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

관조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관조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사진작가로 한국불교사
한 획을 그은 관조스님
20여만 점 작품 가운데

불교의 문화와 얼 담은
대표작 엄선해 책 출간

수행자이면서 동시에 사진가로 한국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관조당 성국스님(1943~2006). 1976년 부산 범어사 총무국장 소임 이후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았다. 1978년부터 범어사에 주석하며 ‘관조(觀照)’라는 법호대로 사진을 수행이자 포교의 방편으로 삼아 30여 년간 전국 산사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는 운수납자의 길을 걸었다. 이런 가운데 관조스님의 상좌인 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스님이 1970년대 초반부터 30년 넘게 촬영한 20여만 점의 사진 가운데 스승의 생전 말씀과 원력을 ‘인화(印畵)’한 대표작 278점을 엄선한 사진집 <관조>를 최근 펴냈다.

<관조>는 스님의 출가 본사이자 평생을 주석했던 금정총림 범어사 사진으로 시작한다. 속세와 탈속의 경계인 사찰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당간지주를 만나게 되고, 곧이어 절집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열린 공간이 나타나고, 그곳에 어우러진 탑과 석등을 둘러본 후 대웅전을 포함한 각 전각을 살핀다. 그러고 나서 그 안의 불상, 탱화, 닫집, 문살, 수미단, 나한, 단청 등을 하나하나 보듬는다. 이어 수행자들의 일상 공간인 승방, 공양간 등의 사계절 모습을 들여다본 후, 다비식과 수계식을 비롯한 특별한 의식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종, 부도, 탑비 등까지 두루 짚은 뒤에 다리를 건너 폐사지로 향하는 흐름이 사진집이 인도하는 여정이다.

관조스님의 상좌인 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스님이 1970년대 초반부터 30년 넘게 촬영한 20여만 점의 사진 가운데 스승의 생전 말씀과 원력을 담은 대표작을 엄선한 사진집 ‘관조'를 최근 출간했다.
관조스님의 상좌인 가평 백련사 주지 승원스님이 1970년대 초반부터 30년 넘게 촬영한 20여만 점의 사진 가운데 스승의 생전 말씀과 원력을 담은 대표작을 엄선한 사진집 ‘관조'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관조스님의 1987년 작 '범어사 수계산림'.

이 만행의 길에는 자연과 인간의 만화(萬化)가 숨 쉰다. 종교를 넘어 수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스님들의 친근한 모습, 쉽게 볼 수 없거나 이제는 볼 수 없는 문화유산들의 소중한 모습들이 함께한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도 환한 명예를 얻는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돌계단, 기와 등 그저 묵묵히 세월의 자국을 간직해온 사물들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오직 필름으로만 작업한 관조스님의 작품들은 대부분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현대 디지털 사진, 색다른 앵글과 기술을 추구하는 사진들과 비교했을 때 일견 단조롭거나 가라앉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성의 측면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빛을 발한다. 스님의 사진은 오로지 대상과 바라보는 사람의 교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빛을 통과한 대상들은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프레임 속에서, 사진을 들여다보는 이의 마음으로 들어와 여운을 남긴다. 현란한 이미지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평범하고 꾸밈없는 차분한 응시’는 비범한 힘을 분출한다.

이와 더불어 이 책에 담긴 사진은 장구한 세월의 물결 속에서 건져 올린 순간순간들의 귀중한 아카이브라 할만하다. 불교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사에 빛나는 이름으로 기록된 인물과 예술품들이 수록돼 있다. 이제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그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공간의 의미를 가만히 되새기게 하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사찰의 모든 대중이 모여 땀 흘리며 일하는 울력을 통하여 수행과 노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선농일치의 현장도 만날 수 있다. 선방에서 정진하다가 잠시 밖으로 나와 햇살 아래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직전의 자연스러운 찰나를 담은 스님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다양한 형상의 나한을 연상케 한다. 전각의 검은 그림자, 누군가 켜놓았을 촛불 등 스님이 포착한 순간적인 장면들은 그 당시에 현실로 존재했을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승원스님은 “스님의 작품들은 스님의 법사리”라며 “사리가 계정혜 삼학의 수행결정체라면 스님의 작품이야말로 진정 스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사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스님의 16주기 다례재를 모시면서 그동안 지키지 못했던 스님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켜드리기 위해 스님의 작품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 작품집을 내기로 했다”면서 “지난 16년 동안 짊어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스님의 영전에 이 작품집을 올린다”고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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