. 그리고 한 쪽 방향으로 기고 또 기어갔어요. 숲속을 돌아보기 위해서지요. 풍뎅이는 살충제로 가족을 모두 잃고 이 숲까지 날아왔거든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처음 나서는 길이에요.

초록 나뭇잎은 내리는 햇살과 술래잡기라도 하듯 반짝였어요. 모처럼 보는 아름다운 숲속 풍경은 깊은 슬픔도 잊게 만들었어요.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어요. 얼마 후 멀리 나무 사이로 무엇인가 희끗희끗 보였어요. 놀란 풍뎅이가 살금살금 다가갔어요. 가까이 다가간 풍뎅이는 가슴이 덜컹했어요. 그것은 커다란 건물이었어요. 맑은 공기와 새소리가 가득한 숲에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있는 회색 건물은 흉물스러웠어요. 그리고 독한 약을 겨우 피해 떠나온 마을이 생각나 몸서리를 쳤어요. 가까이 다가가자 건물 앞에는 넓은 밭도 있고 잘 자란 채소들이 가득했어요.

“살살 다뤄요. 욘석들이 우리집 보물들이라구.”

“당신도 좀 조심하세요. 그렇게 여러 번 만지다간 살이 남아나지 않겠어요.”

창문이 열린 건물에서는 부부의 말소리가 흘러나왔어요.

부부는 일을 마치고 잘 익은 참외며 가지 등등 채소를 따서 트럭에 싣고 떠났어요. 풍뎅이는 천천히 건물을 돌아가며 살폈어요. 그리고 문틈으로 기어들어갔어요.

달콤한 냄새가 났어요.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어쩐지 이곳은 아늑하게 느껴졌어요. 소작이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는 커다란 통들이 놓여있었어요. 통 위로 기어 올라갔어요. 수 없이 이어진 통들을 타고 기어갔어요. 그러나 무슨 통인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만 주루룩 미끄러지고 말았어요. 딱딱한 등딱지 덕분에 아프진 않았어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놈이 너냐?”

언제 나타났는지 몸집이 작은 녀석이 노려보고 있었어요.

“뭐어?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뭘 먹었길래 똥냄새를 풍기냐?”

“똥냄새가 싫다고? 얼마나 고소한데. 그러는 넌 누구냐?”

“지저분한 놈이군, 저만치 떨어져서 들어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곳에서 태어나 애벌레를 거쳐 성충이 된 거저리다.”

“뭐? 거저리? 거머리?”

“거머린 또 뭐냐 거저리라고.”

“그래, 거저리. 난 저 참나무 숲에서 살게 된 풍뎅이다.”

“참나무 숲이라고? 그게 뭔데?”

“그래, 참나무 숲도 네 이름처럼 생소할거다.”

“뭐어? 거저리가 생소하다고? 이곳에선 귀한 대접을 받는 나한테?”

이렇게 시작해서 두 곤충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곳은 거저리를 사육하는 곳이었어요. 부부는 매일 한 번씩 이곳에 들러 톱밥을 살펴보고 제 때에 먹이와 수분을 공급해주는 일을 했어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애벌레들을 귀하게 돌봤어요. 적당한 크기로 자라면 식품회사나 화장품회사에 내다 팔았어요. 그래서 부부는 많은 알을 낳는 거저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것이지요.

“팔려나가기 위해 사는 삶을 자랑스럽게 말하다니. 넌 한 평생을 이 통 안에서 보내는 게 억울하지도 않니? 특히나 너의 애벌레들까지 누군가의 손에 의해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말야.”

“뭐어? 그렇게 말하는 넌 그런 삶을 살 수나 있고? 내가 힘이 센 이유도 다 좋은 사료를 먹어서 그런건데?”

“넌 가정을 이룬 나의 일가를 봤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거야.”

“가정? 가정이란 게 뭔데?”

“가족이나 가정을 알 턱이 없지. 거저리 주제에.”

“듣자듣자 하니 뵈는 게 없구나. 주인이 나를 어떻게 여기나 보기나 해.”

풍뎅이는 한심했어요. 그리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어, 어디가?”

풍뎅이가 날아오르자 거저리가 물었어요.

“가봐야겠다. 잘 있어.”

풍뎅이는 들어왔던 틈으로 빠져 나갔어요. 거저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했어요.

