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재 뒹굴고 잡초도 무성


47년간 교육자로 후학을 양성해온 최병식씨(81)가 지난 9일 불교신문을 통해 10여점의 근세불교 관련자료를 공개했다. 이 가운데는 1910년대 석굴암 내부와 외부 전경이 담긴 사진엽서가 포함돼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경주 불국사 전경과 석가탑을 비롯하여, 굴불사 석불, 김룡사 대중들의 사진도 공개됐다.



“공개된 관련 사진들 중 가장 험악한 것” 

 

 김룡사ㆍ경주 굴불사 석불 사진도 나와


<사진> 1910년대 석굴암 내부. 훼손 상태가 심해 안타까움을 준다. 사진제공=최병식

1910년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굴암 내부 모습은 훼손상태가 심각하다. 부처님 좌대 아래가 흙으로 채워져 있으며, 천정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재(石材)가 뒹굴고 있다. 나한상을 가린 돌조각들과 잡초는 일제강점기 불교문화재의 수난을 대변하는 듯하다. 본존불 좌우 기둥을 비롯해 석굴암 내부 곳곳에 ‘普成◎校’ 등의 낙서가 있으며, 본존불 입술도 검은색(추정)으로 채색되어 있는 등 1910년대 석굴암의 피폐한 모습을 보여준다.

문명대 교수(사단법인 한국미술사연구소장)와 김상현 교수(동국대 사학과)는 “석재가 곳곳에 흩어져 있고, 나한상이 일부 가려져 있어 안타깝다”면서 “공개된 사진과 똑같은 장면을 담은 것은 드물다”고 말했다. 문명대 교수는 “이제까지 본 사진 가운데 가장 ‘험악한’ 것”이라면서 “기존 사진들과 비교하는 작업을 거치면 석굴암 원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신대현 연구원(사찰문화연구소.불교신문 논설위원)도 “1913년 석굴암 중수가 시작되기 직전인 1910년 무렵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기둥에 적힌 글씨는 낙서로 사찰 전각 기둥에도 먹으로 쓴 글씨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1910년대 석굴암 외부. 석굴암으로 오르는 길과 법당으로 보이는 건물도 눈에 띈다. 사진제공=최병식

이번에 공개된 석굴암 사진은 일본에서 발행된 우편엽서에 실려 있는 것이다. 우표 또는 우체국 직인이 찍혀있지 않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사진을 공개한 최병식씨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 가면서 많은 사진과 자료가 소실됐는데, 일제 강점기 사진엽서는 화를 면했다”면서 “사진들이 한국불교 근세사를 연구하는 자료가 된다니, 마음이 기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불교미술사학자인 성낙주씨(서울 중계중 교사)는 “1910년대 초기 모습을 담은 석굴암 사진은 비교적 많이 나와 있다”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근세 불교문화재 사진이 일본에서 발견되거나 공개되는 상황인데, 한국인이 소장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1910년대 석굴암의 외부 모습을 담은 사진엽서도 공개됐는데, 이미 소개된 적이 있는 자료이다. 경주 굴불사(掘佛寺) 석불 사진도 관심 끄는 자료이다. 땅 속에 묻혀있던 굴불사 사면석불(四面石佛)이 발굴된 것은 1914년에서 1915년 무렵 사이이다. 굴불사 석불 발굴후 일본인들이 불두(佛頭)를 훔쳐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성낙주씨는 “1910년대 굴불사 석불사진은 여러장 나왔다”면서 “지금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신대현씨도 “엽서 속의 사진은 발굴후 손상되기 직전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 1925년 문경 김룡사 대웅전. 김룡사에 주석하는 스님들과 절에 온 재가자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왼쪽에서 8번째가 주지 정암스님이다. 사진제공=최병식

이밖에도 최병식씨가 공개한 사진에는 1925년 김룡사 대웅전 앞에서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도 들어있다. 울창한 산림과 웅장한 모습의 대웅전은 천년고찰의 위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김룡사는 30본산의 하나로 경북지역의 사찰을 관할하던 대찰이었다. 당시 주지 정암(晶庵)스님을 비롯해 1920년대 김룡사 대중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낙주씨는 “소중한 성보 사진을 오랫동안 온전하게 보관해온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라면서 “이 같은 자료들이 잘 수집되고 보관되어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성보문화재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내국인에 의해 지켜왔다는 사실 자체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경=이성수 기자

 



  근세불교자료 공개한 최병식씨 /



 “부처님 가르침 따르는 많은 사람에 도움되길”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9일 본지를 통해 10여점의 근세불교자료를 공개한 소회를 최병식〈사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향토사 연구에 매진한 그는 특히 지역불교사와 사찰문화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최씨의 부친은 일제시기 김룡사 주지 정암스님이다. 유교세가 강한 지역에 살면서도 ‘스님의 아들’이며 ‘부처님 제자’임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에 불교관련 자료들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80 노구에도 불구하고 백용성 스님이 저술한 12권으로 된 <조선글화엄경>을 지금 시대에 맞는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할 만큼 신심이 깊다.

김천중학교와 해인대학 졸업 후 고등교원고시에 합격한 최병식씨는 점촌고.문경고 교감을 지냈으며 영순중 교장으로 근무하다 지난 1995년 정년퇴직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석류장을 비롯해 교육연공상, 스승의 상, 문화상을 수상했다.

<문경지> <문경대관> 등에 필자로 참여했으며, <불교미술의 이해> <붓다의 마음> <한사의 노태극시> 등의 저서를 저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문경=이성수 기자

[불교신문 2409호/ 3월15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