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成道와 涅槃 뒤엔 물이 있었네

출가한 뒤 고행 통해선 몸만 쇠약

목욕한 뒤 선정 들어 깨달음 얻어

카쿳다강에서 마지막 몸씻고 열반

마음의 때 벗는 상징으로 자리잡아

 <사진설명> : 연등축제 때 관불의식에 동참한 가족.

인간의 몸은 물이 70%를 차지한다. 지구도 70%가 바다다. 생물학은 인간이 물에서 진화해서 뭍으로 올라왔음을 입증하고 있다. 먹지 않고는 몇 달을 버틴 기록이 있지만 마시지 않고 버텼다는 기록은 없다. 물은 인간에게 공기와 더불어 생명과 같은 존재인 셈이다. 종교에서도 물은 중요하다. 종교에서 물은 성스러움 순결 깨끗함 거듭남 등 좋은 점을 상징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은 목욕후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뒤 성도에 이르렀으며 부처님 오신날 아기 부처님을 목욕하는 관불의식이 중요한 의례로 정착됐다. 불교에서 물이 상징하는 의미와 종교와 물에 관해 살펴본다.
 
부처님의 생애중 중요한 순간에는 꼭 물이 있었다. 부처님은 성문을 나선뒤 오랫동안 고행을 했지만 몸만 쇠약해지고 원하는 깨달음은 얻을 수 없었다. 부처님은 마침내 기존 종파에서 신봉하던 방식을 과감히 버렸다. 부처님은 나이란자나 강에서 목욕하고 수자타라는 처녀가 공양하는 우유죽을 먹었다. 건강을 회복한 부처님은 보리수 밑에서 선정에 들은 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부처님은 목욕으로 심신의 피로를 씻은 뒤 다시 힘을 내게 된 것이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도 카쿳다 강에서 마지막으로 목욕했다. 부처님은 보가나가라에 있는 아난의 정사에서 비구들에게 네 가지 거룩한 권위에 대해 설한 후 파바로 떠났다. 파바에서 금세공업자의 아들인 춘다(Chunda)에게 버섯요리 공양을 받고 심한 병에 걸렸다. 피가 섞인 설사가 계속됐다. 고통을 참으며 부처님은 제자들과 쿠시나가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부처님은 아난에게 목이 마르다고 말했다. 아난은 “부처님 이 시냇물은 지금 막 500대의 수레가 지나갔기에 물이 흐려 도저히 마실 수 없사옵니다. 다행히 조금만 더 가면 카쿳다 강이 있사옵니다. 그 물이라면 깨끗하고 맑고 시원해 마시기 좋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라고 말했지만 부처님은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난이 강에 도착하자 물은 맑게 변해 있었다. 아난은 “여래의 신통력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제 막 500대의 수레가 지나갔기에 물도 흐리고 물결도 가라앉지 않아야 하는데 이렇게 깨끗하다니?”라며 감격했다. 물을 마신 부처님은 “아난아 오늘 밤 여래는 쿠시나가라 근교 사라 나무 숲 속 한 쌍의 사라나무 사이(娑羅雙樹)에서 완전한 열반의 세계에 들것이다. 아난아! 이제 카쿳다 강으로 가자”고 말했다. 많은 비구들과 함께 카쿳다 강으로 간 부처님은 차안(此岸)에서의 마지막 목욕을 하고 사라나무 아래서 열반에 들었다.

 <사진설명> : 부처님이 열반전에 목욕한 곳으로 알려진 카쿳다강.
 
부처님은 병을 치료할 때도 물을 이용했다. 바이샬리에 기근이 들고 전염병이 들자 부처님은 아난존자에게 시켜서 발우에 물을 떠오게 한 후 그것을 뿌리면서 바이샬리 성을 한 바퀴 돌았다는 이야기가 〈아함경〉에 담겨있다. 〈과거현재인과경〉에는 부처님의 태자책봉식 때 강가에서 왕이 손으로 태자의 이마에 물을 끼얹고 ‘그대는 나의 후계자니라’하고 선언하자 하늘에서 ‘좋도다!좋도다!’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로부터 청작(靑雀) 500마리가 날아 내려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독교 성경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오는데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너는 나의 아들이라’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사분율〉에는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청결을 강조하면서 물로 손이나 몸을 씻도록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부처님은 화장실에 갔다 오거나 탁발하고 돌아올 때 혹은 다른 비구의 토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될 때는 반드시 손발을 씻어 청결을 유지하도록 했다. 가사도 비록 죽은 사람의 옷이나 버려진 옷을 입도록 했지만 세탁은 철저히 하도록 지도했다.