다음날도 풍뎅이는 숲속을 배회했어요. 처음 숲에 들었을 땐 낙원 같던 이곳도 금방 따분해졌어요. 평화로운 숲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지겨웠어요. 그럴 듯한 일거리가 있으면 삶이 훨씬 행복할 것 같았어요. 뭔가 어울릴 일이 있을 것 같아 아침 일찍 찾아 나선 것이지요.

그 때 누군가 반갑게 말을 걸었어요.

“여, 친구로군. 여긴 또 어쩐 일이신가?”

바로 어제 만난 녀석이었어요. 반갑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아서 인사를 나눴어요. 더구나 예절을 갖춰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기도 했거든요.

“태양이 지는 쪽을 향해 가고 있어. 자넨 어쩐 일인가?”

“어제 자네가 떠나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자넬 한 번 찾아보자고 나섰지.”

“나를? 흠, 잘 됐군. 함께 저 쪽으로 가보는 게 어때?”

둘은 오래 사귄 친구처럼 다정하게 숲속을 누볐어요. 숲속을 다닐수록 거저리는 신기했어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그 건물 속이 세상의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이 숲이야말로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이 많은 곳이었어요. 이제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풍뎅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세상 이야기를 다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두 친구는 몇 번이고 만나서 숲과 호수와 들판을 다녔어요. 어느 날은 풍뎅이가 떠나온 마을까지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가족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는 함께 슬퍼했어요.

 

삽화=용정운

“자네가 겪은 일들에 비하면 난 통 안의 애벌레 같은 삶을 살았어, 가족을 다 잃었을 때 어떻게 견뎠나?”

“이젠 가족의 의미를 아는군. 그 땐 살아있는 내 자신이 미울 정도였지.”

“자네까지 목숨을 잃었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을까?”

“글쎄, 이렇게 살아있으니 뭔가 보람된 일을 하고 싶어.”

거저리는 풍뎅이가 가엽게 여겨졌어요.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웠어요. 지금까지 몰랐던 자유로운 세상을 알게 해준 풍뎅이가 고마웠어요. 그리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난 자네 덕택에 삶이란 것을 알게 되었어. 이전까진 애벌레신세를 면치 못했다면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나도 자네 덕분에 가고 싶은 곳을 다 돌아보았어.”

“이제 난 꿈이 생겼어.”

“제법이군, 꿈이라고?”

“내 아이들이 인간의 식품으로, 화장품 원료로 팔려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이젠 소름이 돋아. 난 내 아이들을 지키겠어.”

“철이 들었군. 힘들 때 날 원망하진 말게.”

“내가 꿈을 꾸는데 친구를 원망할 일이 있겠나.”

“그래, 꿈은 이룬 자의 것이 아니고 꾸는 자의 것이란 말이 있지.”

“어쩜 자넨 그렇게 내 맘에 쏙 드는 재주가 있나? 난 이제 자넬 누구보다 더 믿기로 했네.”

“뭐어? 이 친구가 아주 날 옭아매는구만.”

“자네가 우릴 좀 도와주게.”

풍뎅이는 거저리의 변화가 놀라웠어요. 친구의 행복을 위해 뭔가 할 일이 있다면 돕고 싶었어요. 그 생각은 풍뎅이를 행복하게 했어요.

어느 날,

풍뎅이가 거저리의 통 안에 숨어들었어요. 마침 부부가 뚜껑을 열어놓았을 때지요.

“아니, 뭐 이런 녀석이 있어?”

“우리랑 완전 다른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거저리 성충만 모여 사는 통 안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어요.

“자, 조용히 좀 해. 이 친구는 내가 모셔온 지혜로운 곤충이야.”

“뭐어? 모셔왔다고? 아니 우리한테 허락도 안 받고 아무나 막 데려와도 돼?”

“난 싫어. 우리랑 다른 녀석이 독이라도 뿜으면 어쩔 거야?”

똑 같은 모양새의 거저리들도 모두 한 가지씩 다른 의견을 말했어요.

“맞아요. 여러분은 절 거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 온 이유를 알고 난 후 결정하셔도 됩니다.”

풍뎅이의 한 마디에 웅성거리던 통 안이 조용해졌어요. 거저리가 자신이 꿈을 꾸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어요. 결국엔 모두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박수와 함께 새 출발의 뜻을 다졌어요. 이제 계획에 따라 훈련할 일만 남았어요.

