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스님은 1970년 운문사 승가학원 강사로 취임. 1977년부터 운문사 주지 겸 학장으로 주석하면서 2023년 현재까지 2200여 명의 졸업생과 23명의 전강제자를 배출하는 등 비구니 수행과 교육에 헌신했다. 사진은 청도 운문사에서 학인 교육에 전념하던 젊은 시절 명성스님 모습. 사진제공=불광미디어
명성스님은 1970년 운문사 승가학원 강사로 취임. 1977년부터 운문사 주지 겸 학장으로 주석하면서 2023년 현재까지 2200여 명의 졸업생과 23명의 전강제자를 배출하는 등 비구니 수행과 교육에 헌신했다. 사진은 청도 운문사에서 학인 교육에 전념하던 젊은 시절 명성스님 모습. 사진제공=불광미디어

 

2200명 넘는 제자 양성
현대 비구니역사 산증인

생생한 구술과 회고로
집대성한 수행 이야기

“비구니사 증언 사료집”
‘명성스님 수행록’ 출간

 

명성스님 수행록(김광식 지음/불광출판사) 
명성스님 수행록(김광식 지음/불광출판사) 

“지금껏 운문사에서 출가자로 50년 이상을 살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2000여 명이 넘는 제자들이 한국불교를 위해 여러 곳에서 여러 불사를 이어가면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보람은 그 제자들이 이제는 저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육의 보람이고, 스승으로서의 보람이지요.”

올해 세수(世壽) 94세 ‘한국 현대 비구니사의 산증인’ 청도 운문사 회주 명성스님이 자신의 일대기를 직접 회고하고 서술한 귀중한 자료집이 출간됐다. 화제의 책은 한국 근현대 불교사 연구 전문가 김광식 박사가 증언을 직접 채록해 정리한 <명성스님 수행록>(불광출판사).

청도 운문사를 세계적인 비구니 교육도량으로 일궈낸 명성스님은 한국 비구니 역사의 산증인이자 비구니계의 큰 별로 존경받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비구니 스님 6000여 명 중 2200여 명이 운문사승가대학을 거쳐 간 명성스님의 제자이다. 또한 스님은 2007년 조계종 비구니 최고 법계(명사)를 받은 큰 어른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08년 UN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탁월한 불교 여성상’(OWBA)을 수상하는 등 세계 불교계의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명성스님은 1930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1952년 합천 해인사 국일암에서 선행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58년 순천 선암사에서 성능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고, 선암사와 서울 청룡사 강원 강사를 거쳐, 1970년 운문사 승가학원 강사로 취임했다. 1977년부터 운문사 주지 겸 학장으로 주석하면서 2023년 현재까지 2200여 명의 졸업생과 23명의 전강제자를 배출하는 등 비구니 수행과 교육에 헌신했다. 아울러 40여 동에 이르는 전각과 요사채를 신축, 증축, 보수하여 운문사를 전국 최대 규모의 비구니교육기관인 운문승가대학으로 발전시켰다.

명성스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비구니가 비구니로부터 전강을 받는 전통을 만들어, 한국 비구니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83년 평소 존경했던 수옥스님(금룡·혜옥스님과 함께 근대 3대 비구니 강백 중 한 사람) 법제자로 위패 건당을 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만들고, 1985년 흥륜·일진스님 두 제자에게 전강을 함으로써 기둥을 만들었다. 비구니 강사가 배출돼 비구니를 직접 가르치는 여법한 비구·비구니 ‘이부승(二部僧) 제도’가 되살아났으니, 끊어졌던 강맥을 복원시킨 명성스님의 업적은 더욱 빛을 발했다.

“조계사에서 전국승려대회가 열렸는데 승려대회가 열린 조계사 법당에서 구산스님이 혈서를 써서 대중들에게 보여 주었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구산스님의 혈서를 사진 찍은 것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때 조계사에서 정화운동에 참석한 스님 수백 명이 단체로 조계사 법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최근 <불교신문>에 그 당시 정화운동 현장인 조계사 법당 앞에서 찍은 사진이 나왔는데, 그 사진(1955. 8)을 자세히 보니깐 저도 그 사진에 나오더라고요. 제가 그런 사진을 찍을 때 빠질 리가 없지요. 정화운동 당시에 비구 스님보다 비구니들이 더 많이 참석했습니다. 비구니들이 정화운동에 공로가 많아요.”(본문 68쪽)

서울 청룡사 비구니 수계법회 기념 촬영(1968.9.17). 당시 수계법사인 일타, 석주, 자운, 구산, 혜암스님이 보인다. 청룡사 주지 윤호스님과 강사였던 명성스님도 나온다. 청룡사에서의 비구니 교육(1965~1968)은 전국비구니회의 전신인 우담바라회 출범의 단초가 되었는데, 명성스님이 주역으로 활동했다. 사진제공=불광미디어
서울 청룡사 비구니 수계법회 기념 촬영(1968.9.17). 당시 수계법사인 일타, 석주, 자운, 구산, 혜암스님이 보인다. 청룡사 주지 윤호스님과 강사였던 명성스님도 나온다. 청룡사에서의 비구니 교육(1965~1968)은 전국비구니회의 전신인 우담바라회 출범의 단초가 되었는데, 명성스님이 주역으로 활동했다. 사진제공=불광미디어

책에는 1950년대 정화운동 당시 상황과 1960년대 교도소 재소자 교화활동, 순천 선암사 강원에서의 공부, 서울 청룡사에서 우담바라회 출범과 비구니 200여 명 수계 주선, 전국비구니회 회장으로서의 활동 등 실록으로 전할 만한 비구니사가 곳곳에 배어있다. 또한 속가 부친인 관응스님을 비롯해 탄허, 경봉, 법정, 광우, 묘엄 등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빛낸 큰스님들과의 인연담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비구니 스님들은 실력이나 여건 등 모든 방면에서 전 세계 불교 여성 수행자들을 이끌어 가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장부(丈夫)이면 나도 장부’라는 당당한 마음, 자긍심을 갖고 수행과 포교를 이끌어 가는 비구니 스님이 되길 바라지요.”(본문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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