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을 하지 않으면 인과를 벗어나지 못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진은 영축총림 통도사. 장용준 기자  jyjun@ibulgyo.com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을 하지 않으면 인과를 벗어나지 못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사진은 영축총림 통도사. 장용준 기자  jyjun@ibulgyo.com

제15화 결정된 일을 왜 인정하지 못하는가

결정설표진승(決定說表眞乘)
유인불긍임정징(有人不肯任情徵)

결정된 말씀과 참됨을 나타낸 법을
어떤 사람은 인정하지 않고 정에 매달려 따름이라.

[강의]

이 구절은 영가(永嘉)스님께서 노파심에서 하신 말씀이다. 결정된 말씀인 결정설(決定說)은 마음을 깨쳐야 성불(成佛)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깨치려면 표진승(表眞乘)의 참됨을 나타낸 법을 깨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정설(決定說)인 표진승(表眞乘)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설명해 왔듯이 하나는, 일체가 모두 허깨비와 같다는 공(空)함을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체가 모두 인과(因果)와 연기(緣起)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으로서, 음양(陰陽)과 같이, 또는 주야(晝夜)와 같이, 고락(苦樂)과 같이, 서로 다른 두개의 모습이 번갈아 나타나는 인과(因果)의 현상을 말함이다.

그러니 모두가 공(空)하여 그 무엇도 온전한 것 하나 없는 무상(無常)일 지니, 집착하거나 연연할 것이 없다는 것을 진실로 알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결국 사라지고 없어지니,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인과(因果)로서 욕심을 내면 낼수록, 즐기면 즐길수록, 그와 똑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과법(因果法)을 여실히 깨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를 믿고 실천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오욕락(五慾樂)이라는 정(情)에 매달려서 스스로 고통과 괴로움을 만들어 내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매한 짓인가 하고, 영가(永嘉)스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신다.

깨치지 못한 무지몽매한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감정의 기분에 의해서 살아간다. 기분이 좋고 마음에 드는 것과, 기분이 나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이 두가지 고락(苦樂)의 업(業)에 끄달려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 정(情)이라 한다.

정(情)이 많은 사람은 즐거움도 많고 괴로움도 많다. 즐거운 만큼 괴로움도 똑같이 생기는 것이 인과(因果)의 법이니, 사랑이 깊으면 미움과 증오도 깊은 것이다.

인과(因果)란, 꼭 그 당사자나 똑 같은 일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한 사람을 지독히 사랑하다가 그 사람에 의해 배신을 당하여 증오와 미움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이 미우면 그 자식도 밉게 보이는 경우가 있듯이, 종로에서 뺨 맞고 강남에서 화풀이 한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경우도 많이 나타난다.

인과(因果)는 기본적으로 크게 나누어 고락(苦樂)이라고 하는 상반된 감정인 두가지 정(情)의 기분을 말하는데,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정을 기분 좋게 느꼈다면, 그에 상응하여 똑 같이 괴롭고 슬프고 불행한 정(情)이 기분 나쁘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업식(業識), 업장(業障), 업연(業緣), 업인(業因), 업과(業果)라고 한다.

그러므로 즐겁고 기분 좋은 때의 인연이 있었던 만큼, 괴롭고 기분 나쁜 때의 인연이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고 했다. 다만, 이 두 가지의 업(業)이 언제 어느 때 누구를 대상으로 오고 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때로는 사람에 의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일을 하면서 성공과 실패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분이 좋고 나쁜 고락(苦樂)의 업(業)으로 나타난다.

아무튼 어떤 때는 좋은 일과 좋은 사람을 만나므로 기분이 좋지만, 어떤 때는 나쁜 일과 나쁜 사람을 만나므로 기분이 나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위에서 적시한 자신의 고락(苦樂) 업(業)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연히 좋은 일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우연히 나쁜 일과 나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니, 이는 철저히 스스로의 고락(苦樂) 업(業)에 의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자업(自業)의 현상이므로, 밖으로 나타난 일과 만나는 사람을 보고 시시비비(是是非非)하는 것은, 그림자를 보고 좋다 싫다 시비하는 것과 전혀 다름이 아니다.

