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명된 신도 농성 시위에 재가연대 가세…혼미만 거듭

주지 스님을 두고 '신도 무시하는 관리인'이라 칭하며 '절을 떠나라' 요구하는 등 일부 재가자들의 도를 넘은 시위 행위로 서울 봉은사가 몸살을 앓고 있다. 고성과 함께 자극적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마주한 방문객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사찰 운영 과정에서 빚어진 주지 스님과 일부 신도들 사이 문제에 명분 없는 재가연대까지 농성에 가세하면서 사찰 내부 문제가 본질을 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종루 전통문화체험관 건립 반대 운동을 하다 신도회 회칙 위반으로 제명되거나 근신 징계를 받은 봉은사 신도들이 오늘(10월4일) 사찰 입구서 징계와 6봉은(봉은사 신도조직, 야간봉은) 해체 부당성을 주장하며 4차 '신도회 탄압 규탄 대회'를 열었다. 신도 20여명은 "원학 관리인의 (주지)연임을 반대한다" "40년 중창불사에 관리인이 한 일이 무엇이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연임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다. 또 "주지 스님으로 인해 신도회 조직이 해체됐다"며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원학스님의 연임을 저지하고 신도회 자율성이 보장되는 날까지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봉은사 측은 징계와 해체 사유가 명확하고 신도회 회칙에 의해 내려진 판단인 만큼 합당한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주지 원학스님은 이날 "몇몇 신도들이 정상적인 신행활동을 하고 있는 신도들에게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문자를 보내고 거리로 나가 허위 사실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사중을 이간하고 사세와 사격을 추락시키는 행위하고 있다"며 "합당한 절차에 따라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한 "이들 행위는 봉은사의 숙원사업이었던 40년만의 중창불사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일부 신도의 일탈 행위에 재야단체까지 합세하면서 사안이 왜곡되고 확대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봉은사 내부 갈등이 촉발된 시기는 지난해부터다. 종루 전통문화체험관 건립이 시발점이 됐다. 종루 공간을 외국인 관광객과 신도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사찰 결정에 당시 6봉은 내 연등장이었던 최옥곤 씨가 반발하며 일부 신도회원들과 반대 운동에 들어갔고, 지난 1월 봉은사가 최 씨를 제명하면서 불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 씨는 봉은사 신도회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봉은사 연등 및 신도지위 가처분' 신청을 낸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1인 피켓 시위에 들어갔다. 봉은사 측은 6월 최 씨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했고 9월에는 최 씨외 3명을 추가 제명, 5명을 근신 처분했다. 최 씨를 비롯해 징계 받은 신도들은 이들 모임을 '봉은사 신도회 바로세우기 운동본부'로 칭하고 지난 9월6일부터 매주 일요일 봉은사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이에 봉은사 신도회는 지난 9월30일 법회동참거부 등의 이유로 6봉은 해체를 선언했다.

봉은사와 '신도회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측의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봉은사는 신도회 회칙에 따라 합당한 사찰 운영을 해왔으며 논란이 되는 부분도 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이 '봉은사 연등 및 신도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 씨를 비롯한 몇몇 신도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위 행동에 나서면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봉은사 관계자는 "사찰 망신을 시키고 있는 시위자들을 왜 막지 않냐는 민원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들어오고 있다"며 "주지 스님에 대한 신변 공격까지 하고 있어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도회 바로세우기' 측은 일방적 제명과 6봉은 해체가 신도회를 무시한 처사라 주장하며 '연임 반대'를 외치고 있다. '바로세우기' 측은 "종루는 성스러운 곳이므로 찻집을 들이는 것은 이를 모독하는 것이라 정당하게 반대한 것"이라며 "신도들이 그동안 기여해 온 바를 무시하고 신도회 자율성을 침해했을 뿐 아니라 막말과 회유 등으로 우릴 농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창불사는 전 주지 진화스님과 신도들이 각고의 노력을 했던 결과가 우연히 현 주지 스님 재임시절에 열매를 맺은 것 뿐"이라며 "우리는 중창불사에 반대하지 않으며 불사는 치밀한 심사숙고를 거쳐 진행돼야하는 만큼 곧 떠날 분이 아닌 새로 부임하는 주지 스님이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은 논란이 된 '토론회 제안'에 대해서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바로세우기' 측은 지난 24일 조계사 인근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원학 스님이 토론회를 공식 제안했다고 들었다"며 "아니라면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도록 공개토론회를 요청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원학스님은 "근거 없이 포장되고 확대되는 부분들이 있어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굳이 피할 생각은 없다는 의견을 사석에서 나눈 적이 있다"며 "그러나 토론회를 정식으로 제안했다는 것은 와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적법한 근거에 따라 최 씨가 낸 가처분 소송이 이미 기각됐으며 다른 소송 또한 검찰 조사 중에 있다"며 "밖이 소란스러워도 합당한 절차에 맞춰 분쟁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신도들의 신행생활에 자꾸 피해가 가는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양 측의 분쟁에 재가단체들이 가담하면서 혼란은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불교재가연대, 바른불교재가모임 등은 이날 '바로세우기' 측 활동에 합세할 것을 공식 발표했다. 우희종 바른불교재가모임 상임대표는 이날 발언을 통해 "그전까지는 사찰과 신도 간 문제라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오늘 이후로 재가단체들도 함께 해나가기로 했다"며 "주지 연임 문제를 넘어 사찰재정투명화 등 바람직한 한국 불교의 모습을 위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법회와 국화축제개막식이 있었던 이날 신행활동을 하기 위해 찾아온 신도들과 관광객들로 사찰은 더욱 붐볐다. 그러나 봉은사 입구에 늘어선 재가자들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최 씨를 아는 한 신도는 "오죽하면 저렇게 행동할까 생각한다"며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신도는 "소리치는 분들이 봉은사 신도가 맞냐"며 "주지 스님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뭉쳐서 싸우는 모습이나 보려고 절에 온 것이 아니다"고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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