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이 담아야할 것은 ‘이념’ 아닌 ‘고향마을’

 

세월호 사건처럼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자기책임이라 

참회한 일이 있던가?

걷기에 안전한 길

정이 오고가는 길

서로 품앗이하는 길 

누구든 환영해주는 길 

긴 호흡…차분한 자세로

꾸준히 ‘첫마음’을 모아가자 

종교 시민단체 활동가들로 구성된 ‘세월호 희망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순례 도중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승호 작가

나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나에게, 우리에게, 대한민국에게, 세월호는 무슨 의미인가’하는 화두를 붙들고 걷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다.

“세월호 순례길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처럼 명품순례길이 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 질문이 불편했다. 거의 본능적으로 상대비교를 통해 우월해야만 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는 우리의 모습이 못마땅했다. 상대비교 없이 주체적으로 자기다운 길을 찾고 만들어갈 수는 없는 것일까. 묻고 물으며 다시 2014년 4월16일로 돌아갔다. 

“잘못했다 / 보지말아야 했다 / 물속에서 아직 살아있다가 / 곧 이승을 버리기 직전 / 아이들 모습 / 아이들 음성 / 배가 기울고 / 물이 밀려드는데도 / 방송에서 말하는 대로 / 가만히 있는 착한 열일곱 살 / 이 나라의 아이들 / 저 사람들의 아이들 / 내 아이들 / 어떡해 / 어떡해 / 어떡해 소리밖에 낼 수 없는 / 아이들, 아이들 / 우리 아이들… ”

 - 나해철 시 <빈 산의 소쩍새>

인천항을 힘차게 출발하는 희망 가득 실은 세월호, 팽목항 앞바다에 무참히 침몰하는 비탄과 절망의 세월호. 그 날 그 장면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이들을 가슴 설레게 했던 그들의 꿈, 희망, 바람은 무엇일까. 그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며 팽목항 앞바다에 죽음으로 가라앉아버린 그들의 꿈, 희망, 바람은 어찌해야 할까.

오늘 우리가 찾고 기다리는 꿈, 희망, 바람도 다르지 않을 터. 우리의 성찰이, 각성이, 전환의 다짐이 그들과 우리의 꿈, 희망, 바람을 내 삶으로 대한민국의 살림살이로 실현되도록 할 때 비로소 우리가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우리 모두에게 떳떳한 웃음을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참 많은 생각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일로만 보면, 관계된 유가족들과 선주, 선장, 해경청장, 장관, 대통령 등 정부의 일이다. 그런데 왜 온 국민이 자기 일처럼 울고불고 했을까. 왜 “미안해. 잘못했어. 잘할게. 달라질게. 새로워질게, 하며 절절하게 성찰하고 각성하고 전환의 각오를 했을까. 하늘과 땅, 희생자들과 유족, 국민과 자신에게 가슴을 치며 다짐하고 또 다짐한 까닭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일찍이 우리 현대사의 어떤 사건도 늘 누구의 일, 누구의 책임이었지, 세월호처럼 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자기책임, 자기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계획한 일은 아니었지만 때 묻지 않은 생명의 본능에 따라 가장 순결한 인간다움으로 삶을 깊이 성찰하고 각성하고 전환을 다짐했다. 어쩌면 처음으로 내 삶의 주인, 이 사회의, 이 나라의, 이 세상의 주인으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 터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를 미안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 겸손한 마음, 진솔한 마음을 갖게 했다. 생명의 소중함, 살아있음의 고마움에 눈뜨게 했다. 온 국민으로 하여금 선하고 순결한 한 마음 되게 했다. 삶을 깊이 성찰하고 뉘우치게 했다. 내 삶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깨어나게 했다.

반드시 주인 노릇하겠다는 용감한 결심과 다짐을 하게 했다.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너,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온전히 다 담고 있는 것이 세월호의 ‘첫마음’이다. 그 첫마음은 편 갈라서서 창과 방패 노릇만 해온 우리의 낡은 마음을 녹이는 용광로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하여금 더불어 함께 삽과 괭이 노릇하게 만드는 대장간이다. 이 정부도 새로운 나라,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려면 반드시 세월호의 첫마음을 기억하고, 실제 삶으로 문화로 구체화시킬 때 가능함을 명심해야 할 터이다.

