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관세음보살님은 자비를 대표하는 보살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애로운 모습이면 될 것인데 왜 천수천안(千手千眼)이나 십일면(十一面) 등 특이한 모습으로 설명되는지요?



다양하고 차별 없는 자비 상징

우리 모두가 이미 관음의 화현

답 : 현실적으로 눈이 천개이고 손이 천개인 사람이나 얼굴이 열 한가지인 사람을 만난다면 아마도 혼비백산하겠지요. 그러므로 실제로 관음보살이 그런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비의 다양한 모습과 차별 없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관음보살은 관세음(觀世音) 또는 관자재(觀自在)라고 부르는데, 관세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관하는 자비(慈悲)의 표현이고, 관자재는 그 관하는 능력이 자유자재한 지혜(智慧)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관음보살은 햇빛처럼 모든 곳을 비치고, 햇볕처럼 닿는 곳마다 따뜻하게 하며, 햇살에 살균작용이 있듯이 만나는 것마다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햇빛과 햇볕과 햇살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듯 자비와 지혜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관음을 만날 수 있을까요? 답은 천수천안이나 십일면이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시선과 스치는 모든 손길이 관음 아님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주는 기사님들, 우리가 배고플 때 언제나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요리사들,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을 필요할 때 가져다주는 택배원,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모든 종사자 등 이 세상 모든 이들이 관음의 화현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이들과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들, 그리고 우리를 화나게 하는 이들까지도 우리에게 중도를 가르치려는 관음의 화현인 것입니다. 심지어 풀 한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도 관음의 화현인 것이지요.

자기중심적이고 닫혀 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서 내게 가피를 듬뿍 줄 관음을 찾으면 관음을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아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온 천지가 이미 관음의 품인 것입니다.

십일면관음은 각기 다른 얼굴이 열한가지가 됩니다. 이것은 자비의 다양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자비가 되고, 악심을 일으키는 이에게는 무서운 모습이 자비가 될 수 있으며, 들떠 있는 사람에게 고요한 얼굴이 자비가 될 수 있습니다. 즉 한 사람에게 여러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가장 필요한 모습을 보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자비입니다.

천개의 손과 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손과 눈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얼굴이 진짜 관음의 모습일까요? 과연 몇 번째의 손으로 만져야 최고의 가피가 되는 것일까요? 천개의 손과 눈에는 차등이 있을 수 없으며, 열한가지의 얼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손 모든 눈이 곧 온 몸인 것이며 모든 얼굴이 자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관음보살은 어떤 곳에서나 모든 생명을 대상으로 자비를 펼치되, 그 자비는 결코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온몸으로 혼신을 다해 펼쳐지는 것입니다.

관음보살은 가피의 손길(자비)로 희망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신행의 표상(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곧 천수천안이 되고 십일면이 되어야함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미 관음의 가피 속에 있는 것이며, 그 무한한 가피를 다른 생명에게로 되돌려 줘야하는 관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관음이 되어 세상을 보면 세상의 모든 생명이 관음임을 알게 됩니다. 아직도 관음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 거울을 보십시오.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33호/ 6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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