이와같은 내용을 살펴볼 때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수이면서 청결의 도구 였다. 즉 부처님 당시 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보다 일반적인 물의 기능에 충실했던 것이다. 이는 물을 성스럽게 여기는 브라만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부분이다. 부처님은 어느날 한 강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바라문이 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자고 권했다. 부처님은 모른 척하면서 왜 강물에서 목욕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성스러운 강에서 목욕을 하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 바라문은 “사문이여, 순리타카 강은 구원의 강이요, 깨끗한 강이며, 상서로운 강입니다. 만약 누구나 여기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업이 다 사라지게 될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강물도 사람의 죄업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 만약 그 강물에 목욕을 해서 죄업이 사라진다면 그 강물 속에 사는 물고기는 죄업이 하나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부처님은 “죄업을 깨끗이 하고 싶으면 오로지 청정한 범행(梵行)을 닦는 것이 옳다. 즉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 것이며,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 것이며,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 것이며,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우물물에 목욕을 해도 깨끗할 터이므로 굳이 갠지즈 강에 들어가 목욕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범행을 닦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갠지즈 강에 들어가서 목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죄업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즉 종교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부처님은 중시한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 들어오면서 물은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밀교의 관불(灌佛)의식이 대표적이다. 물은 또 마음의 때를 벗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불교의 깨달음은 흔히 마음의 때를 벗는 것에 비교한다. 그리하여 몸의 때를 벗는 목욕이 마음의 때를 벗는 상징적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사미율의〉는 목욕이 ‘눈이 밝아지고 몸이 청정해진다’고 했으며, 〈사분율〉도 목욕을 하는 이유는 진애(塵埃)가 끼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때를 씻는 것이라고 했다. 물은 또 병을 치유하는 기능으로도 작용해 관세음보살을 비롯 약사여래불 등은 물병을 든 모습을 띤다. 이처럼 불교에서 물은 청결, 성스러움, 깨끗한 마음, 치유 등 선한 상징을 대표한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물과 관련된 불교의식과 도구


관불의식(灌佛儀式)

향수-감로수로 아기 부처님 씻기며 성불 발원
 
관불의식은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이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을 상징하는 화단을 만들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그 가운데 부처님의 탄생 조각상을 안치한 뒤 작은 표주박으로 감로수를 떠서 부처님의 정수리에 붓는다. 형식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면서 차례로 공양을 올리고 향수와 감로수로써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면서 성불을 발원한다.

옛날 인도의 국왕이 왕위에 오를 때 사대해(四大海)의 바닷물을 그 정수리에 뿌려 축하하던 관정(灌頂)이 불교에 들어와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부처님 몸을 씻겨드린 물은 길상수(吉祥水)라 하여 성스럽게 받든다. 밀교의식이라 하여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부처님이 태어나자 천지가 크게 진동했으며, 모든 하늘 사람과 신들이 와서 시위를 했고, 두 용신이 덥고 찬 두 줄기의 물을 쏟아 내리어 몸을 씻겼다”는 내용이 담긴 〈수행본기경〉 등 여러 경전에서 근거를 찾지만 모두 위경(僞經)이다.

 
 
 
  물병(淨甁) 
 ‘육물’ 하나로 수행자 필수품

 
 <사진설명> :  물병든 관세음보살상.
 
부처님 당시 수행자가 지니고 다니는 물건 여섯 가지를 비구 육물이라고 하는데 옷 세가지와 발우 좌복 그리고 물병이었다. 그만큼 물은 수행자들에게 필수품목이었던 셈이다. 대승불교의 보살도 물병은 필수품이었다. 불교에서는 물병을 정병(淨甁)이라고 하는데 이는 단순히 물을 담는 물병 용도를 넘어 병을 치료하거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로 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래서 정병은 부처님 앞에 바치는 공양구에 포함되기에 이르렀으며 여러 보살들이 들고 있는 품목에도 들어가게 됐다.
 
 정병을 들고 있는 보살은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고 친근감을 갖는 관세음보살이다. 부처님 일생을 그린 팔상도 중의 하나인 수하항마상에는 부처님이 정각(正覺)에 드는 것을 방해하려는 마왕 파순과 그의 군대가 석존 앞에 놓인 물병을 밧줄로 감아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물병이 바로 정병이다.


타종교에서 물은…



유대교 모세 율법 ‘목욕은 청결’

‘속죄의 날’ 풍습서 대중탕 유래

초기 기독교에선 더러움 상징해

고대 유대교는 모세 율법에서 목욕을 청결로 못박고 있다. 유대교의 대축제일인 욤 키푸르(속죄의 날)를 맞이하기 위해 반드시 목욕을 해야했다. 이 때문에 대중목욕탕인 미크바가 생겨나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목욕을 사치 물질주의 도를 넘어선 관능주의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더러움의 상징으로 여겼다. 자기 몸을 씻지 않는 것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자기부정의 경건한 행위로 여겼다. 그렇게 해서 몸에 병이 생기면 그것이 바로 죄를 회개하는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이는 로마인들이 전파시킨 대중목욕탕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 아그네스라는 어린 성인은 8년동안 얼굴을 씻지 않았다고 한다. 이같은 목욕에 대한 거부감은 중세 시대 내내 이어졌다. 십자군 원정후 이슬람 문화를 접하면서 로마 시대 사라졌던 목욕탕이 다시 생겨났지만 공중 목욕탕은 매춘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슬람은 목욕을 세련과 쾌락 휴식의 정수로 받아들였다.

과거 네팔은 고행의 일종으로 연못에 들어가 있었던 적이 있으며 현재는 연못에 들어가 있는 동안 태양신에게 축복을 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의식을 시작하기전에 남녀 사제들은 그들의 손과 머리에 물을 부어 성스러운 소독제로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영적으로 정화시키기 위해 물을 사용했다. 이들은 갓 태어난 아기를 목욕시키는 것을 세례의식으로 삼았는데 이는 기독교 세례식과 비슷하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교회에 입문할 때 머리에 물을 뿌리거나 수통에 물을 담아 몸을 완전히 빠트렸다가 꺼내는 세례를 한다.

[불교신문 2305호/ 2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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