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정성껏 ‘살아내면’ 행복하고 평온한 삶

1981년 산울림이 발표한 7집 앨범에는 ‘청춘’도 수록됐다.
1981년 산울림이 발표한 7집 앨범에는 ‘청춘’도 수록됐다.

# 청춘도 지나간다

흔히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육체는 노화로 인해 주름이 늘어나지만, 마음만은 젊게 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노인 분들의 이러한 노력에 딴죽 걸 생각은 전혀 없다. 삶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오히려 존경과 찬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지나치면 얘기치 않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몸과 마음의 간극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과도한 성형 수술의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나이든 몸이 젊은 마음을 따라가다 생긴 현상이다.

이처럼 늙은 몸과 젊은 마음 사이의 괴리는 때로 젊음에 대한 집착을 낳고 고통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불교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기 위한[이고득락(離苦得樂)]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젊음과 늙음에 대한 문제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산울림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통해 이 문제를 성찰해보기로 하자.

산울림은 1977년 김창완과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가 결성한 가족 밴드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만들면서 학창 시절을 보낸다. 대학 시절에는 무이(無異)라는 이름으로 제1회 대학가요제 교내 예선에 참가하는데, ‘문 좀 열어줘’라는 곡을 불러 1등을 차지한다. 하지만 당시 맏형인 김창완은 이미 졸업한 상태였기 때문에 재학생만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에 걸려 출전 자격이 취소되고 대신 샌드페블즈가 참가하여 ‘나 어떡해’라는 곡으로 우승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대상을 받은 곡 역시 산울림의 김창훈이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후 산울림은 그동안 만든 곡을 모아 <산울림 새노래 모음>이라는 음반을 발표하는데, 뜻밖에도 40만 장이 넘게 팔리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니 벌써’라는 노래가 타이틀곡으로 실려 있다. 2007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5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인정받은 음반이기도 하다. 이듬해 발표한 2집 역시 큰 성공을 거두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나 어떡해’ 등이 수록된 앨범이다. 이 음반 역시 1집에 이어 100대 명반 6위를 차지한다. 이처럼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두 개의 앨범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산울림이 유일하다고 한다. 대중과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산울림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해체와 재결성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리더인 김창완이 솔로와 밴드 활동을 병행하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간다. 그런데 2008년 1월 막내인 김창익이 캐나다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계기로 밴드 산울림은 완전히 해체된다. 당시 김창완은 산울림은 가족 밴드인데 막내가 사망했으므로 산울림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전설적인 밴드는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맏형인 김창완은 가수뿐만 아니라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어서 대중들은 산울림이라는 이름을 여전히 추억하고 있다. 그들의 주옥같은 히트곡들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산울림은 일반적인 가요와는 달리 ‘개구쟁이’나 ‘산 할아버지’와 같은 동요 느낌의 곡들도 발표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오늘날 아이유를 비롯한 여러 후배 가수들은 산울림의 곡들을 새로운 느낌으로 재해석하여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

오늘의 노래인 ‘청춘’은 1981년 발표된 산울림 7집에 수록된 곡이다. 청춘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풋풋함이나 삶의 역동성보다는 젊음이라는 시간도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흘러갈 뿐이라는 다소 허무적인 느낌이 나는 노래다. 김창완이 28세 때 아들 돌잔치를 했는데, 문득 자신의 청춘도 다 지나갔다는 허무한 마음이 일어서 방에 들어가 30분 만에 만든 곡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내 젊은 영가’를 비롯하여 ‘가고 없는 날들’, ‘날 버리고 가는 세월’, ‘허전한 마음’ 등 ‘청춘’이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노래는 오래 전에 발표되었지만,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응답하라1988>의 OST로 삽입되면서 젊은 층에게도 널려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음색 깡패’인 가수 김필의 매력적인 소리가 입혀져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가사를 음미해보자.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 빈 손짓에 슬퍼지면 /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 날 두고 간 님은 용서하겠지만 /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 정답던 옛 동산 찾는가”

# 청춘과 나이 듦에 대하여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청춘’은 제목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노래다. 아마 가수는 청춘의 러닝 타임이 끝났다는 생각에 구슬프고 허전한 마음이 일었던 것 같다. 가는 세월을 잡으려 애써보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자신을 버리고 간 연인은 용서하지만, 가는 세월은 정둘 곳도 없고 허전할 뿐이다. 이때 가수에게 작은 깨달음이 다가온다. 가는 세월은 잡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보내고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월은 본래 그렇게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허전한 마음이 밀려드는 것은 가수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는 삶과 죽음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따라붙는 상념이 아니던가.

이와는 달리 싯다르타는 출가 전 청춘에 대한 허무함이 아니라 교만이 앞섰던 것 같다.왜 아니 그랬겠는가. 왕자라는 신분으로 태어나 최고의 환경에서 생활하고 아름다운 부인과 아들을 두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자신은 늙지 않고 지금의 행복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는 무상(無常)의 위력을 간과한 착각이었다.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훗날 무상의 이치를 깨친 붓다는 젊은 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범부는 스스로 늙어가면서 남이 늙은 것만 보고 자신의 일은 잊은 채 그 늙음을 혐오한다. 자신 또한 늙어 가는 몸이다. 아직 늙음에서 벗어날 길을 모르면서 남의 늙음을 혐오해도 되는가? 이는 결코 마땅한 일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내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내 청춘의 교만은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

<유연경(柔軟經)>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청춘과 나이 듦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느 정도 양면성을 지닌다. 그래서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은 새로운 어떤 것을 얻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낮을 잃었다는 것은 밤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밝음과 어둠, 태양과 노을, 기쁨과 슬픔 등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얻으면 좋아하고 잃으면 싫어한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우리들의 시선이 ‘잃었다’는 한 쪽에 쏠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얻었다’는 방향으로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많은 이들이 청춘을 찬양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얻었다는 쪽에 배팅을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늙음을 싫어하는 것은 청춘을 잃었다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어서 그렇다. 따라서 나이 드는 현상을 늙음이라는 새로운 인연과 만났다고 생각하면 좀 더 낫지 않을까.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고 하지 않았던가. 생각이 바뀌면 삶의 내용과 의미도 달라진다.

청춘은 근육이 만들어낸 인연의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고 건강하며 싱싱한 에너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이러한 푸르른 청춘도 언젠가는 소멸하고 만다. 가수가 청춘을 허무하게 바라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근육의 시간이 끝나면 건강하던 육체는 점점 시들어가고 혈압이나 당뇨 등 성인병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근육이 아니라 주름이 만들어낸 인연의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슬퍼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근육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 주름이라는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주름은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압축된 상징적인 표상이다. 그 흔적에는 살면서 맺은 수많은 인연들이 담겨있다. 예컨대 선생님의 주름에는 학생과의 인연이 담겨있고 상인의 주름에는 고객과의 인연이, 어부의 주름에는 바다와의 인연이 새겨져있다. 그 주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름을 근육의 상실로 인한 노화현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주름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찬양을 할지언정 회피나 폄하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예전에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이 더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청춘과 나이 듦에 대한 시각이 변했다는 방증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박경리 작가의 <옛날의 그 집>에 있는 구절이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청춘이 열심히 일하면서 무언가를 채워가는 시절이라면, 늙음은 여유를 가지고 비워가는 시간이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을 정성껏 살아내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 나이와 관계없이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다이내믹한 무상의 흐름 속에 우리 자신을 맡겨보자. 젊음에 대한 교만도, 나이 들어 갖게 되는 허무함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렇게 살면 멋진 인생이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불교신문 3810호/2024년3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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