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가야산에 오르면 보물 제222호 마애불입상을 만날 수 있다. 소나무와 청솔모, 호랑나비떼와 어우러진 마애부부처님의 당당한 기세가 가야산과 닮았다.
홍류동계곡따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진분홍색 진달래도 앞다퉈 춤춘다. 멀리 쌀자루를 이고 가는 노파의 굽은 허리가 보인다. 봄계곡의 물소리는 봄기운에 찰랑거리고, 한여름 유월 소의 느린 걸음처럼 가야(Gaya; 소를 뜻하는 범어)의 봄은 완연했다.

해인사 일주문을 그냥 지나쳤다. 율원을 지나 가야산에 입산했다. “가야산 우두봉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1시간이면 족합니다.” 소녀처럼 맑은 얼굴을 가진 학승은 속인의 말에 낯을 가리듯 답했다. 상왕봉 언저리에 있다고 하는 석조여래입상은 어디로 가야 가장 빠른지, 중봉에 있는 마애불에서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삼갔다. “1시간이면 족하다.”는 스님의 말에 해답이 있으리라.

등산로 초입에서 500m 들어가니 산불통제소가 나온다. 가야산의 최고봉인 칠불봉은 여기서 3.5㎞. 가야산을 등반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마애불입상은 약 2㎞ 거리에 있다. 토신골을 거쳐 마애불로 가는 지름길이 있지만, 자연휴식년이 걸려 돌아갈 밖에.

진달래꽃과 기암괴석 푸른 소나무 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봄의 가야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다. 가야산의 호랑이 성철스님도 다 헤진 고무신을 신고 이 길을 포행했으리라. 굽이치는 맑은 계곡과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철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활엽수와 울창한 침엽림이 어울리는 가야산은 9000여 수종(樹種)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서도 바람소리 물소리 목탁소리와 어우러진 노송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못생긴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조계종 전 종정 혜암스님의 일갈이 이제야 귀에 들린다.

“1시간이면 족하다”는 스님 말에 산에 오른다

바람·물·목탁소리 들으며 경쾌한 탈속의 산행

일곱왕자 전설 어린 석조여래상 참배후 다시 속세로…


보물 제222호 마애불입상은 가야산 산세와 어울린다. 이마가 좁고 인중이 짧아 둔중한 느낌을 주지만 신체가 당당하고 균형을 잃지 않는 기세가 가야산을 닮았다. 불상 앞 흔들리는 촛불과 유유히 타는 향은 이른아침 참배객의 온기로 전해진다. 부처님 앞에서 재롱을 떠는 청솔모는 여래상 머리위를 휘휘 돈다. 어딘가에서 몰려온 호랑나비떼는 ‘겁 없이’ 불상위를 날아다닌다. 마애불에 삼배하고 산에 올라 헬기장을 거쳐 중봉인 봉천대까지 오른다. 여기서부터 고행이다. 거친 바윗길을 헤치고 깊은 계곡물을 건너면서 아직 대다수 해인사 스님들도 가본적이 없다는 석조여래입상을 찾아간다.

가야의 일곱왕자가 지리산 칠불암을 가는 도중에 해인사에 1명의 왕자만 남고 여섯왕자만 돌아갔다는 전설이 여린 곳이다. 그는 왜 혼자 거기 남아있을까. 최고봉을 300여m 남겨놓고 혼자 남은 왕자를 찾았다. 목부분이 잘렸고 발과 대좌도 없어졌다. 2m의 키에 양팔을 몸에 붙이고 반듯이 선 자세가 어색하다. 먼 산을 바라보는 눈매엔 까닭모를 그리움이 흐른다. 등산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정상을 눈앞에 두고 흥분된 어조로 말씨름에 여념이 없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형제를 버리고 부귀공명을 등지고 세상 앞에 우뚝 선 부처님이 있지만, 그들은 오직 산 정상에 오를 생각에만 차있다. 석조여래상을 묵묵히 지켜주는 것은 불상 아래편에 흐르는 계곡물속의 도롱뇽이 전부다.

사진설명: 해인사 홍류동계곡
정상을 등지고 하산에 든다. 가파른 가야산은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반대편 서성제와 백운동으로 산을 내려오면 해인사보다 더 큰 도량으로 이름을 떨쳤던 심원사지와 용기사지를 만날 수 있다. 3층석탑을 남기고 있는 심원사지는 현재 복원이 시작됐고 용기사지는 아직 용(龍)의 기(氣)만 남겨져 있다. 지금의 해인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삼존불은 바로 이 용기사에서 모셔온 부처님이다.

산을 내려와 해인사에 들었다. 대장경 축제로 경내는 무수한 중생들로 들어차 있다. 부처님도 몸살이 난 듯, 사람들 속에 파묻혀 신음하고 있는 듯했다. 5시간동안 가야산을 오르내리면서 지친 심신에 부처님을 만났기 때문일까. “1시간이면 족하다.”며 5시간 전에 만난 그 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가야산을 알고 느끼고 깨닫고 사랑하기엔 1시간이면 충분했다.

합천=하정은 기자 jung75@ibulgyo.com


[가야산 산행]

제1등산로 13.8㎞·소요시간 4시간40분
신부락 2㎞ → 해인사 300m → 용탑선원 2.5㎞ → 능선 갈림길 1.5㎞ → 정상 1.5㎞ → 능선 갈림길 1㎞ → 마애불 입상 3㎞ → 해인사 2㎞ → 신부락
제2등산로 총 등산로 18.3㎞ ·소요시간 6시간50분
신부락 2㎞ → 해인사 300m → 홍제암 4㎞ → 두리봉 4㎞ → 정상 2㎞ → 남릉안부 4㎞ → 해인사 2㎞ → 신부락


[교통안내]

버스편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대구 4시간 소요. 대구 서부터미널서 해인사행 직행버스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7시까지 20분마다 있고 1시간30분쯤 가면 해인사 아랫마을인 ‘신부락’에 도착. 해인사까지 걸어서 25분 소요.
기차편 경부선 동대구 하차.
자동차 경부고속도로로 달리다가 대구시 부근에 이르면 대구시로 들어가기 전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해인사’ 표시가 된 길로 진입한다. 이 분기점에서 해인사까지는 1시간 30분쯤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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