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도 불교의 땅에 기독교가 피었다. 조계종(총무원장 설정스님)은 기독탄신일(12월25일)을 앞둔 지난 18일 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종교간 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는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개최했다. 종단 차원에서 아기예수의 탄생을 한마음으로 축하하는 행사다. 

2010년부터 해마다 이어가고 있는 존중과 배려다. 종교화합의 대표적인 장으로 일반 언론매체에서도 귀감으로 다룬 바 있다. 특히 최근 타종교에 의한 불교 폄훼가 또다시 기승을 부린 터여서, 그 진정성이 더욱 빛난다는 시각이다.

점등식에는 종단 집행부 스님들과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대주교 등 이웃종교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춥고 어두운 저녁, 모든 종교인들은 불교의 품에서 하나가 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은 축하메시지를 통해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진다고 말한 예수님처럼 스스로를 낮출 때 남의 얘기를 더 들을 수 있다”며 “개인의 이익보단 사회와 이웃을 살피는 선한 마음을 매순간 굳건히 가져야 할 것”을 당부했다. 크리스마스캐럴이 한국불교 총본산에 울렸지만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크리스천들은 자신들의 잔치에 진심으로 박수를 쳐준 불자들에게 금년에도 감사를 표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를 이렇게 마련해줘 고맙다”며 “평화와 생명의 의미인 아기 예수의 탄생의 뜻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를 바가 없다”고 밝혔다. 

가톨릭대 신학과 교수이자 동국대학교에서 인도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문성 신부 역시 “부처님과 예수님은 동일하게 고통에 빠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자비와 사랑의 가치를 추구했다”며 “종교간 생명평화운동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모색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종교인들 사이에서만 호평을 받는 때는 지났다.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떠오른 손석희 JTBC 사장은 2014년 12월17일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조계사 성탄트리와 포용’에 대해 살갑게 논평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사랑과 마음을 닮아갑시다”라는 종단의 성탄메시지를 인용하며 조계종의 대인다운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다종교사회의 ‘현실’은 그리 평화롭지 않다. 불과 며칠 전 불교계는 낭패를 당할 뻔했다. 세종시에 건립될 한국불교문화체험관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예산이 지역 개신교계의 억지와 궤변으로 전액 삭감될 위기에 놓였었다. 불교가 아닌 시민을 위한 사업이라며 시 당국도 쾌히 환영한 사안임에도, 이들은 “불교는 한국문화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논리로 어깃장을 놓았다.

다행히 종단 집행부와 지역 사찰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예산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며 불상사는 막았다. 직전엔 고속도로 표지판에서 사찰 표기를 빼겠다고 했다가 오히려 더 강화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국토부의 ‘태세전환’ 행보가 있었다. 불자들의 ‘보살심’이 새삼 시험에 들었던 연말이다.

물론 불교에 대한 비하와 음해가 지속될수록 불교가 종교화합에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진정성은 결국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마련”이라며 “‘세상 모든 이웃이 평화롭고 보람된 삶’이라는 성탄메시지의 목표를 종단이 우직하게 실천해나간다면 국민적 호감은 자연스레 두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 편’이나 모으고 ‘제 몫’이나 챙기는 게 종교는 아니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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