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나의 님

만해스님 지음, 조일동 옮김/ 이다북스
만해스님 지음, 조일동 옮김/ 이다북스

낡은 불교 개혁한 종교인
민족 대표한 독립운동가
생전 글 모아 책으로 엮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바로 세우길”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만해스님의 시 ‘님의 침묵’ 중에서)

1919년 3.1운동 당시 불교계를 대표해 참여해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자 문학적 깊이와 폭을 이룬 시인, 개혁적인 종교인으로 평가받는 만해 한용운 스님(1879~1944).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경장이 일어나자 집을 떠나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했으며, 1905년 백담사에 들어가 2년 뒤 법명 ‘용운’과 법호 ‘만해’를 받았다. 65세로 입적하기까지 세상은 암울했지만, 스님의 삶을 비롯해 말과 글은 시대를 깨치고 밝히는 환한 빛이 됐다. 조선 불교의 혁신을 부르짖으며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고, ‘님의 침묵’을 노래한 스님은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했고, 불의에 굴하지 않은 시대를 밝힌 거룩한 정신이었다. 이런 가운데 만해스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한용운의 나의 님>이 출간돼 주목된다.

“유신(維新)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요.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 자식이 없다는 것은 대개 말들을 할 줄 알지만 파괴 없는 유신이 없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어찌 비례의 학문에 있어서 추리해 이해함이 이리도 멀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파괴라고 해서 모두를 무너뜨려 없애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다만 옛 풍습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을 고쳐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뿐이다.” (만해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 중에서)

만해스님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은 ‘한용운의 나의 님’이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만해한용운선사기념사업회는 주최로 지난해 8월29일 홍성 생가지 사당에서 열린 만해스님 탄신 142주년 추모다례.
만해스님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은 ‘한용운의 나의 님’이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만해한용운선사기념사업회는 주최로 지난해 8월29일 홍성 생가지 사당에서 열린 만해스님 탄신 142주년 추모다례.

교과서에서 실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을 만한 시집으로 소멸과 생성의 윤회 사상 속에서 서정성이 돋보이는 <님의 침묵>과 낡은 틀에 안주하던 불교를 개혁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 <조선불교유신론> 등 만해스님은 생전에 여러 신문과 잡지에 작품과 논설을 실었고, 이 글들은 그의 행적에 버금갈 만큼 큰 궤적을 남겼다.

“무릇 인류의 사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는 것으로, 사상의 변천에 따라 사실의 변천이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사람은 실리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명예도 존중한다. 침략주의, 즉 공리주의 시대에서는 타국을 침략하는 것이 물론 실리를 위하는 길이었지만, 평화, 즉 도덕주의 시대에는 민족자결을 찬동해 작고 약한 나라를 원조하는 것이 국위를 선양하는 명예가 되며 동시에 하늘의 혜택을 받는 길이 된다.” (만해스님의 ‘조선독립의 서’ 중에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만해스님의 작품이나 삶과 달리 지면에 실린 글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거나 흩어져 있다. 이 책은 스님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에 실은 글과 대담들을 정리하고 이를 연대순으로 모았다. 1919년 ‘조선 독립의 서’에서 1940년 <명사십리>까지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글들과 대담을 묶었으며, 스님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부록에 담았다. 이 책을 엮은 조일동 출판기획자는 “관련 자료가 현재 남아 있지 않거나 남아 있더라도 게재 연월일이 분명하지 않은 것도 있다”면서 “이를 모아 정리함으로써 암울한 시대에도 오롯이 서고자 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빛을 발하는 만해 한용운의 거룩한 정신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이어 “이 책을 통해 만해 한용운의 진솔하고 강직한 목소리를 온전히 읽을 수 있으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의 새로운 면모와 변하지 않는 정신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나아가 그의 말과 글이 당대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바로 세우는 버팀목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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