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성한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일어서
올바른 걸음을 내딛자

김동일 논설위원ㆍ동국대 일산한방병원장
김동일 논설위원ㆍ동국대 일산한방병원장

예전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야 하는 때가 더러 있었다.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하거나 입장이 비루하여 빌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공손히 경청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릎을 꿇는 것이 관절에 가해지는 엄청난 부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날바닥이라도 기꺼이 참을 수 있었고, 방석이 있는 곳이라면 한참 동안이라도 견딜 수 있었다. 방석은 무릎을 이루는 뼈가 날바닥과 충돌하는 것을 막아주는 고마운 완충이었던 셈이다.

나이가 들면 꼭 필요한 것이 벗이고 연골이라는 말도 있다. 관절의 기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연골이 연결된 뼈들을 완충해줘야 하므로 거동은 곧 정상적인 연골 구조와 관절 기능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연골이 닳거나 염증으로 생기는 관절질환이 가장 빈번한 곳으로 무릎을 들 수 있다. 무릎은 넓적다리뼈와 정강이뼈 및 무릎뼈가 만나 이루는 관절이다. 뼈가 맞닿는 부분에는 관절강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신체의 관절 공간 중 가장 크며, 그 사이의 연골이 각 뼈의 표면을 감싸고 있으며, 활액막 또한 관절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무릎관절을 이루는 뼈들은 튼튼한 섬유다발인 인대와 근육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고 고정된다. 무릎관절은 다리를 굽히고 펴며 돌리는 기능을 하여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머리부터 허리까지 가해지는 체중을 고관절과 함께 자연스럽게 완충해서 발목과 발바닥에 가해지는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무릎은 몸의 고마운 바퀴이며 방석인 셈이다.

지난해에 다시 병원장 소임을 맞고는 조바심에 딱딱한 구두를 신고 분주하게 병원 이곳저곳의 콘크리트 바닥을 걷다가 왼쪽 발바닥에 탈이 났다. 30대 시절에 다친 적이 있는 오른쪽 무릎 탓에 나도 모르게 왼발에 체중을 더 실었던 모양이다. 발이 아프니 어쩔 수 없이 밑창이 무른 신발로 바꾸고 왼발을 아끼며 오른발에 힘을 주고 걷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더니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고 오른쪽 허리도 시큰거리는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 아픈 부위가 옮겨가는 것은 예견된 일이고 나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하는 것과 몸이 불편을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어디에 힘을 실어야 할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민하지만 결국은 몸이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다.

갈등이 넘치는 시절이다. 뼈와 뼈들이 부딪치고, 뼈와 살이 다투며, 뼈와 힘줄이 돌아섰다. 지탱해야 할 몸을 잊고, 두 발로 가야할 지향을 외면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은 시 ‘무릎’에서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너도 무릎을 꿇어야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라고 하였다.

무릎이 성한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무릎을 꿇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일어서 올바른 걸음을 내딛자.

[불교신문 3814호/ 2024년 4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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