거저리들은 회의를 거쳐 좋은 방법을 찾았어요. 각 통의 대장을 뽑고 그 대장은 애벌레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겼어요. 구호는 새 길을 향하여 출발!로 정했어요. 몇 번의 연습을 거쳐 하나의 긴 끈이 움직이듯 애벌레들이 재빨리 움직였어요. 하지만 톱밥 속에서 하는 훈련을 부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어요.

이제 탈출할 기회만 엿보게 되었어요. 풍뎅이와 거저리들은 틈틈이 농작물을 갉아먹기 시작했어요. 며칠이 지나자 넓은 밭에 잘 자란 열매와 채소들이 흠집투성이가 되었어요.

마침내 기회가 왔어요. 부부가 톱밥 트럭을 몰고 왔어요. 새로운 톱밥으로 바꿔주려는 것이지요. 통 뚜껑을 열고 애벌레를 골라냈어요. 그리고 톱밥을 새로 채울 때였어요. 거저리가 대장들에게 구호를 외쳤어요. 새 길을 향하여 출발! 대장들은 구호를 전달했어요. 애벌레들이 재빨리 줄을 지어 탈출하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여러 개의 애벌레 줄이 사방으로 뻗어나갔어요. 부부는 놀라 애벌레를 쓸어 모았어요. 그러나 수많은 애벌레를 다치지 않게 모으기란 쉽지 않았어요. 여기저기 생겨난 줄들이 문밖으로 빠져나갔어요. 애벌레를 잡으러 나가던 남편은 텃밭의 상추,오이,가지 등등 채소들이 먹힌 것을 발견했어요.

“여보, 채소밭이 엉망이 되었어.”

남편이 소리치자 부인은 거저리들을 쓸어담던 빗자루를 들고 뛰어나갔어요. 그러나 발만 구를 뿐 방법이 없었어요. 애벌레 줄들과 거저리 줄들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어요. 그 줄들은 마치 강물이 흘러 새로 생긴 실개천처럼 끝도 없어 보였어요.

애벌레를 모두 탈출 시켰을 때는 개밥바라기가 서쪽 하늘에 떠올랐어요. 노릿한 줄들은 한 줄로 합쳐져서 계속 길어졌어요. 부지런한 달님이 아래를 살피다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어요. 그리고 깜짝 놀라 한쪽 눈이 퀭해졌어요. 애벌레들은 새로운 세상을 향해 계속 길을 갔어요.

풍뎅이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어요.

“멋진 친구, 행운을 비네.”

거저리도 더듬이로 브이자를 그리며 활짝 웃었어요.

 

즐겁고 가벼운 삶 위한 글 쓰겠다

당선소감 / 이수윤

모처럼 햇살 가득한 겨울날, 눈부신 소식을 접했다. 눈보라치던 십여 년의 세월들이 파노라마 되어 스쳐간다. 모진 시간들이었다. 다쳐 부서진 나의 습작품들이 바위틈에서, 골짜기에서, 잡초더미에서 살아 일어나는 듯 여겨진다. 새 옷을 입은 나의 분신들이 나를 향해 수고했다고 말하는 듯 느껴진다. 이 고운 것들이 앞으로의 나의 창작생활에 큰 에너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왜 살까? 아냐, 어떻게 살까? 그리고 왜 쓸까? 아니지 어떻게 쓸까? 등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세대가 읽고 공감하는 동화를 쓰는 내내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쓰는 사람의 행복이 읽는 가슴에 잘 전달되어 독자가 행복하고 사회가 밝고 따뜻해지는 작용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 소망을 위해서 더 부지런히 다치고 넘어지며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름다운 작업이었다라고 만족하는 날을 맞이하겠다. 즐겁고 가벼운 삶을 위한 글을 시원하게 쓰겠다.

시골살이를 시작하고 마당을 가꾸며 작은 생명들에 관심이 생겼다. 지상의 것들뿐만 아니라 땅속에서 집을 짓고 사는 곤충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것들과 친해졌고 그들의 삶을 궁금해 했다. 그들을 해충이라 부르며 구제해야 했다. 나무 등 식물을 위한다고 하지만 많이 미안했다. 처음 접한 굼벵이 한 마리로부터 작품의 씨앗을 얻었다. 여러 번의 탈피를 거쳐 탄생된 나의 작품이 성충으로 잘 자라준 것이다.