어떤가. 세월호의 첫마음에 담긴 뜻에 따라 아이들에게, 새싹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순례길,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하는 순례길이라면, 진정 우리다운 길, 명품중의 명품길이라고 자부해도 좋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의 첫마음을 가꾸기 위한 4.16순례길은 정부는 물론 더 나아가 범국민운동으로 펼쳐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한반도 우리 민족의 많은 질곡들과 희망을 꿈꾸는 변화를 위한 아픔은 대부분 서해안과 연결되어 있다고. 그 아픔과 희망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세월호의 첫마음과 만난다.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는 옛 스승의 말씀처럼 세월호의 첫마음으로 아픔과 희망을 품고 잠들어있는 서해안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 아픔이 있는 곳에 치유의 길이 있고 절망의 그 현장에서 희망의 싹이 자라난다. 그곳에 길이 있고 희망이 있다. 

길은 이미 열리기 시작했다. 

2016년 아이들이 45일간 걷고 어른들이 도와 성찰과 각성과 전환을 염원하는 첫길을 열었다. 2017년 53일간 10대에서 80대,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진보 보수, 좌파 우파, 남성과 여성들이 치유와 회복, 전환과 승화를 가슴에 새기고 땅에 새기며 길을 다듬었다. 그 과정에서 유족들 안에 뜻하지 않은 아픔이 있음을 보았다. 4.16순례길이 그 모든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의 새살을 돋아나게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분명한 것은 세월호의 첫마음이 나의 가슴, 너의 가슴, 우리의 가슴에 가득 차오르고 발자국 따라 우리 땅 곳곳에 깊이 새겨지는 날, 우리를 위해 희생한 아이들, 어른들, 유족들, 그리고 우리 모두들이 흐뭇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을 확신하는 마음들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 우리 땅을 금수강산이라고 자부한다. 동해안은 웅장하다.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고 거대한 산맥이 꿈틀꿈틀 펼쳐지는 풍광은 장쾌하다. 남해안은 한 폭의 그림처럼 바다와 섬들의 어울림이 압권이다. 

그와는 다르게 서해안은 한국적 정서를 잘 품고 있다. 서해안 바닷가 마을에서 느끼는 정취는 남다르다.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고 다정다감한 애틋함이 가득하다. 해안선은 굽이굽이 돌아나가고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매력적이다. 야산과 평야와 바다와 섬들이 잘 어울려 있으며 굽이굽이마다 정겨운 마을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그 길은 우리다움을 온몸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바닷가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너와 내가 함께 하는 4.16순례길은 틀림없이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고 우리의 희망을 꽃피우는 길이 될 터이다.

우리의 바람이 현실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긴 호흡, 차분한 마음으로 꾸준하게 마음들을 모아야 한다. 4.16순례길은 반드시 길과 연결된 지역,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마을들이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고향의 품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아이들, 아니 우리 모두의 바람대로 생명이 안전하고 삶이 평화로울 수 있는 생명의 고향, 평화의 고향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절절한 바람으로 한반도 우리 민족 사회에 평화가 정착되고 문화가 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역주민과 더 많은 대화와 소통을 이루어야 한다.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참으로 좋은 길, 멋진 길, 정다운 길, 아름다운 길, 매력 넘치는 길이 되도록 코스를 더 완성시켜야 한다. 곳곳에 순례자들이 좋아하고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할 쉼터들도 잘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구체적으로 고향의 따뜻한 삶을 만나는 착한 교통편, 잠자리, 식당들도 발굴되어야 한다.

4.16순례길은 현재 ‘지도’를 그리고 함께 할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에 있다. 순례길의 완성은 길을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로 만듦을 뜻한다. 걷기에 안전한 길, 생명이 숨 쉬고 정이 오가는 길이어야 한다. 이웃이 서로 품앗이하고 도우며 사는 마을, 순례자들을 따뜻이 품어 안을 수 있는 마을이어야 한다. 이는 우리 삶의 터전을 새롭게 가꾸는 일이며 삶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삶의 가치, 삶의 방식에 눈뜨게 하는 일이다. 분열과 대립, 경쟁이 지배하는 삶에서 탈출하여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는 고향마을, 그리하여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고향마을이다. 

4.16 순례길은 고향마을의 정이 드러나는 길, ‘한국의 길’이다. 이 길은 새로 만들어내는 길이 아니라 이미 있는 길을 잘 다듬고 연결시켜 드러내는 길이다. 전남 영광과 함평에서는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동네 입구에 나와 “우리 마을을 찾아줘 반갑다”며 환영하는 바람에 순례자들이 감동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갈 때는 알 수 없었던 고향마을의 아름다움이, 걸어 방문함으로써 재발견된다. 왜냐하면 걸어서 갈 때 보다 깊이 있게 만나고 오래 보게 되기 때문이다. 4.16 순례길은 도시화로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그리운 ‘고향’을 찾아줄 것이다. 

[불교신문3321호/2017년8월16일자]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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