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 자취어린 ‘나한기도도량’

기도영험 뛰어난 ‘오백나한절’ 사시사철 기도객 발길

사진설명: 3일간 정성껏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526나한님들이 계신 영천 거조암.
고려중기 조성된 오백나한상이 봉안돼 ‘오백나한사’(五百羅漢寺)로 유명한 거조암(居祖庵. 주지 돈명스님)은 우리나라 제일의 나한기도도량이다. “어리석은 중생이라도 3일간 거조암 영산전에서 정성껏 기도 올리면, 뜻하는 바가 성취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알아주는 나한기도도량이 바로 거조암. 팔공산 깊은 산자락에 있지만, 사시사철 기도 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북 영천군 청통면 신원동 팔공산 동쪽기슭에 자리한 거조암의 창건은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한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693년(효소왕 2) 창건설, 738년(효성왕 2) 창건설, 742년∼764년 사이의 ‘경덕왕대 창건설’ 등이 그 것.

693년 창건설과 738년 창건설은 모두 원효대사와 관련이 있다. 전국을 주유하던 원효대사가 이곳에 들러 형세의 뛰어남을 보고, 사찰을 창건했다 한다. 그러나 원효대사는 686년(신문왕 6) 이미 입적했으므로, 역사적으로는 맞지 않는 면이 있다. 경덕왕대 창건설은 은해사 사적비에 전하는 사실로, 비교적 신빙성이 있다.

경덕왕 대 창건된 거조암은 이후 기나긴 법등(法燈)을 끊임없이 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거조암은 몇 가지 점에서 한국불교사에서 주목되는데, 첫 번째는 기도영험이 특출하다는 점. 나한상 수가 526위(부처님 십대제자10+16성중+500아라한)라 ‘오백나한 절’로 불려지지만, ‘종교·신앙적으로 각각의 나한님 모두가 영험을 갖고 있다’고 오백나한 절로 애칭(愛稱)된다. 사전(寺傳)에 의하면 1298년 정월에 원참스님이 밤중에 낙서(樂西)라는 도인을 만나 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과 극락왕생의 참법을 전수받은 후, 미타기도도량으로도 크게 부각됐다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거조암은 주목받는다. 고려불교를 선도했던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스님이 바로 거조암에서 정혜결사를 시작했다. 침체일로를 걷던 당대 고려불교를 혁신하고, 한국불교에 길이 빛날 업적을 남긴 보조국사가 이 곳에서 정법당간(正法幢竿)을 높이 세웠던 것이다. 한국건축사적인 입장에서도 거조암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고려 우왕 1년(1375)에 창건된 영산전(靈山殿. 국보 제14호)이 있기 때문.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축물로는 거조암 영산전을 비롯 예산 수덕사 대웅전(1308), 부석사 조사당(1377) 등이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에도 거조암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겪었다. 조선시대인 1530년(중종 25)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거조암’이 전하고, 영산전 보수 과정에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보이는 ‘법당의 중수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기록 등이 이를 증명한다.

1785년(정조 9)에 영산전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를 조성했지만, 1799년(정조 23) 편찬된 〈범우고〉 ‘거조암조’엔 ‘절터만 남아있다’고 적혀있는 것도 거조암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아마도 1786년에서 1799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폐사됐다고 짐작되는데, 조선 말기 급변하는 정세 속에 외부의 영향을 받아 황폐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쇠하면 흥하는 법. 거조암 사격(寺格)은 영파성규(影波聖奎, 1728∼1812)라는 거장(巨匠)을 만나 다시금 부흥된다. 영파스님은 1805년(조선 순조 5) 영산전의 오백나한상에 일일이 ‘이름’을 붙였고, 이로 인해 거조암은 옛 영광을 회복할 수 있었다. 현주지 돈명스님의 부임(2000년) 이후 거조암 사격은 다시 한번 크게 일신(一新)됐다.

돈명스님은 현재 거조암 진입로를 2차선으로 확장하고, 2층 누각인 영산루와 국사전(영산전 오른편) 건립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년 6월쯤이면 영산루와 국사전 건립 불사가 마무리되고, 사찰 진입로 확장(2차로)공사도 끝난다”고 밝힌 돈명스님은 “가을에는 거조암 뒤편에 있는, 보조국사가 정혜결사를 실행했던 유적지(遺跡址)를 발굴조사하고 복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불사가 순조롭게 마무리돼, 거조암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한기도도량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인터뷰] 거조암 주지 돈 명스님

“우리나라 대표하는 나한기도도량”


“거조암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한기도도량 입니다. 이 곳에서 3일간 정성껏 나한님께 기도하면, 나한님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줍니다. 526위(位)나 되는 나한님들의 표정이 각기 다르며, 다른 만큼 영험도 다릅니다.”