까마귀 한 마리가 집 앞 전봇대 위에 날아와 앉았다. 까옥거리며 축하해준다.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곧장 걸어가라고 격려한다. 이웃으로 살아가는 노루, 꿩, 까치, 말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행복하고 감사하고 소중한 날이다. 이런 날을 선물해준 불교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 올리며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한다. “오래 뵙지 못한 전원범 교수님, 배봉기 교수님 감사합니다. 삶이 귀감이신 이성자 선생님 감사합니다. 금초가족들 감사합니다.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 힘내십시오. 진, 영, 용, 우 사랑합니다.”

 

간결함 속에 갖춰진 의미의 보편성

■ 동화부문 심사평 / 방민호 서울대 교수

동화는 번잡하게 쓰지 않으면서도 좋은 뜻을 담을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건은 어휘와 문장을 깨끗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짧고 간결하게, 쉽게, 그러면서도 표현도 이야기에 담긴 뜻도 아름다워야 한다.

한편으로 동화는 자칫 잘못하면 소재나 주제가 유형적인 데로 흘러 새롭지 않은 이야기가 되기도 쉽다. 불교신문의 경우에는 매체 특성이 있어 불교적인 소재나 주제를 채택하려는 유인효과도 있어 더 어렵다. 불교적인 색채를 띤다고 해서 무턱대고 선에 올릴 수 없다.

모두 네 편의 작품을 먼저 골라냈다.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주제나 소재, 문장 등 앞에서 열거한 점들에서 무난한 것들에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푸석바위’는 불상이 되고 싶은 바위들의 이야기다. 푸석바위도 나오고 귀바위도 나오고 납작바위도, 배바위도 나온다. 재미있다. 바위들이 말도 하고 생각과 감정을 가지니 전통적인 절집 이야기에 그치기 쉬운 불교적 이야기에 새로움이 생겼다.

‘풍뎅이를 만난 거저리’도 우화다. 동화라면 우화 같은 이야기가 읽는 맛과 멋을 내기 좋다. ‘푸석바위’처럼 우화의 이점을 잘 살린 작품이다. ‘거저리’는 이름도 생소해서 인터넷 사전을 찾아봤더니 알 만하게 생긴 곤충이다. 풍뎅이와 거저리가 만나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풍뎅이는 살충제 때문에 가족들을 잃어버렸고 거저리는 사람들에게 사육되는 처지다. 이렇게 말하면 살벌하게 느껴지지만 이야기는 쉽고도 간결해서 따라 읽기 좋다.

‘히말라야 아이 사랑이와 서울 아이 묵띠’는 한국에 와 일하게 된 아빠를 가진 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쪽에서 다문화 이야기가 십여 년 이상 ‘각광’을 받았는데, 동화 쪽에서도 이러한 현실의 이야기를 동화다운 플롯과 문장으로 옮겨 놓곤 한다. 이 이야기에는 사랑이도 나오는데 이 아이의 아빠는 짐을 날라주는 히말라야 포터다. 다소 이야기가 복잡해 보인다. ‘돌탑 쌓는 아이’는 문장도 아주 깨끗하고 배경을 이루는 부모 없이 할머니에게 키워지는 섬 아이의 외롭고도 순수한 마음을 잘 전달하고 있다. 다만 새로운 이야기라고 밀어붙일 수 없는 점이 다소 걸린다고나 할까.

‘푸석바위’와 ‘풍뎅이를 만난 거저리’는 둘 다 아주 좋은 이야기다. 마음이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기운다. 결국 ‘풍뎅이를 만난 거저리’의 새로움을 ‘푸석바위’의 깊이 대신에 선택한다. 간결함 속에 의미의 보편성을 갖추고 있고 사건과 대화가 좀 더 동시대적이라고 판단했다.

본격적인 평론 응모작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문학의 정신도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평론은 더욱 많은 일을 해주어야 하건만 배고픔 속에서 정신을 벼리는 사유의 정신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지 않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현실의 삶이 이토록 헐벗고 가난한데 어째서 정신은 살아있지 못한가, 하고 이 두터운 안개층 뚫고 나갈 힘의 부재를 절감하게 된다. 한 해를 더 인내심 있게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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