그러니 모든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情)이라는 업식(業識) 즉, 스스로의 고락(苦樂) 업(業)에 끄달려 인과(因果)를 계속하게 됨이니, 밖으로 나타나는 인연이 좋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정(情), 자신의 고락(苦樂) 분별(分別), 인과(因果)의 업(業)을 소멸시키는 것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을 하지 않는 이는, 스스로의 업(業)인 고락(苦樂) 인과(因果)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情)에 끄달려 살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제16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직절근원불소인(直截根源佛所印)
적엽심지아불능(摘葉尋枝我不能)

근원을 바로 끊는 것은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바요,
잎 따고 가지 찾는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로다.

[강의]

근원(根源)을 바로 끊는다는 뜻은 곧, 그 어떤 무엇이든, 집착하는 마음을 끊고 분별(分別)하는 마음을 끊어버리면 일체의 근원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이는 바로 부처님께서 가르치는 바를 실행하는 것이 되니, 잎을 따고 가지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지엽적인 일에 매달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러면 좋을까, 저러면 더 좋을까, 하는 집착과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않는다면, 나머지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잎을 따고 가지를 찾는 일이란, 매 순간 감정에 끄달려서 좋다 나쁘다, 얻었다 잃었다, 자존심을 세운다 상한다, 웃고 우는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엽적인 일이라고 하는 것에는 인과(因果)가 따르기 마련이어서, 웃을 수 있는 일이 많을수록 많이 울게 되는 과보(果報)를 받게 되고, 얻으면 얻을수록 잃게 되는 과보(果報)가 따르며, 욕심을 내면 낼수록 고통과 괴로움의 과보(果報)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잎을 따면 그 잎이 다시 돋아나고, 가지를 치면 그 가지가 다시 생겨나지만, 나무의 근원인 뿌리를 끊으면 걸리적거리는 나무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이 같은 뿌리의 근원은 바로 집착과 분별심(分別心)입니다.

마음에 들거나, 좋거나 하는 것에 집착하게 되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나쁜 것이 과보(果報)로 나타나서, 반드시 그러한 일이 현실로 인연 지어지게 되므로, 이는 좋다 나쁘다 라고 하는 분별심이 바탕이 되는 것이니, 좋고 나쁜 분별심으로 나누지 말고, 이런 모습 또는 저런 모습으로 구분하는 습(習)을 길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나에게 욕을 하거나 위해(危害)를 가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이를 나쁘게 생각하여 방어하는 차원에서 같이 화를 내고 싸우게 된다면, 더 큰 시비(是非)의 감정으로 마음을 상하게 됩니다.

이는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화를 낸 업식(業識)이 아뢰야식(阿賴耶識-잠재의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인과(因果)의 과보(果報)로 인하여 비슷한 일이 계속 발생하게 되어, 또 다시 감정이 격하게 되고 기분이 나빠지면서 화를 내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지엽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럴 때는, 상대방이 욕하는 것을 좋고 나쁜 분별심(分別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이런 모습도 있구나 하고 분별심을 자제하면서 감정을 일으키지 않아야 됩니다. 이는 욕을 하는 상대가 분별심이 작용하여 스스로 마음이 상해서 나오는 현상이므로, 이를 내가 참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업(業)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입니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해 참기 어려운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편안하느냐 불편하느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내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옳지 못한 것에 대해 참기 어렵게 되어 화가 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옳은 것은 그름이 있기 때문이고, 그름은 옳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 옳고 그른 시비(是非)는 끊임없이 반복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이러한 분별심으로 인하여 좋고 나쁜, 편하고 불편한 분별로 반복하여 이어지는 것이므로,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따라서 옳은 것은 이런 모습으로, 그른 것은 저런 모습으로, 그저 구분하여 생각하고 보는 중도(中道)의 마음으로 대할 뿐, 옳은 것에 집착하거나, 그른 것에 집착하는 것은, 마치 아이들이 서로 토닥거리는 것에 대해 굳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듯이, 매우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있어서 인과(因果)의 흐름으로 보고, 웬만하면 좋고 나쁜 고락(苦樂)과, 옳고 그른 시비(是非)의 분별심으로 대하지 않는 습(習)을 길러서, 모든 일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 생각하고, 걱정 근심 접고 집착하거나 분별하지 않으며,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모두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때로 가끔,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을 곁들인다면 집착과 분별심을 제어할 힘이 생길 것입니다.

총무원장 진우스님
총무원장 진우스님

[불교신문 3810호/2024년3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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