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륙대재와 사찰음식 유명한 도심 산중도량

자연을 정원 삼은 북한산 자락
은평 한옥마을 뒤편에 위치
회주스님 사찰음식으로 명성 높고
초월스님 독립운동 역사도 간직

서울 진관사 대웅전. Pen drawing on korean paper, 33x24cm.
서울 진관사 대웅전. Pen drawing on korean paper, 33x24cm.

5월 맑은 날 찾은 진관사. 겸재 정선의 인왕재색도를 보는 듯 북한산 암석으로 이루어진 진경산수를 배경으로 초록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송추로 드라이브 가는 길 우측에 은평 한옥마을이 펼쳐진다. 물론 송추IC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진관사는 매우 한국적인 모습이 펼쳐지는 은평 한옥마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한옥마을 지나면 바로 주차장이 나온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수 많은 휴식 인파가 진관사 초입의 계곡에 북적인다.

주차장에서부터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잘 생긴 소나무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는 데 어쩌면 고급주택의 세련됨이 느껴진다. 진정 대자연을 정원 삼은 듯 자리한 이곳의 매력에 초입에서부터 벌써 푹 빠져들게 한다. 길가에 핀 봄꽃과 하얀 불두화가 봄이 깊어짐을 노래한다. 길을 따라 '삼각산 진관사'라는 현판을 단 일주문이 나오고 '종교를 넘어' '마음의 정원' 등 글귀를 걸어 놓은 길을 걸으며 마음속의 번뇌를 버리고 걸어가다 보면 다리건너 해탈문이 보인다.

지금 걸어온 길은 불교계 독립운동가인 백초월 스님을 기리는 '백초월길'이라 부른다 한다. 마침 햇살이 좋은데 해탈문 뒤로 소나무들이 용트림을 하듯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에 잠시 눈을 빼앗겼다. 이 장면이 짙은 인상을 주는지라 펜화로 담기로 했다.

북한산 진관사는 서울 4대 명찰로 꼽히는 곳이자 북한산 3대 사찰로 꼽힌다. 신라 진덕여왕 때에 처음 지었다는 유래가 있기는 하지만, 고려 초 이곳은 진관이라는 스님이 홀로 수행하던 신혈사(神穴寺)라는 이름의 작은 암자였다고 한다.

고려 태조의 손자였던 대량원군(왕순, 후에 8대왕 현종으로 즉위)은 고려 태조의 왕자인 왕욱과 태조의 손녀( 5대왕 경종의 왕비이기도 함) 황보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려 왕족이었는데 왕욱에 이어 자신을 보살펴 주던 외숙부 6대왕 성종이 병사하고 사촌 개령군이 7대왕 목종으로 즉위하자 더욱 먹구름이 끼었다.

목종이 즉위한 뒤 성년이 되어도 섭정하는 등 나라의 실권을 쥐었던 모후 천추태후는 외척인 김치양과 간통하며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왕위를 잇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 천추태후에게 대량원군의 존재는 영특하다는 소문도 있는데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존재였으므로 위협감을 느꼈는지 결국 강제로 출가시켜 버렸다.

그 뒤에도 대량원군은 몇 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당했지만 다행히도 주지인 진관스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미단 아래에 굴을 파서 숨겨 보호하였던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 후 강조의 정변으로 고려 8대왕으로 등극한 현종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던 진관스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신혈사를 큰 절로 증축해 주었고 '진관'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도 진관사라고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일대의 지명도 이 이름을 딴 진관동이다.

하지만 진관사는 6·25 전쟁 때 나한전 칠성각, 독성전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1963년 부임한 비구니 최진관 스님에 의해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당우를 차례로 재건하여, 현재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명부전, 홍제루, 적묵당, 종각, 선원, 대방, 나가원, 함월당 등을 갖추게 된 것이라 한다. 이렇듯 진관사의 역사는 진관스님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홍제루를 기준으로 본당으로 가기 전에 크고 작은 당우들이 즐비한데 '산사음식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진관사가 자랑하는 사찰음식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진관사 회주인 계호스님은 2017년 '조계종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돼 사찰음식을 널리 전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도 당선 전이지만 2015년에 진관사를 방문하여 사찰음식을 체험하고 간 적이 있다고 하니 명성은 검증된 곳이다.

홍제루를 지나 본당으로 향하니 작약꽃 흐드러진 마당 저 멀리 반듯한 대웅전과 나한전이 연이어 보이고 적묵당까지 뷰가 아름답다. 산세를 등진 법당의 자태가 아름다워 펜화로 담기로 하고 대웅전에 들어선다. 대웅전내에는 현세불인 석가모니불,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 미래불인 미륵보살의 삼세불을 모시고 있다. 법당 왼편에는 보리수 나무가 있는데 1970년에 고 육영수 여사가 기념 식수했다는 표지석이 보인다. 벌써 50년 전의 일인데 그래서 인지 제법 자랐다.

나한전 뒤편에 칠성각이 보이는데 2009년 칠성각 보수 당시 불단 뒷면에서 3·1운동 당시에 일장기 위에 먹으로 그린 태극기와 조선독립신문 32·40호, 신대한 2·3호, 자유신종보 등이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불교계의 독립운동가로 일경에 체포되기 전 초월스님이 숨겨 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진관사 해탈문. Pen drawing on paper, 28x38cm.
진관사 해탈문. Pen drawing on paper, 28x38cm.

진관사가 유명한 것은 국행수륙대재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륙대재의 설행기록이 나타나는 등 근본 도량이었음이 확인된다. 600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 역사성은 물론 예술성이 높으며, 개인 천도의 성격을 띤 영산재와는 성격이 다르다. 수륙대재는 수륙의 고혼 천도를 위하여 설행해졌던 불교의례로 땅 위, 물속의 모든 의지할 곳 없는 영혼들과 아귀를 위하여 법요를 열고 음식을 공양하는 행사다.

오늘날까지도 진관사 수륙대재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 해마다 음력 9월에 거행되고 있다고 하니 서울근교에 이만한 명찰이 또 있으랴. 이렇듯 사찰기행을 통해 얻는 역사 문화에 대한 지식도 쌓이고 불심을 닦게 되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usikim@naver.com

[불교신문 3722호/2022년6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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