거조암 주지 돈명스님은 “거조암 나한님은 세계적인 보물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한님”이라고 강조했다. 거조암 주지로 부임한 돈명스님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영산전 중수와 ‘나한님 원형 찾아주기’였다. 40∼50년 전 526위의 나한상에 페인트가 칠해져 원래 모습을 잃어 불자들을 안타깝게 했던 것. 원형을 찾기 위해 돈명스님은 페인트 제거 전문가들을 물색, 조성당시 자연성 물감색이 나타날 수 있도록 기술진을 구성했다. 몇 년간의 고생 끝에 최근 나한님들의 원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돈명스님은 “조성 당시 모습을 찾게 해 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 원형복원 불사를 시작했다”며 “불사가 끝난 지금 거조암은 지역 불자들과 전국불자들의 정신적 귀의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돈명스님이 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구지체장애인협의회 후원회장 자격으로 2001년 9월10일 ‘관음손 양초공장’을 설립, 장애인들의 자활의지를 높이고, 일자리마저 제공했다. “은해사 교구에 살며 대구지역장애인협의회 후원회장을 맡은 지도 벌써 9년이 됐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삶과 희망의 터전을 마련해주고자 미력이나마 노력했는데, 양초공장 건립으로 어느 정도 결실을 이루게 돼 기쁩니다.”

스님이 장애인 돕기에 나선 것은 벌써 9년 전. 은해사 부주지로 부임한 이후 지역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자 시작했다. 장애인들의 재활의지를 북돋우고,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2001년 초 ‘사단법인 관음손’을 설립하고, 뒤이어 부설기관으로 경북 경산시 진량읍 당곡리 21-2번지에 ‘관음손 양초공장’을 세운 것. “장애인들에게 자활능력을 키워주고, 시중에 나와 있는 어느 것보다 품질이 좋은 양초를 만들어 보급하기 위해 세웠다”는 돈명스님은 “각 사찰 주지스님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관음손 양초를 애용해 주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스님은 경북 영천시 청통면(은해사가 위치한 지역)에 거주하는 독거노인 가정(22곳)에 식용품과 연료를 매월 지원해주고 있다.


[거조암의 주요 성보들]

영산전-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영산전은 해체 보수 당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 1375년(우왕 1)에 건립됐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됐다. 소박하고 간결한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학자들은 “조선 초 중수될 당시 많이 변형된 것”으로 파악한다. 안에는 석가불좌상과 526위의 석조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삼층석탑-거조암 영산전 앞에 위치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탑의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에는 몰딩이 표시돼 있고, 우리나라 보편적 탑 구조와 마찬가지로 상층기단 면적과 각층 옥신에 우주(隅柱)가 조각됐다. 상륜부가 없으며,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 360cm.


[거조암 나한재 일정]

◇ 날짜 : 매월 음력 7일.
◇ 내용 : 오전 10시 기도입재.
오전11시 삼종 만발공양.
정오(12시) 국가와 가정을 위한 발원 및 법문.
오후1시 오백성중청문 독송 영가시식 및 회향.
◇ 교통안내
부산 : 6시30분(영도중리-주택은행 앞),
7시(부산 역-새마당 예식장 앞)
7시15분(서면-전신전화국 앞),
7시30분(동래 지하철 역)
7시40분(금정구청 육교 앞)
문의 : 051-628-7205. 011-881-7205.
011-598-7206.
대구 : 9시(동대구역 육교 밑),
9시10분(방촌시장 대구은행 건너 대동약국).
9시15분(반야월 역전 경산 축협 가맹점).
9시33분(하양 현대자동차, 은하예식장).
문의 : 054-335-1369. 335-8258.
* 매월 네 번째 토요일은 철야기도정진.


[거조암 가는길]

서울을 출발해 거조암에 가려면 경부선을 타는 것이 제일 좋다. 경산인터체인지(I·C)에서 빠져 하양으로 간 다음, 하양에서 다시 청통면 소재지를 지나 신녕으로 달리다보면 ‘개지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우회해 곧장 가면 된다. 길 주변에 있는 농가(農家)와 과수원 사이를 지나가노라면 ‘마치 고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 산골 마을인 신원동으로 들어갈수록 사과밭은 많아진다. 과수원 지대를 벗어나면 거조암 영산전이 저 멀리 나타난다.

계단을 걸어 거조암에 올라서면 영산전이 참배객을 먼저 맞이한다. 고려 우왕 원년(1375)에 건립된 대표적인 고려 말기 건물이자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영산전은 간결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장식 없는 주심포식 맞배집의 모습이 마치 일체 속진(俗塵)을 털어버린 탈속한 선승의 모습과 비슷하다. 영산전 정문 위에 걸린 ‘영산전’(靈山殿)이란 현판은 ‘설현신’이란 이가 썼다고 한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가지각색의 표정과 몸짓을 한 526위의 나한상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기 자리에 앉아있다. 주존위(主尊位)에 석가삼존불이 봉안돼 있고, 후불탱화는 붉은 바탕위에 금니(金泥)로 그린 홍(紅)탱화. 첫 눈에 솜씨가 대단히 뛰어남을 알 수 있다. 화기(畵記)에 ‘건륭55년 병오’(정조 9년, 1785)라 적혀있다.
거조암은 본래 ‘거조사’로 불렸던 큰 사찰이었다.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이곳에서 처음 정혜결사를 맺었고, 〈동국여지승람〉엔 거조사란 이름으로 실려 있다. 그만큼 사세가 컸다. 조선 후기 들어 점차 사세가 기울었지만, 최근에 다시 사격을 크게 일신하고 있다.

거조암 주소 : (770-891) 경북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622번지. 전 화 : (054)335-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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